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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JY May 23. 2023

아가야. 어린이집을 빨리 다니게 해서 미안해


육아휴직을 쓰는 중에는 최대한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내가 보려고 했으나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는데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지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내가 회사에서 복귀하는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짜증을 내고, 평일에 아이를 혼자 봤다는 것에 대해 보상을 받기라도 하듯 주말에 다소 육아를 팽개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얘기한 후, 당초 계획했던 8월이 아닌 5월부터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했다. 아직 돌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보내는 게 맞는 걸까.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물리적으로 아이를 충분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것 같은데 정말 보내는 것이 맞는 건가 라는 찜찜함과 죄책감이 있었지만 아내가 적극적으로 어린이집 보내는 것을 주장했다.



"오빠. 이거 단기 레이스 아니야. 어차피 초반에는 아이 적응시키느라 아이가 풀타임으로 어린이집에 있지 못할 거야. 조금씩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 텐데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재충전해"



그래.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이다. 일주일을 아이와 함께 있는다 치면 월요일에서 수요일 정도까지는 그나마 할 만하다. 그런데 목요일쯤 되면 피로가 누적되면서 점심, 심지어 아침부터 지치곤 한다. 미생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말은 육아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내가 체력관리를 못해 피곤함을 느끼면 아이와 밀도 있게 놀아주지 못한다. 또한 짜증, 나태,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이 쉽게 올라오게 되고 이러한 감정은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아이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 상황이 오면 자제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가 평소보다 조금 더 보채거나 잠을 늦게 자거나 밥을 먹지 않거나 할 때 쉽게 욱하고 올라온다. 아이 입장에서도 나랑 계속 같이 있는 것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다양한 자극을 받는 것이 성장에 더 좋을 거다. 객관적으로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내 마음이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아이와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잘 쉬고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더 잘 놀아줘야지라고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등원 3일 전, 어린이집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시간 되실 때 잠깐 오셔서 준비물 같은 것을 받아가라고.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어린이집으로 갔다. 원장님과 간략하게 미팅을 하고 아이 가방과 함께 귀가동의서, 투약동의서 등등 각종 동의서와 안내문을 한 아름 받아왔다.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걱정이 된다고 원장님께 말씀드리니 일단 서로 노력해서 잘 적응시켜 보자고 하셨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천천히 서로 노력하면 아이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셔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어린이집 가방과 어린이집용 개인 수건을 보면서 '이제는 나도 학부모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을 빨리 보내서 미안해. 아빠도 잘 쉬어서 나머지 시간을 더더욱 밀도 있게 놀아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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