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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윤 Apr 05. 2023

인구 4만의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23년 2월 기준 46,849명이다. 우리 지역은 대략 북부 중부 남부로 나뉘어 약 15,000명의 인구가 있다. 바닷가 근처이기 때문에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고, 그 외에는 우리처럼 회사가 있어서 사택에 거주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에 이사 왔을 때는 그래도 인구 5만정도가 되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줄어드는 걸 보면 새삼 한국의 인구감소를 체험하는 기분이다.



 서울에서 초중고대학교를 나온 내가 남편 따라 작은 도시로 온 것도 7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1,2년이나 버틸까 싶었는데 살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 줄도 몰랐다. 도시에서 태어난 첫째를 제외하고 둘째 셋째는 아예 이 지역 의료원에서 낳았다. 그렇다 보니 산후 조리를 하고 있을 때 군수님으로부터 감사 편지도 두 번 받았다. 46,849명 중 5명이 우리 가족이란 뜻이다.





 나름대로 30대의 대부분을 여기에서 지냈다. 그러면서 몸소 느낀 장단점을 내 나름대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아마 나도 첫째가 중학생이 될 때쯤 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야 할 것이다. 만약 도시로 이동한다면 다시 그 지역의 분위기에 적응해 갈 테니, 여기 살면서 느낀 점은 지금 적는 것이 비교적 정확할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건 지방 소도시 그 중에서도 사택에 사는 사람의 견해일 뿐이니,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은 달라질 것이다.






 단점부터 적겠다. 첫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교통이다. 이 곳은 육지의 섬이라 불리는 고속도로 하나 없는 도시다. 가장 큰 도로가 국도이다. 그러다 보니 직선 거리상으로는 그렇게 멀지 않은데도 친정인 서울 한 번 가려면 기본 4시간이다. 여기서 자동차나 버스만 언급되는 이유는 기차는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은 고사하고 버스도 30분 단위로 있어서 한번 타려면 반드시 버스시간표를 확인하고 맞춰 타야 한다. 그냥 의자만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30분동안 멍하니 기다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둘째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호소하는 의료이다. 진료과가 세분화 되어있지 않고, 장비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안과나 피부과 같은 좀 더 세부적인 진료를 보고 싶다면 무조건 멀리 있는 큰 병원으로 나가야 한다. 선생님이 딱 한 분 계신 내과는 대기가 3시간이고, 동네 의원이라 해도 예방접종 시기에는 사람 많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급한 상황에도 응급실에서는 간단한 처치가 되지만, 어린이 입원실이 없기 때문에 다시 구급차를 타고 멀리 나간다.



 셋째는 사교육이다. 학원이라는 개념도 역시 세분화 되어있지 않다. 사교육 열풍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아마 교육비가 가장 적게 들어가는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보습학원 공부방이 한두 개 정도이고 관심있는 사람들은 영어학원도 다니고 하지만 도시처럼 정교한 커리큘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과외 형태로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철수 엄마가 피아노를 가르쳐 주시면 영희 엄마는 미술을 가르쳐 주시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인프라가 없다. 이 곳으로 처음 이사 온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별 다방 위치를 묻기도 하는데,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50분 거리이다. 대형마트라는 개념도 없어서 그나마 농협을 주로 이용하고, 온라인 배송도 안 된다. 새벽배송 당일배송은 고사하고 가장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배송이 다음 날이다. 이것도 진짜 많이 발전한 것이다. 나보다 몇 년 먼저 온 사람들은 장날에 시장에 나가야 물건을 샀다고 한다.



 그리고 네트워크가 좁다 보니, 아무리 조용히 살아가려고 해도 서로 안면이 익숙하다. 애들 데리고 주변을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보니, 한 다리 건너고 두 다리 건너면 대체로 다 아는 사람이다. 나처럼 내향형 인간인데 눈치까지 보는 사람은, 아무래도 행동이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여기 왜 사나 싶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독신자숙소에 거주하고 주말부부로 지내는 가족도 상당수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이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도 서울 부산 대도시에서 온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완전히 다른 극과극 환경에서도 그들이 이 곳을 좋아하게되고 정착하게 되는 이유를 적어볼까 한다.





 첫째 맑은 공기다. 미세먼지랑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바로 이 공기가 좋아서 이곳이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대도시의 공기와 건물과 인파가 없는 시골 공기는 확실히 다르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놀이터에서 조금이라도 마스크 없이 뛰어놀게 하고 싶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인 바다를 보면 지루하다가도, 비누방울을 후후 불며 별 생각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실컷 숨쉬는 게 어디냐 싶기도 하다.



 둘째 역설적이게도 교육이다. 대도시의 국영수 입시학원이 없는 대신, 생각하지 못한 체험들을 많이 해볼 수 있다. 국가에서 지역아이들 교육에 대한 지원도 이뤄지기 때문에, 이 곳 아이들은 여름엔 승마와 서핑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요트체험도 해볼 수 있고, 스노클링으로 물고기들을 직접 본다. 물론 멀리서 올 수도 있겠지만, 나가고 싶을 때마다 집 앞에 이런 자연이 펼쳐진다는 것이 장점이다. 봄가을에는 유채꽃과 벚꽃이 온마을에 활짝 핀다. 그리고 산지와도 가깝기 때문에 겨울엔 스키를 타러 다니는데, 활동적이고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사계절을 모두 즐기니 특히 좋아한다.



 셋째 인구밀도가 적어서 모든 시설을 널널하게 즐길 수 있다. 평일에 도서관과 공원에 가면 나 혼자 있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조금 소란스럽게 행동해도 덜 미안하고, 나 역시도 소음이나 북적임으로부터 자유롭다. 아가씨 때는 출퇴근 지옥철에서 사람들을 밀며 끼어다니다가, 여기서는 교통체증 하나 없이 자동차로 다니고 넓은 땅덩이에 널널하게 주차를 하니 완전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실 이 곳에는 지역주민보다 타지에서 온 외지인들이 대부분이라 다른 시골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 대체로 10년마다 순환근무를 하는 사람들이기에, 텃세나 파벌도 자연스럽게 와해된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서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동질감 때문에, 조금은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어제는 아들과 어린이집 대신 공원에 놀러갔다. 군에서 지은 공원으로 동물원 케이블카 빙상장까지 보유할만큼 규모가 상당히 크다. 주중 1시쯤 공원에 가니 동물들과 동물을 구경하러 온 여대생들 너댓명과 우리뿐이었다. 아들은 동전을 넣고 타는 3종 버스 모양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했다. 500원을 넣으면 3분정도 노래가나오고 흔들흔들하는데 가성비가 좋다. 자리에 앉아 동전을 넣으려는데 지켜보던 직원분이 뛰어오셨다. 놀이기구를 켜주기 위해서다. 완전히 전세 내고 버스 3종을 다 타고나니 진짜 이런 경험을 어떻게 해보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대생들은 꽃나무 앞에서 평화롭게 사진을 찍고, 동물들도 신나는지 저들끼리 뛰어놀며 술래잡기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루한 소도시라며 매번 투덜대면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가족과 함께 있기 좋다는 것. 아마 이 곳이 아니었다면 애를 셋이나 낳은 생각은 해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곳이 좋은 가장 큰 이유. 내 아이들에게는 이 곳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인프라나 서비스 면에서 여러모로 어설프지만, 빡빡한 대도시보다 조금은 여유 있고 조금은 물가도 저렴한 이 도시. 바다향이 나고 소나무 숲내음도 나는 이 조그만 도시를. 나는 어느 미래에서 이미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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