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명확한 것이 불편하다. 불안이 큰 편이라 그럴 것이다. 숨겨져 있는 어딘가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내가 90프로를 이해했을 때 남겨진 10프로에는 대부분 별게 없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를 강박이 나머지를 계속 쫓게 만든다.
지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안다는 것에 왜 이리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간단한 예로 요리를 할 때 간장이 두 스푼 들어가는지, 세 스푼 들어가야 하는지 확인하느라 한 세월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하기가 싫어지고, 오히려 대충 만들어 놓고는 역시 난 요리체질이 아니라며 단념해 버린다.
야무지고 꼼꼼하단 뜻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시험공부를 하거나 회사 업무를 시작할 때 A to Z를 따지다 보니 개요부터 보고 있는 사람이다. 어차피 이해 못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뭐라도 놓칠까 싶어 개념 원리만 집착하는 사람. 그러다 보니 항상 A만 붙들고 한 세월을 보내는 사람. 잘하고 싶어 애쓰는데 융통성과 눈치가 없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요령 없이 어설프게 열심히만 살아가는 가운데, 이럴 때 내가 뭔가 좀 더 안다면… 요령이 있다면 어떨까 불쑥불쑥 생각이 든다. 청소팁과 살림 요령을 좀 더 많이 안다면, 세상에 대한 정보가 좀 더 많았더라면, 육아 꿀장비를 미리 갖췄거나 수면비법 교육비법을 미리 야무지게 알아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한 프로그래머의 말을 들었다. 내 눈에는 그저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보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논리나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테스트하는 사람 프로그래머. 그 대단한 프로그래머가 말했다. 프로그래머들도 프로그램 원리를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다만 많이 알수록 유능한 프로그래머인 것뿐이죠.
그 말인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몰라도 대충 잘 해결해 나간다는 뜻 아닌가? 왜 꼭 원칙과 규율을 잘 지키고 거기다 요령까지 가지고 있어야 뭔가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고 생각했을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모르는 채 덤비고 있다. 나는 잘 모른다는 것 때문에 겁을 내지만, 잘 모르면서 계속해봐야 오히려 진행이 된다. 바로 그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아이 세 명을 키우면서 느낀 점은 많이 해본다고 쉬운 게 아니라는 것뿐이다. 누군가 수많은 육아용품을 공짜로 주고 육아 팁을 다 알려주면서 다시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해보실래요?라고 한들 수락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 거 있다고 육아가 쉬워지는 게 절대 아니다. 처음부터 제대할 때까지 병장으로 있을 수 있다면 재입대하실래요? 서울대 가는 비법 전부 알려드릴 테니 수능 다시 보시겠어요? 요령은 그저 조금의 차이일 뿐, 완벽한 해결법이 아니다. 원리를 몰라도 일은 할 수 있다. 그 일을 달성하기 위해 묵묵히 견뎌내야만 하는 시간과 일련의 과정들이 핵심이다.
생업도 마찬가지다. 집안 일도. 요리도 청소도 바느질도 경제관념도. 그저 견디면서 배워가지 않는다면 지름길이란 없다. 많이 안다고 더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요령으로 쉽게 갈 순 있어도 해야 할 총량은 똑같이 정해져 있다.
그만큼 알고 덤비더라도 어려운 게 인생일 것이다. 결국 묵묵히 열심히 살아가는 삶 가운데 그나마 좀 숨통을 틔워주는 본인들만의 작은 노하우로 조금씩 쉬어 갈 뿐이다. 완벽한 원리는 몰라도 요령이 없어도 되는대로 열심히 살며 터득한 간단한 노하우들. 그 외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나만 몰래 볼 수 있는 꿀팁은 따로 없다.
그렇지만 그게 꼭 나쁘기만 할까? 치트키가 없는 게임은 쓸모가 없는가? 아니다. 인생의 많은 부분들은 한 번쯤 경험할만하고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 생각이라기보다는 나보다 더 많이 살고 경험한 어른들의 말을 주워섬긴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느낌은 있다.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왜 있겠는가. 삶의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재미들. 그것들이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 이 세상에 대해 완벽히 해탈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결국 나를 위해서 다짐한다. 어느 정도 이해했다면 더 이상의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기로. 남들은 다 앞서 나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지 전전긍긍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내 할 일을 해나가며 내 몫을 하나씩 이루어가기로. SNS나 고서에 더 많은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부딪히며 스스로 깨우치기로. 더 이상 찾아봐야 나만 불편하니까. 이제 A에는 그만 집착하고 미지의 B와 C로 좀 넘어가 보자. 나머지가 너무 궁금하다면 차라리 AtoZ의 목차를 훑어보고 대범하게 시작해 보자.
오믈렛을 만들려면 레시피나 오믈렛의 기원에 대해 집착하는 게 먼저가 아니다. 일단 달걀을 깨야 한다. 모든 일을 복잡하게 하나씩 알려고 하지 말고, 단순 명쾌하게 줄이는 게 좋다. 눈앞의 일을 하나씩 단순하게 집중해서 하자. 오늘은 닭칼국수를 끓이자. 일단 닭을 삶고 1차로 데친 물은 버리고, 대파랑 양파를 썰어 넣고, 부추랑 양파는 따로 썰어 준비하고, 마늘과 생강을 넣고 물을 넣고 끓이다가 중불로 40분 후에 감자는 20분 약불에. 그리고… 양념장은…
그러니까 몰라, 잘 몰라도 그냥 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