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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윤 Mar 29. 2023

나의 협소한 인간관계가 왠지 걱정될 때

 최근 해본 mbti 검사에서 나는 명확하게 i형인간이었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성격이 변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점점 더 내향성이 짙어지고 있다. e 비슷하게 갈 기미도 안 보인다... 그래. 나야 이렇게 고독하게 늙어간다지만, 가끔 아이들을 보며 마음 한 편 걱정이 된다. 주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정보도 없고, 밝고 명랑하게 주위사람들과 교류하며 트렌드를 잘 읽지도 못하는 엄마. 



과연 나는 계속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 것인가?



 솔직히 모든 게 육아 탓이라 생각했다. 밖에 나가고 싶어도 발이 묶여있고, 누굴 초대해서 대화 좀 하려 해도 옆에서 징징대는 애들 보며 혼이 나간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어서 번아웃이 왔다. 사람을 만나고 즐겁게 대화하며 푸는 스트레스보다, 그 자리를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하는 공이 너무 많아 엄두도 나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막내가 세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고 나니, 모든 게 어린아이들 탓인 줄 알았던 나의 인간관계가 또 다른 이유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놀랍게도 사회적 동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일단 쉬고만 싶다.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채로 조용히 편안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인간관계에 소질이 없다. 드디어 나에게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사람을 만나러 밖으로 뛰어나가기는커녕 점점 더 집안 동굴 속으로 숨어들고 있다. 신기한 건 그게 꽤나 편하다는 것이다. 마음은 너무 불편하고 이래도 되나 싶은데, 몸이 너무 편해서 다 덮어버린다. 물론 집에서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분리수거를 하는데, 그 시간 동안의 엄청난 적막이 영혼까지 편하게 해 준다.






 어쩌면 나름대로 살림육아에 지쳐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인 중에 어디 나만 지쳐있는가? 다들 바쁜 와중에 동지를 찾아 위로를 받는다. 게다가 나라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놀이터에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아이를 등원시킨 후 사이좋게 커피를 마시러 가는 엄마들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도 불편해할까 생각한다. 상상 속에서는 인싸가 부럽지만, 타인에게 말을 걸 에너지도 내기 전에 이미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협소한 인간관계는 문제인가? 



 내 생각엔 역시 그렇다. 일단 어떤 문제에 대해 논의할 대상이 있으면 안심과 위로가 되고, 즐거운 일은 나누면 배가된다. 그런데 내 인간관계는 나이 먹을수록 점점 좁아져간다. 어릴 때는 학교나 학원에서 억지로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정을 쌓지만, 커가면서 새롭게 우정을 쌓는 일은 없이 서로의 사정이나 성격에 따라 거리 두는 경우가 생기며 줄어들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으로 노력은 해봤다. 어쨌든 인간관계에는 시간을 쏟아야 한다. 엄마들 모임에 알짱거리기도 하고, 남편 회사부인들과 정기모임을 만들어 끼어보기도 했다. 별로 관심 없는 취미운동도 해가며 인연을 만들어보려 노력했다. 그런데 뭔가 즐거운 게 아니라 억지로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내내 실수할까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분명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어른들의 관계는 어쩐지 점점 더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억지로 인연을 유지하는 것이 맞는가? 고민하던 중 강빈맘님의 '내가 엄마들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인간관계를 바꾸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내향적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할 수 있는지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핑곗거리를 찾아 읽은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우선,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함께 모인다라는 뜻이지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니 이 용어에 대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무리 짓는 것은 인간의 생존전략 중 하나지만 여자들이 남자보다는 무리에 소속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사회생물학적 관점으로 보면 원시시대에 동굴에서 모여 살 때 여자에게 홀로 남겨지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기에 이에 대한 두려움,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한 해결책으로 사회적 유대감을 선택했다. 생물학적으로 강한 남자들과 무서운 짐승의 위협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무리를 형성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학습된 경험이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여자의 유전자에 새겨졌고 이것이 여자들이 관계를 중요시하고 무리를 형성하는 이유다.



 그런데 엄마가 되면 인간관계가 아이친구 엄마들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엄마가 아닌 그저 ‘나’였을 때는 나와 결이 맞는 친구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게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 하지만 출산 후엔 ‘육아맘’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엄마들과의 만남으로 내 인간관계는 축소되었고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과 인연이 맺어지기도 했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나를 흔들어 놓은 악연도 있었다. 그러나 애 키우는 사람은 기를 쓰고 멘털을 지켜야 한다. 나는 불편한 관계에서 죄책감 없이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좋은 모임이 있다 하더라도 지속하려면 관계에 투자할 시간과 마음의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아이가 등원 후 갖는 혼자만의 시간은 황금보다 소중하다. 나는 이 시간을 타인과의 관계에 집중하기보단 나 자신과의 관계에 집중하는데 쓴다.






 그래도 조금은 교류도 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주부가 아닌 직장인이었다면 좀 더 나아졌을까? 싶기도 하지만, 내 성격으로는 매일 보는 동료 몇 명만 추가될 뿐 지금과 사정은 비슷할 것 같다. 오히려 안 보고 싶은 사람들도 부딪혀서 몇 배로 피곤할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과 카톡을 하나보다. 직접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친하거나, 아님 아예 모르는 사람과 그저 조용히 사운드 없는 대화를 나누며 소소한 노닥거리기로 살아간다.



 어른이 되니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 때문에 의무적으로나마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지만...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 번역가 권남희 님 에세이 '혼자여서 좋은 직업'에서 읽었던 문단이 하나 떠올랐다.



 어느 때부터인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번역하고 싶지 않은 책은 정중히 거절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 하는 말에서 자유로워지자, 지구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나이를 먹어서 뻔뻔해진 것인지 해탈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소한 사람의 도리를 하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세상을 왕따 시키며 살고 있다. 물론 외롭다. 외롭지만, 편하다. 편하지만, 찜찜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잠자리에 들며 혼자 반문하지만, 다음 날 해가 뜨면 또 찜찜하지만 편한 외로움을 선택하고 있다.



 다시 강빈맘님의 책으로 돌아가서 불교 용어시절 인연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만날 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되어 있고, 만나지 못할 인연은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한다. 사람의 일이나, 심지어 물건과의 만남조차 그때가 있는 법이다. 모든 것은 때가 되어야 이루어지고 영원할 것만 같은 것들도 때가 되면 사라지기도 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관계는 때를 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인연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 그것이 시절 인연의 역할이라고 한다.





 외로움에 티브이를 보면 가끔 더 고독해진다. 티브이에 등장하는 나 혼자 산다는 사람들조차도 다 친목모임이 있는 세상이니까. 그렇다고 억지로 끌려가 맺는 인연은 불편할 뿐이다. 내가 어떻게든 맞춰주려고 종종거리기보다, 가만히 있어도 자연히 가까워지는 게 진짜친구 아닐까.  sns를 보다가 나만 인싸가 아니라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두는 것이 나와 함께 잘 지내는 첫걸음일 것이다.



 그래. 일단은 지쳐있는 나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지금은 도태되어 가는 게 아닐까 조급하게 느껴지지만, 나 자신을 온전히 회복하고 나서 건강한 정신으로 사람들을 만나도 늦지 않다. 시작은 거기서부터다. 엄마모임과 인싸모임에 포커스를 맞추지 말고 그저 나에 집중하다 보면, 취미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나와도 결이 맞고 통하는 인연이 있겠지. 일단은 나라는 보트를 타고 어딘가 인연이 있을지 모를 바다로 나아가자.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며 지금은 나 자신과의 인간관계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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