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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윤 Apr 18. 2023

결혼 10년 만에 처음 얻은 나만의 시간

셋째 출산 후 조리원에서의 휴식에 대한 깨달음

 셋째를 낳았다. 세 번째 임신쯤 되니 확실히 몸이 무겁고 힘들었다. 휴식이 절실해졌다. 지금까지 조리원을 가본 적은 없는데 그래서 더욱 묘한 환상이 생긴 것 같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쉬자 싶어 조리원을 처음으로 계약했다. 내가 생각한 휴양지의 그림이 머릿속에 펼쳐지면서, 배가 무거워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막달 내내 며칠만 참으면 호강을 하고 오겠노라 그날만을 기다렸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2주간 아주 제대로 쉬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출산 후 조리원에 입소했다. 제왕절개였으므로 5일 만이었다. 첫날 하루는 누워만 있었는데 몸과 머릿속이 절로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초등학생 첫째 챙기기, 어린이집에 막 등원시작한 둘째 돌보기로 나름 힘들었나 보다. 시끄러운 장난감 소음과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리가 없으니 허전하면서도 뇌가 쉬는 것 같았다. 이렇게 2주간 티브이보고 뒹굴거리다 가끔 수유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 되는 건가 생각하니 새삼 여유가 느껴졌다.





 일단 조리원 케어는 좋았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이었고, 시설도 깨끗했다. 하지만 이게 말로만 듣던 조리원 천국 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였다. 내내 자유롭고 너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몸이 완벽히 회복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수술한 몸이라 움직임이 더디고 침대도 의자도 내 것이 아니라 그런지 불편하기 시작했다. 목디스크가 있으니 독서도 무리다. 가만히 앉아 보는 티브이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 볼 내용이 없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몸을 돌보며 가만히 누워있으려니 마음이 어딘가 우울해졌다.



 저녁 2시간 모자동실 시간과 수유시간을 제외한 고요한 자유시간. 그냥 누워있는 건 쉬는 게 아니었다. 명상도 멍 때리기도 좋지만 한도가 있었다. 서서히 좁은 독방에 혼자 갇혀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괴롭기까지 했다. 그간 들지 않던 부정적인 생각들도 튀어나왔고, 우울증이 이래서 오나 싶을 정도로 불안해졌다. 죄수들이 독방에 갇히는 게 왜 무서운지 알 것도 같았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였으므로 조리원의 운동, 취미 프로그램은 없었다. 다른 산모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외부인의 면회도 당연히 안된다. 산책을 하고 싶어도 외출 금지였다. 아주 잠깐, 바깥공기를 마시며 건물 3m 정도 앞에서 체조만 하고 싶어도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냥 복도가 있는 내 방에서 펼쳐지는 자가격리 시스템이었다. 나 홀로 쉬는 건 좋은데 이렇게 극한으로 가는 걸 원했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애 둘을 육아해야 했다. 남편이 첫째 둘째를 전담하는 중이었으므로 면회올 사람조차 없는 나는 그야말로 애기 보고 누워있기의 반복이었다. 운동도 하긴 했지만 조리원 안을 뱅글뱅글 돌기만 가능해서 금방 지루해졌다. 결국 나는 가족들이 있는 집에 거의 1시간 단위로 계속 전화를 걸어댔다. 옆에 사람 소음이라도 듣고 있으니 좀 나은 것 같았고 그렇게 강박적으로 시간을 채우다 결국 퇴소했다.



 어쩌면 그냥 내가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밝고 멘털이 튼튼한 사람이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왜 그렇게 점점 축 쳐저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 자신이 이미 약간 우울한 사람임을 감안하더라도, 옆방 산모도 퇴소할 때 만세를 부른 걸 보면 혼자 있어야 하는 공간이 주는 외로움은 비슷한가 보다.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바랐던 휴식인데 왜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던 걸까. 생각을 해보다가 일단 몇 가지 나름의 이유가 떠올랐다.



 우선, 내가 원한 건 바쁜 생활 속에 조금씩 쉼표를 갖는 것이지 하루종일 그냥 누워있기만 한 게 아니었다. 자유와 백수는 별개였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다가 앉아 쉬는 것과 그냥 하루종일 회복을 위해 앉아 있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게다가 아무 할 일도 없는 휴식은 휴식이 아닌 지루함이었다. 뭐라도 조금은 소일거리가 있어야 했다. 물론중간중간 아이를 돌보러 가기도 했지만 그렇게 주어진 것 말고도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거리가 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렇다고 무슨 공부를 한다던지 운동을 한다던지 너무 자기 계발적인 거 말고, 그냥 게임을 하고 논다 해도 그 시간을 충실하게 즐길 수 있게끔 해주는 것 말이다.



 얼마 전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비슷한 글을 읽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방에 들어가서 사람이 얼마동안 버틸 수 있는지 실험한 결과,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이 4일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교도소의 독방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에 비해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리턴제로의 잡다한 블로그 중) 아무리 휴식 중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사회적 동반자와 상호작용해야 심리적으로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혼자만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지친다.



 물론 문제는 코로나다. 아무 모임도 프로그램도 하지 못하게 된 탓에 조리원을 독방시스템으로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내가 내향형 집순이긴 해도 아예 소통을 끊고 혼자만 있으면 안 되는구나 깨달음을 얻은 수확은 있었다.



 그렇지만 딱 한 번의 긴 휴식이었단 말이다. 그렇게 푹 쉬고도 불편했으니 도대체 나란 인간은 왜 이런가 싶었다. 그리고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쉬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앞으로는 어떤 휴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가. 단지 길고 조용하다고만해서 좋은 게 아닌가.



 이제 조리원을 퇴소해서 그런 시간도 어차피 지나갔다. 휴식 시간을 소모해 버린 것 같아 아쉽지만 몸을 회복한 것으로 만족해야지. 아이케어와 수술부위 회복이 목적이니까 뭐. 산후조리원을 천국이라 부르는 이유는 너무 천국같이 놀아서가 아니라 그 뒤의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비교적 천국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앞으로 내가 어떻게 휴식을 취해야 내 삶을 좀 더 유연하고 건강하게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해야 할 것 같았다. 휴식이란 건 꼭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나름의 간단한 결론을 내려두기로 했다.



 우선, 한 번에 몰아쉴 생각 말고 조금씩 끊어 쉬어가기. 그래야 오히려 효과가 좋다. 내가 열 달 내내 조리원을 기다렸는데, 막상 2 주내 내 누어서 꼼짝 않고 쉬려고 하니 머릿속만 복잡하게 움직일 뿐 완전한 힐링의 느낌이 아니었다. 차라리 중간중간 소일거리를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게 몸과 마음이 덜 피로하게 유지된다. 작은 휴식을 여러 번 취하면서 일을 처리하면 전체적인 생산성도 향상될 것이다. 꼭 몇 달이 아니라 하루 단위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3시간 일하고 1시간 쉬기보다 1시간 일할 때마다 10분씩 쉬는 게 낫다. 3시간 일하고 1시간 쉬어봐야 20분쯤 지났을 때부터 잡생각 하며 허송세월 보내더라. 



 그리고 조금은 할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해야 할 일뿐만 아니라 즐길거리도 있어야 진정 쉬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 휴식 중에도 조금은 할 일거리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을 활발하게 유지하고, 일상적인 생활 감각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걷기, 책 읽기, 일기 쓰기, 취미 생활을 하기, 친구와 대화하기,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 보기 등등. 그리고 뇌도 지루해지지 않도록 좀 자극을 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주객이 전도되어 너무 할 일에 빠져버리지 않을 만큼이어야 할 테다. 



 그래, 일단은 여기까지지만. 이 생각을 바탕으로 어떻게 적용해 나갈지는 경험으로 알아내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어떤 방식이든 휴식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니 지금은 생각과 할 일을 다 집어넣고 잠깐 눈을 붙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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