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
24살, 아동청소년학 전공.
나는 원래 아이들과 평생을 어울리며 살 줄 알았다.
미취학 아동과 고학년 사이 어딘가에서, 상담이나 지도나 뭐 그런 걸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능으로 부리나케 튀었다.
예능의 문을 ‘열었다’라기보단, 거의 발로 차고 뛰어든 쪽에 가깝다.
대학교는 아주 야무지게 다녔다.
과대, 부과대, 학생회, 총학생회, 대학원 학석사 연계 (중도포기했지만)까지.
“이 정도면 대학이 나를 졸업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였다.
거기다 일주일에 7일은 매일을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일정까지,
24시간이 부족해서 25시간짜리 하루를 살았다.
그렇게 불타오른 대학생활 끝에
막상 바로 취업을 하자니 ‘쉽’없이 달려온 내 청춘이 아깝고,
막막함에 졸업유예를 하자니 나에겐 계획이 없었다.
그런 나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잡코리아에서 봤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AD 모집 공고]
“오? AD가 뭐지? 일단 재밌어 보이니 고”
그렇게 난 아무 생각 없이 지웠다.
이력서엔 방송 관련 경험이 1도 없었다.
아동청소년 관련 대외활동이 죄다였고,
알바라 해봤자 롯데리아 3개월,
검정고시 가르치며 용돈 벌던 꿈드림센터, 청소년 캠프 지도사가 전부.
그런데 붙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세요!”
헐… 그래서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고 자취방을 구해서 서울로 상경했다.
출근 첫날,
아이맥 전원 키는 것도 몰랐고,
프리미어는 무슨 프리미엄 소주 브랜드인 줄 알았던 내가,
뭔지도 모른 채 예고편을 만들고 있었다.
너무도 바쁜 시기에 들어와서 인수인계는 어깨 너머로 배운 게 다였다.
출근 3일째,
내 생일이었다.
그날은 탑차에 소품 오천만 개를 싣고 2박 3일 출장 촬영을 갔다.
촬영장에 스태프가 이렇게 많은 줄도 몰랐고,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 많은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근데 그럴 만했다.
예능은 돈이 진짜 많이 들어가는데
오늘 찍은 거 망하면 재촬영이 없거든.
그냥 끝
그래서였는지, 처음 봤을 때 거의 모든 팀이 내 손절을 예언했다.
카메라 팀, 거치 팀, 동시녹음, 진행, 연출 팀까지,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고 한다.
“쟤는 3개월 못 버틴다.”
그런데… 내가 버텼다.
내 성격 상 혼나면 아, 잘못했구나~하고 절대 기죽진 않았다.
그리고 바보처럼 웃었다.
‘그래, 이 예민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라도 웃자…’
막내가 웃고 다니니깐 귀엽게 봐주는 감독님들도 생겼고,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출근해서는 배운 걸 업무노트에 항상 메모했고
퇴근해서는 빈칸을 만들어서 복습했다.
후일담으로,
프로그램 특성상 카메라 감독님이 들어갈 텐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래서 퇴근 전에 항상 창고로 가서 연습해보곤 했다.
동기가 이 모습을 보고 미친 X인 줄 알았더란다.
3개월이 지나니 사람들이 말했다.
“어? 쟤, 생각보다 쓸만한데?”
나중에 선배한테 물었다.
“근데 저 왜 뽑으셨어요? 방송 경험도 없고 편집도 못하는데…?”
선배는 딱 한 마디 했다.
“대외활동 많이 했잖아.”
방송은 배우면 된다.
센스 조금만 있으면 되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소통 잘하면 버틴다고,
반대로 말하면,
사람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뜻이겠지.
공감했다.
나는 일이 빡셌지, 사람이 힘들진 않았다.
(물론 사람이 일보다 편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4년을 버텼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동청소년학도는
이젠 연출부 막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
에능은 아무나 할 수 있다. 나도 했다.
근데 아무나 안 버틴다.
나는 오늘도, 유쾌하게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