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여행은 계획대로 안 되어야 재밌죠?
혼자 여행은 딱히 큰일이 아니다. 하지만 운전을 할 줄 모른다면 큰일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짐을 과하게 준비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택시를 타던지, 짐이동 서비스를 이용하던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안 그럼 여행이 즐겁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짐이동 서비스가 아닌 짐보관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내가 예약한 숙소는 호텔이나 민박,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서 짐을 이동해줄 수 없고 숙소랑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짐보관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경주역에서 내리자마자 택시정거정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ooo으로 가주세요."
택시를 타고 몇 분이 흘렀을까, 서서히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연도 봄에 경주를 한번 방문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아직 짐보관 가게까지는 거리가 좀 남았는데 벌써 간판이 보였다.
어? 이상하다. 아직은 도착할 때가 아닌데. 혹시 내가 주소를 잘못 말했나? 근데 왜 지나치지?
불현듯 두려움이 밀려와서 기사님께 여기서 내려달라고 말했다.
"아직 목적지까지 거리가 꽤 남았는데... 뭐~내려달라면 내려줘야죠."
기사님은 쿨-내를 풍기시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내려보니까 이곳은 내가 예약한 숙소와는 좀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분명 내가 알아본 곳은 숙소랑 가까운 곳인데 왜 내가 알아본 것과 다를까? 혹시 이름만 똑같은 곳이 아닐까, 싶어서 지도 앱을 켜보니 여기는 짐보관 서비스가 아니라 짐이동 서비스만 하는 곳이었다.
아뿔싸. 잘못 내렸구나.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다시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 아깝고 걸어가기에는 좀 멀어서 일단 배를 먼저 채우기로 했다. 지도 앱에 다음 목적지였던 <교동집밥>을 검색했다.
거의 도착할 즈음 중국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빨간 관광버스 몇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리고 과자, 아이스크림, 커피 등을 팔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여기는 휴게소였다. 깔깔거리며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각종 중국어,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그야말로 난리였다.
서둘러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
식당에는 자리가 꽤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앉을 수가 없었는데, 테이블이 몽땅 4인석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2명이었으면 자리에 앉았을 텐데 혼자 4인석을 차지하기가 민망한 상황이었다.
우물쭈물 서있는 나를 향해 사장님은 괜찮다며 어서 앉으라고 하셨지만 내 뒤로 가족과 커플 손님들이 계속 오고 있었다. 정말 먹어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내 성격상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못 먹거나 합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그냥 조용히 나갔다.
어깨가 조금씩 아파왔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벤치에 낮아 택시를 불렀다. 공복에 더위, 그리고 무거운 짐까지 더해지니 멘붕이 올 지경이었다. 지난 첫 여행도 이랬는데... 갑자기 부정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더군다나 택시도 잘 잡히지 않았다가 몇 번 더 시도하니까 그제야 잡혔다. 몇 분이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기사님인 것 같았다.
"네 여보세요, 기사님."
"아니 도대체 어디 있어요?!"
"네? 저 출발지로 설정해 놓은 그 편의점 앞에 앉아있어요."
"이런 데서 택시를 잡았으면 빨리빨리 길가로 나와있어야지, 응? 아 빨리 나와요!"
기사님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리셨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로 들어오던 차들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서 거북이 속도로 전진 중이었다. 나는 얼른 대로변으로 나가서 택시 번호를 찾았다.
기사님은 택시 안에서도 계속 짜증을 내셨다. '여기는 너무 막히는데 괜히 수락했지, 내가. 어휴.' , '기름값이 더 아까워' , '저 차는 주차장이 만차면 들어가지를 말아야지, 응? 왜 서있어서 길을 막히게 해?'
바깥은 여전히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차 안은 분명 바깥보다 쾌적했지만 오히려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소리 없는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기왕 여행 온 거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내릴 때 인사를 드렸건만 역시나 무시하셨다.
택시를 내리고 몇 분 후에 택시앱에서 '이 기사님은 어떠셨나요?' 라며 평가해 주라는 화면이 떴다. 별점을 최하로 줘서 참맛을 보여줄까, 하다가 그냥 화면을 닫아버렸다. 안 그러면 나중에 나처럼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이 거기서 택시를 불렀는데 아무도 수락을 안 해줄까 봐.
문득 아침에 기분 좋게 만났던 기사님이 떠올랐다. 기차 시간에 늦을까 봐 서둘러 가 달라는 나에게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빨리 도착하고는 오히려 나보다 더 좋아하셨던 그 기사님이 말이다. 그리고 기차에서 내 가방을 직접 내려준 옆자리 아저씨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보여준 따뜻한 미소와 말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야~일찍 도착했죠? 아가씨 커피 한잔 할 시간은 되겠네. 나중에 리뷰나 좋게 써줘요. 허허'
'잘 가요~좋은 여행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