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거 보려고 꾹 참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어.
"그럼 이따 오세요~"
짐 보관소를 나서는 길, 어깨가 홀가분했다. 여행 때마다 짐은 가볍게가 좋다는 걸 느끼지만 타고난 보부상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혼자 심심할 거 생각해서 노트북도 가져왔는데 요게 제일 무거운 것 같다. 그래도 여행할 때 필요한 최소한 짐만 챙겨야 해서 작은 에코백에 담아 한쪽 어깨에 멨다. 그런데 그것마저 깃털처럼 느껴졌다. 가벼운 게 최고다..!
배는 고프지만 입맛이 없어서 일단 황리단길을 구경하기로 했다. 예전에 동생이 사다준 황남쫀드기가 보였다. 그때 엄청 맛있던 기억이 나서 냉큼 줄을 섰다.
매콤하면서도 짭짤하고 식감은 쫀득하니 자극적인 맛이었다. 가게 근처에는 어린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한 손에 쫀드기를 들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걸 먹는 순간만큼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똑같아 보였다.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나 또한 열심히 먹은 것을 증명하듯이 손가락에 주황색 가루 범벅이었다. 빤히 쳐다보다가 물티슈를 꺼내 닦았다.
경주의 햇살은 제법 따사로웠다. 서울로 출퇴근할 때는 꽤 쌀쌀했던 것 같은데 경주는 확실히 달랐다. 그때는 외투를 더 여미곤 했는데, 이곳 경주에서는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야 할 판이었다. 한 손으로는 내리쬐는 햇살을 막고 눈은 휴대폰 속 지도에 고정하면서 걸었다.
목적지는 <이어서>라는 책방이었다. 예전에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떴던 곳인데, 조용한 분위기에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음악이 매력적인 곳이라 꼭 가보고 싶었다. 이번 경주 여행 코스를 짤 때도 제일 먼저 계획에 넣은 게 이어서였다.
이어서에 가는 길, 대릉원 맞은편에 대릉원과 비슷한 느낌의 공원이 있었다. 사람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보니 사람 많은 대릉원에 가지 않아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도는 잠시 닫아두고 공원으로 향했다.
높이 솟은 능선을 배경 삼아 나도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V(브이) 포즈만 하다가 과감하게 잔디에 앉아서 새로운 포즈도 취해봤다. 잔디에 앉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덕분에 끝내주게 행복했다. 그대로 눕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어서로 가는 길에도 어찌나 찍을 것들이 많은지. 휴대폰 배터리가 빨리 줄어들까 봐 몇 장 찍고 겨우 참았다. 오래된 건물과 간판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래된 신문사와 그 옆에 요즘 스타일의 카페, 빨래가 널려있는 건조대까지. 온통 찍을 것들 투성이었다. 특히 이어서는 건물 옆에 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워서 더 운치 있어 보였다.
가파른 옛날 건물식 계단을 오르고 나니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부가 조용해서 셔터음이 신경 쓰였다. 사진은 적당히 찍고 자리 먼저 잡았다.
나는 책방에 들르면 웬만하면 책을 구매하는 편이다. 나에게는 그 지역 책방에서 구매하는 책이 하나의 기념품인 셈이다. 이번에는 '경주가 경주생일에 경주여행'이라는 그림 에세이집과 '아무튼 잡지'라는 책을 구매했다.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여기서도 보니 반가웠다. 한창 글 열심히 쓸 때는 나도 아무튼 시리즈를 내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냥 독자로서 응원하는 중이다. 그리고 원고지 디자인 메모지와 연필세트도 같이 구매했다. 사장님이 책갈피도 같이 선물로 주셨다.
자리에 앉아 메모지에 책갈피에 쓰인 문구를 적은 후 사진을 찍었다. 결과물을 보면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쭉 구경 중이었는데 사장님이 음료와 디저트를 갖다주셨다.
꿀토마토. 그리고 냉침한 밀크티.
창밖으로 연둣빛의 나무를 보며 신선한 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었다. 토마토의 싱그러운 맛에 달콤함이 한 스푼 추가되어 한여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주의 10월 말은 이토록 싱그럽구나. 바람에 나부끼는 연둣빛 나무와 책, 그리고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아이유 음악이 오늘 하루, 아니 올해의 나를 위로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 이거 느끼려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