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세월 동안

제22회 병영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당선작

by 작자미상

70년의 세월 동안 쌓인 흙을 걷어낸다. 나의 생명이 시작된 20년의 부엽토를 걷어내고, 당신의 아들 딸이 살아온 50년을 걷어내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죽은 그 순간의 흙을 걷어낸다. 그제야 비로소 그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의 살은 썩어 검은 흙이 되어 그대를 품고, 그대는 웅크린 채 잡지 못해 세월 속에 사라진 무언가를 꼭 쥐고 있다.


그대의 젊음이었나? 빗발치는 포성과 총탄으로 물든 이곳에서 그대의 젊음은 아우성치지 못했다.

그대의 후회였나? 그대가 고향에 두고 온 늙은 어머니와 어린아이는 평생 그대를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그대의 꿈이었나? 수식과 시를 적고픈 만년필은 채 종이와 만나지 못하곤 그대의 허리춤에서 잠들었다.

그대의 사랑이었나? 백발의 머리가 마침내 그대와 그녀를 가르는 순간까지 함께하자 한 맹세도 이젠 깊은 구덩이 속에 썩어 자취를 감췄다.


그것이 무엇이었던, 그대의 손을 쥐어준 것은 썩어버린 그대의 검은 흙뿐이었다.


IMG_20180603_205929.jpg 출처-국방부 정훈국 사진대장 임인식

수십 년 만에 본 밝은 해조차 그대는 깊은 어둠에 익숙한 나머지 감당할 수조차 없다. 그리하면 그대의 연약한 흔적은 하얗게 하얗게 질려버릴 터이니. 나는 다만 그대에게 세상과의 재회를 앞둔 잠시의 간격을 둔다.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양해를 구하며 하얀 이불을 그대 위에 덮는다. 마치 그대가 스러진 그 겨울처럼. 새햐얀 눈송이는 전장의 검은 잔해 위에 소복히 쌓였다.

흩어진 단추는 그대가 여름용 작업복과 헝겊과 솜을 얼기설기 엮은 누비옷을 입고 있었다 말해준다. 분명한 것은 매서운 칼바람에 맞서기엔 그것은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유난히 추웠던 그 겨울, 당신의 심장을 마침내 꿰뚫은 것은 적군의 총탄이었는가 혹독한 겨울바람이었는가? 그대 주위에 흐드려 뿌려진 탄피는 국화꽃을 대신하여 그대의 죽음을 애도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매캐한 화약의 향기는 그대의 전 앞에 높인 향을 떠오르게 한다. 처절한 순간의 기억을 이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추측하며 그려볼 뿐이다. 그대는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지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혹시 그것이 아니라면, 두고 온 것이 있다면, 나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그대여 부디 말해주오, 그대의 이름만이라도.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그대는 말이 없다.

수많은 포성도 총성도 외마디 비명마저도, 세찬 바람에 날려 흩어지고, 남은 것은 침묵뿐. 70년의 고요를 종이 접는 소리가 깨운다. 당신의 피를 머금고 녹아 사라진 눈처럼, 마른 한지는 그대의 습기를 머금고 대신 썩어간다. 나는 그대의 손과 발과 머리와 가슴 위에 다시 이불을 덮는다. 다만 이젠 차가운 눈이 아니라, 따스한 한지가 그대의 이불이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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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규학 소령과 아내 정금원 여사, 6.25 전쟁 전사자 명비에 새겨진 이규학 소령의 이름.


이젠 그대도 뜨거운 여름의 햇살에 익숙해진 듯하다. 조심스런 붓질로 당신을 쓸어내린다. 붓질 한번에 손수건 한번.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또르르, 흠칫 놀라 서둘러 이마를 닦는다. 날이 무더워 잠시 흙벽에 기대니 습기가 시원하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당신의 안식처는 어찌 이리 꽁공 숨겨져 있던지. 마치 당신의 추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것처럼, 그대는 양지바른 너른 언덕을 두고도 저멀리 외딴 큰 바위 뒤에 잠들어있었다. 금속탐지기의 기계음이 시끄럽게 당신의 잠을 깨우자 비로소 우리는 당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유독 지상으로 뻗어있던 손이 그대의 위치를 알렸다. 마치 우리에게 인사하고 있는 듯, 처참한 현장에 그대는 이상하리만치 밝아 보였다. 정오의 빛이 호 안을 밝히자 나는 고개를 든다.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비친 햇살을 쫓아가니 파아란 하늘이 있다. 졸졸 흐르는 구름이 이상하리만치 가깝다. 산들바람에 나뭇잎이 손을 흔들다. 그대가 70년간 바라본 하늘이 저기에 있다.


섬을 띄운다. 외로이 서 있는 독도獨島, 그대는 세월의 풍파에 수없이 깎이고 스쳐지며 서 있다. 무엇보다 홀로, 홀로, 그대는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고독의 깊이는 당신 위에 쌓인 70년의 흙더미보다 깊었다. 그리 깊지 않은 개인호는 한 사람만으로 꽉 찬다. 어디에도 전우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하룻밤의 경계근무에도 수많은 상념과 고민을 지나치는데, 그대는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이곳을 홀로 파수하던 것인가. 당신이 지나친 밤들을 헤아려 본다. 그대가 마지막으로 바라봤을 하늘엔 어떤 별자리가 있었을까? 뿌연 포연과 세찬 눈보라를 뚫고 올라간 밤하늘엔 고요히 오리온자리가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햇살이 깨진 유리약병 조각을 비추니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그것들은 그대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그대의 긴 잠자리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KakaoTalk_20240405_235658616_08.jpg 군복무 중 직접 발굴한 6.25 전사자 유해. 출처-연합뉴스

웅크려있는 그대의 자세가 마치 태아를 보는 것만 같다. 그대도 한때는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고 한 집안의 기둥이었을 것이다. 남편을 잃은 부인을 과부라 부르고, 부모를 잃은 자식을 고아라 부르지만,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를 부르는 이름은 없다. 그 고통의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참혹함만을 우리는 참척慘慽이라 표현할 뿐이다. 나는 이곳에서 그대의 부모를 찾아 물어볼 수는 없지만, 아니, 굳이 찾아내어 물어봐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던 아들의 마지막 뒷모습을 그대의 부모님은 가슴 속에 묻었을 것이고, 당신이 돌아오지 않았던 긴 세월 동안에도 당신을 따라가는 그 순간까지, 그대의 어머니는 대문을 활짝 열어 그대의 귀향을 기다렸을 터이다. 곤히 잠든 그대의 모습에서 오래전 떠난 나의 옛 친구가 떠오른다. 나을 수 없는 병마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면서도, 항상 웃어주었던 나의 친구. 그리고 결코 아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납골당 문을 닫고 나온 순간 그제야 목놓아 울었던 한 쌍의 부부.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그대의 부모님도 당신을 가슴 속에 묻고 목놓아 우시기를. 어머니의 태 속에서 나와 자연의 태 속에서 웅크려 잠든 그대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그대는 무언가를 놓지 못해 꼭 쥐고 있다.


조심스레 두 손으로 그대의 몸을 뜬다. 수십 년 만에 처음 움직인 그대의 몸은 소관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이젠 검은 흙 대신 하얀 태극기가 당신을 감싼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그대 주위로 모인다. 모두 그대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다. 그대를 신기한 듯, 불쌍한 듯 보다가도 결국 그대의 깊고 어두운 눈두덩에 자신을 담아 본다. 초라하지만 경건하게 차린 제단 위에 그대가 놓인다. 병사의 신분으로 수없이 해왔을 경례를 처음 받아보는 당신이 퍽 어색해보인다. 그대의 답이 없으니 우리는 그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내리지 못한다. 70년간 당신을 품어준 자리를 이제 영영 떠나가야 할 때이다. 추억은 살아서도 생기지만 죽어서도 생기나 보다. 그대 마지막 가는 길 오랜 이웃들이 배웅한다. 느티나무도 큰바위도 손을 흔들고, 무명의 고지 위 무명의 들꽃들이, 이름을 찾아 떠나는 무명의 용사를 배웅한다. 그대를 위해 산 중턱에서 한번 뒤돌아 보니, 높았던 고지가 참 작게 보인다. 다시 이별이다.


6.25 당시 단양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의 현재 모습

서울로 가는 길, 딱딱한 군화와 무쇠 부딪히는 소리 가득 채우며 북으로 북으로 가던 그 길을, 이젠 거꾸로 되돌아 남으로 남으로 향한다. 소달구지 지나가면 아이들이 뒤따르던 흙길은 검은 아스팔트에 덮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봄이면 파종하고 가을이면 추수하는 농부들로 가득했던 논밭엔 시야를 압도하는 높은 유리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지붕까지 피난민을 잔뜩 업고 달리던 철마는 보이지 않고 오래 버려둔 역전에 간판이 을씨년스럽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흰 꼬리는 더이상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죽음으로 도하를 막아내라던 강가엔 튼튼한 다리가 놓여 이편과 저편을 자유로이 연결한다. 변해버린 강산에도 산등성이는 여전히 뻗어있고, 어딘가의 언덕 너머 아마도 있을 그대의 고향은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대를 기억하고 있을까.


여전히 어지러운 도심 속 고요한 이곳엔 그대를 찾아 헤멘 전우들의 비석이 끝없이 늘어서있다. 그대는 잠시 멈춰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대를 평생 기다려온 사람을 위해.

70년 전 그대가 떠나던 그 순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대를 기다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몇몇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또 몇몇은 대를 이어서 그대를 기다려왔다. 마음에서 지워버리라, 잊어버리라 한 말에 애써 끄덕였지만, 결코 잊지 않았던 결코 잊지 못했던 그대를 위해, 영겁의 세월을 기다려온 이들에게 마침표가 찍힌다. 그대의 모습을 기억하던 모든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이젠 그대의 온기만을 기억하는 백발이 무성한 아이만 홀로 남아 서 있다. 아이의 주름 가득한 손이 그대에게 닿자, 당신은 비로소 수십 년간 쥐고 있던 주먹을 펼친다. 눈물조차 말라버린 세월의 무상함도, 흐릿해져가는 기억과 차가워지는 추억에도, 떠나가던 그날 마지막으로 꼭 쥔 그대 손의 온기를, 아이는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대는 그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수만의 전우들이 함께 잠들어있는 이곳에서 너무도 길었던 귀향의 끝을 고한다. 살랑거리는 현충원의 잔디가 새로운 친구가 되어주길. 하늘이 높다. 지난 겨울의 눈의 흔적은 이젠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그때의 바람이 분다. 그대여 활짝 펼친 손으로 바람을 만끽하길. 수만 기의 비석 사이로, 수만 가지의 사연 사이로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흘러간다. 오래된 겨울의 차디찬 바람은 이곳을 지나 따스한 봄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또 다른 그대를 찾아, 산야에 남은 마지막 그대를 찾아 오래된 과거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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