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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pr 17. 2020

철학은 어떻게 나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가

[서평] <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양승권 지음

총선이 끝났다. 여당의 압승이라고 모두 말을 한다. 맞는 말이겠지만,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기로 했다. 책에 딱 맞는 문구가 있었다. "좀 더 여린 약한 본성들이 모든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바 '약한 본성의 승리'라고 표현하고 싶다. 더 세게, 더 강하게, 더 적나라하게, 듣기에도 민망하게 말하는 이른바 '센' 화법이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여리고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진심에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는, 필사하며 글쓰기를 공부했던 책의 저자인 은유 작가가 니체를 좋아한다고 해서 니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서민을 위한 거리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장자가 니체와 나란히 등장해서 어느 지점에서 합일을 이루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읽게 되었다. 저자는 "혼란의 시대를 진단하는 문제의식과 개념에서 두 철인은 많이 닮았다"라고 얘기했다. 또 "현재 사회에서 근본적인 위기는 인간 '마음'의 위기"라고 진단하는 것도 요즘 많이 느끼고 있던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인간의 속성에는 항상 밝음과 어두움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나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 텔레스가 이를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현실에서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은 일시적인 선별의 소산일 뿐이며, 이 선별은 항상 새롭게 갱신되기 마련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가지고 찬반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본성이 선으로 또는 악으로 발현될 때가 있을 뿐이고, 악의 본성을 감정으로 선의 본성을 이성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본능과 이성의 충돌의 순간에 사람들은 하나의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거의 결과는 진보 진영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승리가 확인되는 지점에서 진보진영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취를 과대 포장하지 않고 곧 평정심을 회복하는 듯 보였지만, 선거의 과정에서는 속칭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셈법으로 자기의 이해에 조금의 부정적 영향이라도 미칠 것 같은 정당이나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비판하며 날을 세우는 것을 마주했다. 인간의 본성은 급박한 순간일수록 본능을 쫓게 되고 늘 화살은 상대를 향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되는 광경이었다.


진보나 보수와 같은 이념적인 문제도 그러한 가치를 자연스럽게 추구하면서 남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자기가 원하기 때문에 조용히 실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내가 다른 경우가 많은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다른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을 볼 때, 사람들은 그릇이 작다고 말을 한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대하며 음흉스럽다고도 말한다. 어느 것도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를 숨긴다. 그리고 거짓으로 포장한다. 거짓이 진짜처럼 보일 때까지, 어쩌면 자신마저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거짓과 가상으로 움직이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사회가 복잡해지고 수많은 생각과 이해가 얽히는 현대와 같은 사회에서는 "니체가 말했던 대로 현실은 거짓과 가상으로 창조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또한 고도의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면세계를 기르는 데에만 집착하지 말라. 외면 세계만을 강조해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지도 말라. 마른나무처럼 중앙에 서 있어라. 이 내부, 외부, 중앙의 조화를 잘 터득한다면 그는 반드시 지극한 존재라는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장자, <달생>)


수련의 궁극은 조화다. 현대의 시대를 상상할 수도 없었던 때에 장자는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잘 이루게 되면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삶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 아닐까 싶다. 삶의 조화를 이루고 싶어 애쓰다 나와 다른 조화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롤모델로 설정하고 배우고 따르려고 노력한다.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적어도 자신의 부조화의 깊이를 깨달을 수는 있을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정치 평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분석이나 예측 방식에 주목해서 듣곤 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합리적인 답을 얻는 방법을 나름 찾게 되었다. 그 방법은 질문이었고, 해결은 인간의 탐구였다. 왜 사람들은, 왜 그런 식의 결과가, 왜 그에게는, 왜 그여야 하는지 등등의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인간의 마음을 깊이 들어다 보고 고민하고 그 결과 얻은 사유를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선거에서의 승리는 인간의 세밀한 탐구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철학이 시작된 것은 인간이 땅에서 재배된 것을 먹고 소화불량에 시달렸던 때"라는 말 역시 고통이 깊은 사유를 낳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핍이 고민을 부르고 고민은 사유를 낳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강해져 왔다. 육체도 두들겨 맞아야 강해지고 정신도 두들겨 맞아야 강해진다. 인간이 다른 모든 동물을 제쳐놓고 오늘날과 같이 진화할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인간이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고통받는 존재임을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선거가 끝나고 뼈아픈 실패를 맛본 사람들은 자신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겠다고도 했다. 인간 탐구에 실패한 그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자신의 탐구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고민과 사유의 결과를 얻게 될까. 조금 더 강해져서 돌아오게 될까. 답을 들을 수 없는 물음이 이어진다.


국가적 큰 일이었던 선거가 끝난 지점에서 조금씩 수험생, 입시생, 공시생들을 주목하는 기사를 접한다. 모든 시험이 미뤄지고 있고, 공시생의 가족은 기사에 눈길이 쏠린다.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은 항상 경쟁률을 의식한다. 또 실패하는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월등하게 뛰어넘을 만큼의 점수를 받는 것을 목표로 생각하지 않고, 경쟁자가 나보다 점수를 덜 받기를 기대하며 시험에 임한다. 시험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자기 반성이다.


결코 후회하지 말라. 후회는 한 가지 어리석음에 또 다른 어리석음을 더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만약 후회할 만한 나쁜 일을 저질렀다면 앞으로는 좋은 일을 하겠노라 다짐하라.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는 방향이 명확하게 짚이지 않는다. 앞뒤가 바뀌고 우선시하던 것이 뒤집히기도 한다. 모호하다. 그 정체는 저자가 니체와 장자 두 철학자를 니힐리즘(허무주의)이란 코드로 묶었다고 말하는 것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절대적 가치에 대항하는 자세가 허무주의라니. 두 철학자의 자유로운 삶의 자세를 절대적 가치에 대한 거부로 본 때문이었다. 니힐리즘이 가진 뜻대로 모든 ‘독단적’ 사고를 해체한 '무'의 세상, 일체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이 두 철학자의 지향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철인에게는 후회가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의 지향, 권위를 해체하는 그들의 태도가 후회를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후회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긍정을 주라고. 주변의 사소한 것을 포착하고 이유 없이 느껴지는 은은한 기쁨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두 철학자의 경지가 막연하면서도 부럽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흔들렸다. 나이만큼, 아니 나이보다 더. 감정도 생각도 논리도. 많은 것들이 마음에 쉽게 다가왔고 그것들에 쉽게 분노했고 쉽게 긍정했다. 가진 것이 조금 있어도 좋았고 많으면 더 좋았다. ‘무’에 초연하기는 불가능했다.


이런 나지만, 책을 읽고 나름의 정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저자는 가장 현명한 인간을 "모순을 가장 풍부히 갖는 자, 모든 종류에 대해 촉각 기관을 갖는 자"라고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다행인 것은, 나는 예민하지만 본능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멈추기도 잘한다. 하루의 많은 시간이 무감각하지만, 순간 오감이 분수처럼 폭발하기도 있다. '무'인 채로 살 수는 없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한다. 한 마디로 풍부한 모순 덩어리다. 니체와 장자의 위로가 꽤 도움이 된다. 또 다른 탐구에 도전을 시도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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