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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Feb 10. 2020

사람이 온다는 것, 그리고 떠난다는 것

<그리운 메이 아줌마>,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연예계에 진태현 박시은 부부의 입양이 전파를 타며 이슈가 되고 있다. 그들의 입양은 어린아이의 입양도 아니고 이미 성장한 고등학생의 입양이었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아군이 되어주기 위해서 법적 부모가 되기로 했다는 그들이 말에서 기존의 입양에 대한 나의 생각의 허를 찌르는 신선한 발상이었다.


연예인들의 삶이 그렇듯이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동상이몽'에 나오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은, 연예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었고 입양에 대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공감하게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언론에서도 찬사를 보냈고, 출연하는 오락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긍정적 시선을 갖게 되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만 들어가면 부모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을 들어가서는 졸업할 때까지의 무거운 학비만 책임져 주면 된다고 바뀌었고, 마치고 나니 취업이나 결혼 등 또 다른 커다란 문을 열어야 했다. 우리는 아직 그 문을 함께 열고 있다.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이들의 의하면 그것이 또 끝이 아니라고 했다. 결혼을 지켜봐야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 앞서 얘기한 연예인 부부의 입양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의 길은 복잡하고 멀기 때문에.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따뜻하고 섬세한 필치로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으로, 1993년 뉴베리 상과 보스턴 글로브 혼북 상을 받는 등 미국 내에서도 그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소설이다. 물질적으로 궁핍한 가운데서도 존재의 숭고함과 고귀함을 잃지 않았던 저자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삶의 본질을 통찰하고, 그 가운데 하나였던 '사랑'을 유감없이 그려 보인 작품이다.


주인공 서머는 입양아다. 서머를 데려 간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의 가정에는 바람개비가 아주 많다. 닭 바람개비, 고양이 가필드 바람개비는 가오리연이나 방패연처럼 흔하고 특징이 없는 것이다. 아저씨의 바람개비는 ‘천둥 치는 폭풍’ 바람개비, ‘불과 사랑과 꿈과 죽음’ 바람개비, ‘천사’ 바람개비 같은 것들이다. 모두 특별하다. 아저씨는 바람개비 장인이고 예술가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것 같다. 뒤늦게 자신의 소질을 찾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밴드를 구성해서 활동하거나 손재주를 발휘해서 만들거나 멋들어지게 붓글씨를 쓰거나, 도전하는 그들의 용기와 재능이 부럽다. 오브 아저씨는 예술가다. 바람개비 예술가, 그의 바람개비는 늘 상상 이상이다. 신비로운 바람개비를 만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서머는 그곳에서 선택받은 아이가 된다.  


메이 아줌마는 서머를 ‘나의 작은 천사’라고 부른다. 서머에게 냉장고도 초콜릿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 찬장의 문도 활짝 열어 준다. 마침내 서머는 6살에 집을 찾았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먹거리를 오픈한다는 것, 남을 위해 가진 것을 전부 내어 놓을 수 있는 건 사랑밖에는 다른 설명은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신세'였던 서머에게 메이 아줌마의 찬장, 냉장고의 ‘허시’ 초콜릿 우유는 마침내 찾은 일상의 행복이다.


아줌마와 아저씨가 사는 낡은 트레일러에 들어선 순간 서머는 두 분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한눈에 알아차린다. 사랑은 받아 본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는 증표를 달고 있다. 엄마에게서 넉넉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서머는 사랑을 한눈에 알아본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고, 돈도 써 본 사람이 더 잘 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비유하면 너무 순수에서 멀리 나간 것일까. 어린아이 같지 않은 성숙한 서머와 소년 소녀와 같은 감성의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 셋이 만들어가는 따뜻함은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한다.


가족은 무엇일까. 편안함과 익숙함이었을까. 서머의 편안함과 익숙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메이 아줌마는 서머 나이 12살에 밭에서 돌아가신다. 그리고 두 계절이 지난다. 2월의 혹독한 허무, 쓸쓸함 속에서 오브 아저씨에게 만들고 싶은 바람개비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 서머는 허깨비처럼 변한, 슬픔에 지쳐가는 아저씨를 보며 아저씨마저 잃을까 두렵다.


그러던 어느 날 서머에게 '달빛 아래 무언가, 소리 없이 날아왔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나타나고 참고 있던 눈물이 터지고며 뒤늦게 색다른 이별 의식을 치른다.  비로소 남은 사람도 떠난 사람도 각각의 삶에서 해방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의식. 서머와 오브 아저씨는 함께 컨테이너 속 바람개비들을 들판에 자유롭게 날려 보낸다.


바람이 좋은 날, 공원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나온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환하게 웃은 아이들의 표정이 맑았다. 공원 한쪽에서 연을 팔고 있었다. 가오리연, 방패연 등, 연의 종류가 그보다는 훨씬 많아 보이지만 이름을 꼽을 수 있는 것은 그 둘뿐이다. 짧은 지식으로 연이 다 그것이 그것이지 생각했다. 아이들의 표정에 취해 눈은 폴짝폴짝 뛰는 발걸음을 따라갔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에도 한강고수부지에서 연을 날린 적이 있다. 작은 아이에게만 연을 사 줘서 큰 아이가 삐쳐 한쪽에 서 있는 것을 달래주며 찍은 사진이 있다. 그때 날린 연도 오늘의 연처럼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글을 쓰며 뒤늦게, 그게 뭐라고 그나마도 못해주고 아이를 화나게 만들었던가 싶은 묵은 기억이 올라왔다.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느 날 인사도 없이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 우리 곁에 늘 함께 있지만 외면하게 되는 모든 죽음들. 부모와 친지를 무수히 떠나보내고도 그것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인생에서 중요한 관계자들, 그들을 보내는데 구토, 감기, 열병을 동반한 아픔 정도는 기꺼이 맞아야 할 것 같다. 경험하지 않아 서툴지만 투박하고 진한 슬픔으로.


그러고 난 다음에 자연스럽게, 떠난 이를 웃으며 떠올리고 마음껏 그리워하고 일상을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라도 숙제 같은 일상을 과감히 깨어 부수고 진한 사랑을 쌓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식을 위한 나만의 바람개비를 만들어야겠다. 언제든 멋지게 이별 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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