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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Nov 23. 2020

구직을 위한 사투, 그가 얻은 것은?

드라마 리뷰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  스포있음

언제부턴가 삶에서 넷플릭스가 필수가 되어버렸다. TV에서 간혹 재미 있는 드라마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때를 놓치면 내용이 연결되지 않아 굳이 중간에 보게 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다르다. 드라마든 영화든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날씨가 우중충한 날의 안방 영화관. 따뜻한 차와 달달한 간식을 준비하고 TV 앞에 앉았다.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드라마로 선택한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는 피에르 르메르트의 소설 <실업자>가 원작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기업의 인질극 쇼는 2005년 프랑스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남자 알랭 들랑브르(에릭 칸토나)의 입사 도전기지만 복잡하고 심각하다. 드라마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이야기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노년과 실업 문제다. 57세의 나이에 실직한 지 6년이 된 남자. 전문적인 일을 했지만 나이 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다. 수십 곳에 구직 서류를 제출하지만 그중 인터뷰를 진행한 곳은 단 한 곳. 물론 그곳에서도 탈락했다. 원인은 나이 때문이다. 나이가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강력한 기준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조기 실업의 문제는 인간의 수명연장과 맞물려 더 큰 사회문제를 낳는다.


조기 실업이나 노인 문제는 드라마의 배경인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용 시장에서 나이 든 직원은 일이 있을 땐 가장 늦게 채용되고 정리해고 땐 가장 먼저 해고돼요."(알랭 들랑브르)


현재 우리나라 몇몇 지자체에서도 베이비부머 세대인 50대 후반을 위해 다양한 생애설계를 해 주고 취업을 지원해 준다고 하지만, 사실상 재취업에 성공해서 이전처럼 실질적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어렵게 일자리를 찾고, 그 일자리의 대다수는 그동안 해온 일과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열심히 일한 보람은 여유로운 삶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주인공처럼, 당장 집이 넘어갈 수도 있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추억은 사치이고 현재를 더 처절하게 돌아보게 하는 잔인한 기준일 뿐이다. 일찍 직장을 잃게 되면 사회는 더 이상 개인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잡일도 해야 하고 가난에도 익숙해져야 하고 우울함도 잘 달래야 하며 몸처럼 세상에 굽히는 지혜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극한에 몰리면 알랭과 같이 예기치 않은 사고를 겪기도 하고 불행한 선택도 하게 된다. 이때 법은 그에게 사회가 정한 질서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강력한 처벌로 그 행동을 단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들이 사회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알랭은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다 직장 상사의 폭력을 참지 못한다. 더한 폭력으로 대항해서 고소장이 날아온다. 집에서도 취업의 압박을 받던 그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직장은 대기업 인력지원부서다. 그 일을 잡기 위해 사위에게 돈을 빌리려다 폭력을 행사하고 사위에게도 고소당한다.


알랭이 해야 하는 일은 대기업의 고위 간부를 극한으로 몰아붙여야 하는 인질극에서 심문을 담당하는 것. 그 인질극을 훌륭히 해내야 대기업에 채용될 수 있는 것이다. 딸이 집 장만을 위해 모아둔 돈까지 빌려와 인질극을 준비하던 알랭에게 그가 지원하는 자리엔 이미 내정자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후 알랭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다.


알랭을 변호하기 위해 법정에 선 딸은 아버지 알랭이 사회에서 정한 틀에 따라 40년을 열심히 일했고, 빚을 얻어 집도 샀고, 자녀를 낳았고, 자녀의 교육을 책임져 일꾼으로 성장시켰다고. 이어 실직 후 6년간 아버지가 느꼈을 마음의 고통을 얘기한다.


"사회 계약을 준수한 혜택을 거둘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때 사회가 마음을 바꿉니다. 일을 끊죠. 연금은 줄어들고 수치심을 줍니다. 잡일을 하고 불안감과 서서히 시작되는 가난, 우울한 미래의 약속, 슬픈 노년이 오죠."(뤼시 들랑브르)


재판 결과 알랭은 자유의 몸이 된다. 끝까지 딸이 변호를 해야 한다고 딸을 밀어붙였던 아버지의 판단은 옳았다. 딸을 향해 알랭이 가졌던 믿음이, 딸이 법정에서 감정에 호소하고 딸의 호소가 배심원에게 통할 거라는 계산된 믿음은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정리해고 문제도 나온다. 자동화를 이유로 직원의 2/3인 천 명 이상을 정리 해고해야 하는 상황. 쓸만한 임원을 고르겠다는 엑시야의 CEO 도르프만의 선택은 인질극이나 다름없다. 극한까지 몰아붙여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보겠다는 것. 국가의 경제를 책임진다는 대기업의 해법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리해고와 관련된 어떤 말도 감각에서 무뎌지고 있다. 실업의 문제는 코로나 이후 더 깊어지고 서서히 곪아가는 양상이다. '투잡'이나 '쓰리잡'을 편하게 얘기하는 세상이 되었고, 아르바이트는 온 국민의 필수 코스가 되어버린 것 같다. 누군가 공시 합격이나 정규직을 이야기하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 속 상황도 다르지는 않다. 대기업의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게 되는 문제가 인질극이라는 게임으로 바뀌는 상황이라니.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그렇다면 아찔하다. 그리고 그 일을 돕기 위한 도구로 선택된 알랭의 못 말리는 노력 또한 징그럽다. 어떤 일이 벌어져야 기업은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게 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긴 재판을 거치고 난 후의 알랭은 더는 순진하지 않다. 범죄에 빠지고 형량을 벗기까지 알랭이 보여 준 능력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가 직장생활을 뛰어나게 잘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진작 노년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의 협상력과 판단력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알랭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는다. 알랭의 행동은 부인도 등 돌리게 하고 딸도 외면하게 한다.


다음 시즌이 나올지 모르겠으나 사회의 여러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라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알랭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될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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