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살면서 서울을 구경하면 촌스럽다고 말한다. 그런 말 때문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서울 구경은 따로 계획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흔한 한강 유람선도, 롯데타워도. 늘 다니는 길, 늘 보던 곳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사실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가 서울이고, 대한민국의 대표성을 갖는 상징적인 도시가 서울이니 볼 것 또한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울 사람의 서울 구경이 촌스럽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엄격히 말하면 35년쯤 서울에서 거주하며 생활했고, 지금은 경기도민으로 살고 있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서울 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울 사람은 아니니 촌스럽다고 생각할 것도 민망해할 것도 없긴 했다.
10대 때는 서울 도심을 통과하며 남에서 북으로 학교를 다녔고, 20대 때는 최류가스의 독한 향을 맡으며 도심으로 출근했다. 30대는 아이들 키우며 시골보다 더 자잘한 서울의 변두리에 살았고, 30대 후반 경기도민이 되었다.
2년 전에 딸과 홍대 근처의 작은 서점 투어를 한 적이 있다. 버스를 환승하고 다시 환승하기까지 30분의 텀을 지켜가며 알뜰하고 야무지게 환승 횟수를 채우며 목표한 절반 정도의 서점을 돌았다. 이후 점심을 먹고 카페를 찾아 잠시 쉬고, 다시 오후에도 환승을 하며 버스로 서점 투어를 마무리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저녁 시간이 훌쩍 넘었었다.
테마가 있는 투어였기에 서울을 구경한다는 느낌보다 아기자기 작은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서울은 연중행사로 교보문고나 미술관, 인사동을 찾았다. 서울이라는 느낌보다 미술관, 전시관, 서점을 간다는 생각으로 찾았었는데 이번에 제목이 서울 구경이었다.
주말이라서 빈 도심, 청계천에 차를 주차하고 쌀쌀한 날씨에 인적이 드문 청계천을 잠깐 보며 근처의 조계사로 향했다. 조계사가 서울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입구까지, 경내까지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도심의 산사, 깊은 산속에 있던 절에 비해 느낌이 많이 달랐다. 울창한 숲도 나무도 없고, 빌딩 숲에 들어앉아 자본주의의 냄새가 짙게 밴 듯한,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마침 수능 직전이라 수능 시험생들을 위한 기도가 있었다. 법당 안에 대형 스크린에 이름을 띄우고 기도해주는 방식이었는데, 첨단 문명과 불심의 만남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생을 위한 기도도 시대에 발맞추어 첨단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보니, 과연 서울에 있는 사찰답다는 생각은 했다.
사실 조계사라는 이름은 투쟁과 분쟁으로 더 많이 들었던 곳이다. 종권 분쟁 혹은 이권 분쟁이라는 이름으로 종단을 대표하는 스님이 바뀔 때마다 시끄러운 잡음이 있던 곳이라 조용한 경내 어딘가에 분쟁의 불씨가 숨죽이고 있는 듯한 느껴졌다.
잠깐 둘러보고 나오는 길, 왼쪽에 우정총국이라고 현판이 붙은 곳이 무료로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 빼곡히 우리나라 우정국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었다. 기온이 영하에 가까운 날씨인데도 우정총국 앞 나무엔 아직 단풍이 물들어 있어 한참을 바라봤다.
이어 인사동으로 건너가 천천히 걸었다. 인사동의 상권도 많이 죽었다는 보도를 접했지만, 실제 보니 실상은 더 쓸쓸했다. 문은 닫은 가게도 많았고, 그 많던 노점상도 거의 없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없었다. 사람도 가게도 텅 빈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외국인 연주자를 만났지만 허공에 흐르는 선율이 더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시내를 매일 휘젓고 다녔던 20대의 추억이 남은 곳이 시내에 제법 있다. 아직도 그대로인 국도극장, 지금은 사라진 종로 2가 뒷골목 주점들, 무교동 낙지, 명동의 칼국수. 예전과는 다른, 간판만 무교동 낙지집인 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