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밤을 산책한다. 밤이 주는 묵직한 느낌, 신발 밑창으로 밟히는 어둠의 흔적들을 따라간다. 많은 것들이 침묵하는 순간, 그 속의 소요와 휘청거림 등을 목격한다. 큰길 코너를 돌기 직전 한복가게가, 번쩍거리는 한복에 눈이 간다.
언젠가 지인이 요즘 사람들은 결혼식 예복으로 한복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번 입고 안 입을 것을 준비하는 것이 사치라고. 대신 정장을 준비해서 두루 입는 것이 좋다고 강하게 말하며 본인은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한번, 어쩌면 딱 그날만 입을 옷 대신 정장을 갖추면 자주 입을 수 있어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당신이 옳다,고 했다.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합리적’으로. 시간이 지나 어느새 아이들의 결혼식에 한복을 입을지 양장을 입을지 생각해 볼만한 나이가 되었다.
한복가게에 진열된 한복 여러 벌이 모두 총천연색 색감에 은빛, 황금빛 반짝이가 번쩍번쩍, 어깨에도 앞섶에도, 회장에도, 치마 밑단에도 수가 놓여 있다. 한두 곳이 아닌 한복 전체에 포인트를 줘서 잔뜩 힘이 들어간 한복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경복궁에서, 인사동에서 그리고 경주 한옥마을에서 본 것들과 똑같았다. 요즘 유행인 듯했다. 누군가가 맞춤 주문해서 각각 다른 곳으로 배달시킨 것처럼, 그렇게 해서 진열된 것처럼 한복의 색채와 모양이 맞춘 듯 꼭 같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고요한 밤과 반짝임의 부조화처럼 한복의 반짝임이 주는 부조화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20대에 직장을 다니던 때, 시어머님은 한복 만드는 일을 하셨다. 바느질이 꼼꼼해서, 품을 잘 맞춰서, 저고리와 치마의 색 조합이 고급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찾는다고 했다. 덕분에 결혼 전에 개량한복을 처음으로 얻어 입었다. 모시로 된 깨끼저고리와 무릎 밑까지 오는 폭이 넓은 치마. 1930년대 신여성 스타일의 한복이었다. 새하얀 모시 저고리에 파란 치마. 특별할 것 없는 색의 조합이었지만 손바닥만 한 7부 모시 저고리를 꽤 여러 번 빨고 풀을 먹이고 다림질해서 직장이 있는 여의도를 휘젓고 다녔다. 쉽지 않은 옷차림이었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정장 못지않게 정성스러운 예를 갖춘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옷을 입고 은행으로 세무서로 거래처를 돌아다녔다.
그 후로도 한복을 여러 벌 선물 받았다. 결혼식 때는 물론이고 시누이 결혼, 아이들의 돌잔치, 시어머님의 회갑 때에도 가족들 모두 한복을 맞춰 입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만큼 저고리와 치마의 색의 조합은 언제나 월등히 뛰어났다. 치마저고리의 옷감이 다르면 다른 대로, 같으면 같은 대로 선명한 원색들의 대비는 시선을 사로잡았다. 선명하게 은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직이었다. 그리고 그 한복들은 1년에 두 번, 설과 추석에 번갈아 잠깐씩 장롱 밖으로 외출을 했다. 20년이 더 지났어도 색도 바래지 않았고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복은 큰 서랍장 두 개에 꽉 차있다. 한 벌씩 정리해 놓은 한복 옆으로 속치마, 버선, 속바지와 한복과 세트인 백도 여러 개 놓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복에 아무 무늬가 없는 단색을 좋아하다. 아래위 색의 조화만으로, 깃과 소매 끝, 고름만 색을 달리 한 반회장저고리가 동정의 하얀 눈부심과 어울리면 단아하고 품위 있는 한 벌이 된다. 그래도 포인트가 필요하다면 금박, 은박보다는 자수가 좋다. 그것도 치맛단이나 폭을 따라 드문드문 수놓은 과하지 않은 자수가 좋다. 동네에서 만난 한복가게의 한복은 내 취향은 아니다. 한복 본연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정장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난 시간의 생각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한복의 그 바삭거리는 부딪침이 좋다. 결을 따라 날이 선 듯 서늘한 사각거림의 풍성한 너비와 공간, 그것이 허락하는 범위에서의 나만의 분위기를 즐긴다. 동정의 하얀 깃이 나의 목을 꼿꼿하게 세워 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합리적’으로 한복을 대신한다는 양복 정장 차림도 어차피 일상복은 아니다. 재킷만 입는다고 해도 안에 위, 아래를 갖추어 입어야 하고, 스커트나 바지만 입는다고 해도 구두에 윗옷을 어울리게 갖추어야 격식에 맞는다. 양복 정장 역시 아무 곳이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만으로 빛나고 입으면 다른 결로 나를 완성해주는 한복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양복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하는 날이라면, 나는 한복을 입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택하고 싶다. 그날만이라도 선명한 보색이 허락하는 색채의 마술을, 길고 하얀 동정이 돋보이게 목을 곧추세우는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입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