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기억의 기록

<사실들>, 필립 로스

by 바람

글쓰기 모임에서 자서전을 쓴 적이 있다. 삶의 한 부분을 회고해 보자고 했다. 스스로 자신을 말하기 부끄러우니 그래도 객관성을 가져보자는 취지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 나’를 말하자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주제였다. 자서전이 사실이어야 한다는 내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의 한 점 의혹이 없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사실의 요건을 갖춘 나를 이야기한다는 그 말 자체로도 사람들로 꽉 찬 광장 한가운데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강조한,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무수히 많은 눈이 나를 향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심사하고 노려보는 것 같았다.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를 과제로 쓰긴 했다. 특정한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을 따라 주변의 정황이 그려졌다. 그 그림을 최대한 아름답게 포장했다. 불편한 상황은 두루뭉술 썼다. 객관성을 유지하고 싶어 감정을 담지 않으려고 했다. 원망도 칭찬도 다른 이의 감정에 맡겨두려고 했다. 그렇게 감추고 지우고 덮고 싸서 글을 제출했다. 그래서 그 과거는 어땠다고? 급하게 마무리했다. 최대한 윤리적으로, 그럴듯하게.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조금씩 나를 감쌌고 위로했다.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추지 못했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게 솔직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 나’를 쓰는 것이었다. 시점을 바꾸니 대놓고 윤색해도 되는 과제였다.


필립 로스의 자서전의 제목은 《사실들》(The Facts), 부제는 <한 소설가의 자서전>(A Novelist’s Autobiographt)이다. 글을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과연 자신의 이야기를 사실(fact)대로 쓸 수 있을까. 사실은 다양한 옷을 입는다. 사실이라고 해도 다양한 시각에 따라 상황도 사건도 바뀌는데, 하물며 과연 사실일까. 어느 면에서 사실일까. 똑같은 교통사고의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목격자마다 진술이 다르다. 사실 역시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자체 왜곡이 사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서전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기억들의 왜곡이다. 이를 전두환의 자서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두환의 회고록에는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발포 명령자도 없었다”며 “자신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전혀 무관하다”는 주장이 적혀 있다. 그가 믿고 싶은 사실인 것이다.

진짜 상상적 사건은 사실들에서, 철학적이거나 이상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닌 특정한 것들에서 시작된다네.
내게 이런 특정한 것들은 웃음, 목소리, 심장박동, 냄새, 손의 움직임 등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기억에 조심스럽다.

기억은 웃음, 목소리, 심장박동, 냄새, 손의 움직임이고, 그런 것들에 의해 상상이 시작되고, 상상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사실들은 확신이 필요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인 주커먼에게 확인받고 있다. 사실을 가상의 인물에게 확인을 받는 아이러니라니. 자서전의 실체를 필립 로스는 이렇게 고발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쉰다섯 살인 필립 로스. 소설과 자서전의 경제가 모호한 그의 이야기.

아무리 그가 ‘글의 옷을 다 벗겨내고 있는 그대로의 특성만을 남기’려 해도, 이미 잃어버린 기억일 뿐이고, 상상적 사실이다. 그는 누구나 겪는 중년의 혼란, 자기 확신에 찼던 삶의 피로, ‘자명했던 것들을 더는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에서 회복을 위한 글쓰기를 스스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자서전을 선택한 것이다. ‘되고 싶었던 나’와 ‘반항하는 나’ 사이의 접점을 찾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들러리 세우며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것이 그가 말하고 싶은 자서전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요즘 자서전 열풍이 불고 있다. 글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회고하여 글쓰기를 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 회고의 글쓰기가 자서전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들은 근원을 찾는다. 작은 기억의 단초를 붙잡고 내려가 다른 사실들을 만난다. 주변은 더 기억이 흐리다. 필립 로스처럼 많은 것들이 글로 남아있는 사람의 기억도 이렇다.


주커먼은 그의 비소설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반 자아’(反자아 counterself)다. 그는 “조작은 진실로 무의식적인 것인가, 아니면 무의식적인 것처럼 꾸민 것인가”라고 말한다. 또 “출간을 반대하지만 자네의 계획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카운터 셀프(counterself)인 주커먼을 통해 영리하게 자기변명을 한다. 결국, 쓰기로 하고 쓴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왜곡도 자기 자신에 달린 것이고, 아무도 모르지만, 자신만은 안다. 활자화되어 보이게 될 때, 내내 그러한 생각이 지배하게 될 것이고, 결국 이 모든 것은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럴듯한 변명이다. 자서전의 지배적 동기를 ‘윤리적’이라고 말한 것은 지나치게 양심에 기댄 동기부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조금 더 나아간다. ‘글이 자기 자신에게 투명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경고’를 주커먼은 신랄하게 말한다. ‘자신의 치부는 숨기고 변명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생각으로 행동으로 왜곡해서 보여준’다고. 뜨끔했다. 숫제 까놓고 자서전은 자기 삶의 포장이라고 말한다. 주커먼은 그래도 가장 핍진하게 진실에 입각해서 그려진 삶을 조이와의 결혼과 시련이라고 평가한다. 역시 고난과 시련의 순간에 자신의 바닥이 드러나는 경험은 어느 것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실된 고난의 순간에 감동하고 지지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반유대인 편에 선 유대인의 반유대주의, 2차 세계대전의 격동과 베트남전 반전운동 등 역사의 회오리는 비껴간다. 현장을 이야기하지만 몰입하지 않는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리는 주체는 문학가의 몫은 아니라는 생각인지.


전두환의 자서전으로 5·18의 진실 찾기가 시작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5·18 특조위가 시작되었고, 국방부 차원에서도 5·18 TF를 구성해 본격적인 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정원 적폐 청산 TF가 발족하여 그동안 숨겨져 왔던 수많은 비리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방부 차원에서 수사를 진행하면, 많은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5·18 광주의 진실 찾기는 현재 소송 중이다.


전두환은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건재함을 밝히고 싶었을지 모른다. 역사를 왜곡하고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법적 대응이 진행되고 있고, 이로 인해 곤혹스러운 상황이 계속되자 치매 환자를 자처하여 상황을 회피하고자 했고, 모 국회의원의 끈질긴 취재로 와병을 이유로 재판을 회피하는 것이 거짓이 아닐까 하는 것에 확신이 들고 있다. 29만 원 밖에 없다면서 어떻게 골프를 즐기냐는, 수천억의 추징금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그는 “니가 대신 갚아 줘라.”라고 답변했다.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의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더 이상의 말도 아깝지만 주커먼의 말은 덧붙인다.

자신의 동기를 숨기는 사람(작품에서는 ‘작가’)이 자기 행동과 생각을 제시하는 것은 상황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함인가, 아니면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식으로 무언가를 감추기 위함인가.

주커먼이 비판하는 대목은 결과적으로 자기 검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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