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ion 3+ 새로 쓰는 선녀와 나무꾼
나무꾼은 선녀들이 내려온다는 연못에 도착했다. 올 때까지도 사슴의 말을 믿지 않았다. 특별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곳보다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깊은 숲 속 연못이었다. 물빛이 유난히 투명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말도 안 되었다. 많은 선녀들이 그곳에 있었다. 눈을 비볐다. 다시 봐도 모두 아름다웠다. 자신의 팔을 비틀어보았다. 소리를 낼 만큼 아프게. 현실이었다. 사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떨리는 마음을 감추려 숨을 멈춰 보았다. 숨을 멈추니 손이 후들거렸다. 진정해야 했다. 연못 주위를 살폈다. 한쪽에 아름다운 색채의 고운 옷들이 눈에 띄었다. 사슴이 얘기한 것을 떠올렸다. 선녀의 날개옷 하나를 집어 들었다.
누구의 눈도 피할 수 있는 휴식처. 나무를 모으는 중간에 다른 이들의 눈에 안 띄게 쉴 수 있던. 사슴의 다급한 외침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비밀의 공간이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찾아들 수 있는 익숙한 그곳에 날개옷을 가지런히 챙겨 두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렀다. 연못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생각해 보지는 못했다.
선녀들은 가야 한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일어섰다. 자기 옷을 찾아 입느라 수선거리는 소리가 웃음소리와 함께 가볍게 퍼졌다. 그러는 사이 그가 가져간 날개옷의 주인인 듯, 하나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아무리 찾아도 자기 옷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목소리에 우는 소리가 뒤섞였다. 모두들 이곳저곳을 헤매며 그녀의 날개옷을 찾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누군가 조심스레 말했다. 시간이 이미 많이 지체되었다고. 하나, 둘 떠났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잃어버린 날개옷의 주인과 그녀의 가장 친구였다. 친구도 더는 무리였다. 일행은 이미 모두 올라갔고 같이 남거나 남겨두고 가거나 결정해야 했다. 꼭 날개옷을 찾아 올라오라고 당부를 거듭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말이 가능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떠나고도 나무꾼은 한참을 더 기다렸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잦아들 즈음 나무꾼은 나무를 해서 지나가는 체하며 연못 가까운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빈 소리를 냈다.
“얼른 돌아가야겠네. 어머님이 또 밤새 걱정했겠어. 그 녀석들이 잡는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의 기척에 선녀는 흠칫했다. 몸을 숨겼다. 무섭고 두려웠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나무꾼을 아는 체할 수도 없었다. 혼자 남겨지는 두려움과 낯선 이와 대면하는 두려움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혼자서는 옷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곧 다른 사람의 눈에도 띌 것이고. 공포를 누르며 선녀는 나무꾼을 불러 세웠다. 옷을 잃어버려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옷을 찾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차근차근 얘기하려 했으나 두서없는 말이었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 나무꾼은 작은 부름에 반응했다. 물기 가득한 눈이 먼저 보였다. 나무꾼의 마음은 요동쳤다. 그 마음을 들킬 것 같아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우연히 옷을 찾은 것처럼 옷을 찾아 건네고, 그렇게 선녀를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선녀가 자기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뒤섞인 얼굴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두려움의 눈으로 보는 것이 싫었다. 서둘러 그녀의 옷을 찾기 시작했다. 옷을 숨겨 놓은 위치는 자신도 잊어야 했다. 그녀가 옷을 놓았다고 하는 곳 주위만을 구석구석 세밀하게 뒤졌다. 뒤지는 척했다. 결국 날개옷은 찾지 못했다. 찾지 못했어야 했다. 그녀를 집에 데려갈 때까지 흔들리는 자신을 세뇌했다.
그녀를 집에 데려 왔다. 옷을 건넸다. 어머니의 옷이었다. 급한 상황이었으나 정돈된 그녀의 행동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의 어머니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허름한 옷이었지만 그런 옷을 입고도 그녀는 빛났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그는 그녀와 함께 매일 산을 뒤졌다. 그녀는 간청했다. 옷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기를. 옷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녀에게서 어두운 그림자를 씻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를 오라비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마저도 사랑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의 바람대로 그녀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였다. 그의 어머니에게도 다가갔다. 자신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곳에 남겨졌다는 상처가 언뜻언뜻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그녀에게 착한 마음씨의 나무꾼이었고 아이들의 자상한 아버지였다. 어머니에게도 동물들에게도 다정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 모든 것보다 그녀를 가장 아꼈다. 그리고 석 달 전 그녀는 그의 둘째 아이를 낳았다.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었다. 둘째의 출생에 이어 또 하나의 행운이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 큰돈을 벌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되니 둘째 아이의 돌잔치는 소박하게나마 열어주고 싶었다. 세상과 관계를 닫고 조심하며 살아온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엄마를 닮아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어쩌다 아내를 본 친구는 그의 넘치는 복을 부러워했다. 이미 부러울 것이 없었고 이제는 세상을 향해 그의 행운을 자랑하고 싶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나무를 하러 나섰다. 큰아들은 벌써부터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어 했다. 조르는 아이를 번쩍 안아서 달래며 집을 나섰다. 그의 아내도 조용히 따라 나왔다. 그러고는 산 중턱에서 둘은 되돌아갔다. 늘 아들과 아내를 따라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내가 큰아이와 함께 나무하는데 동행하겠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어머님께 맡기면 된다고. 이미 말씀드렸다고. 아이도 원하니 종일 함께 있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셋은 그의 일터로 향했다. 셋이 함께하는 첫 산행이었으나 아내도 아이도 힘들어하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나무를 베고 나르며 오전을 보냈다. 풀벌레 가득한 곳에 아이를 둘 수 없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자신이 늘 쉬던 곳으로 향했다. 가족이 함께 쉬어도 될 만큼 안락한 곳이었다. 점심을 먹자 아이는 곧 잠에 들었다. 나무꾼은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아내와 아이를 두고 밖으로 나섰다.
남편의 공간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둘러보았다. 스치는 이야기로만 들었던, 허름하고 누추하다는 그곳.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나무로 사방이 빙 둘러진 좁은 공간에 나무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소박한 그곳에서 마음은 안정되었다. 고단했는지 아이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여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투박하지만 물건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관하는 나무 상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것들을 꺼냈다. 묵직했다.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고 다시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다시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남편이 뛰어 들어왔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그는 서둘러 돌아가자고 했다. 당황한 것도 같고 화가 난 것도 같아 보였다. 뭘 보지 않았냐고, 무엇을 만졌냐고 횡설수설 물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어수선한 기척에 아이는 깨어났다. 아이를 달래서 밖으로 나섰다. 가져간 자잘한 짐들은 남편이 들고 나왔다. 부탁받은 나무를 봐 둔 것이 있다고 했었다. 빈손이었다. 그냥 가도 되는지 물었지만 대답은 묻혔다.
일 년 동안은 미쳐 있었다. 모든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일순간에 볼 수 없다는 마음 따위는 그 순간 그녀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나를 방어할 최소한의 것도 없었다. 벌거벗은 것만 겨우 면한 상태의 자신의 모습에 직면했다. 그 조차도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낯선 공간에 놓인 무기력한 존재. 그것은 공포였다.
다행히 만난 첫 인간계 사람은 선해 보였다. 얼굴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경황없는 중에도 그 또한 고마웠다. 눈물과 한숨과 공포로 엉망이 된 상태의 나. 돌이켜 생각해도 그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똑바로 나를 보며 던지는 눈빛. 그것이 무엇이든 그녀는 날카롭게 베였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후에 그를 마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코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재단되는 것만 같은,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의 집에서도 배려가 느껴졌다. 준비된 것처럼 그는 차분해 보였다. 은밀히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그의 어머니 또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점이 좋았다. 물어도 대답할 것도,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이었을 테니. 하루가 지나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확실한 이방인이었다. 너무나 호의적인 그 가족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매달렸다. 매일을 산속을 가자고 졸랐다. 그리고 매일을 헤매고 다녔다. 발은 상처투성이였다. 먹는 것도 잊었다. 그들은 그녀가 쓰러질까 염려했고 열심히 거두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온 산을 다 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 보지 못한 장소가 있을까 싶었다. 그는 싫단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묵묵히 따라다녔다. 아니 이끌고 다녔다.
일주일이 지나고부터는 자신이 남겨졌던 곳에서 밤을 보냈다. 그녀가 남겨진 그 날은, 특정한 날에 특별히 허락된 외출이었다. 그녀 자신은 돌아가야 하는 규칙을 어겼다. 더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찾으러 와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꼬박 밤을 새웠다. 기대는 날마다 부서졌다.
그 후로도 습관처럼 산을 찾았고 갔던 곳을 다시 갔다. 뒤졌던 곳을 또 뒤졌다. 산은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이제는 누군가 자신의 날개옷을 멀리 가져갔거나 산짐승들이 찢고 씹어 조각조각 흩어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은 그렇게 찢기고 씹히고 흩어져 날리고 있었다. 그는 그런 한 달을 그는 묵묵히 견뎌 주었다. 이슬에 젖어 내려오는 매일의 아침을 따뜻하게 맞아 준 그의 어머니였다.
마음 한 편에 크게 차지한 두려움을 감추기로 했다. 참아야 했다. 안정이 결핍된 그녀는 위험해지고 있었다. 가장된 안정은 그녀를 벼랑으로 몰았다. 나무꾼 가족의 생계와 살아가는 문제가 언젠가부터 보이기도 했다. 돌아가는 것, 희망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게 위태로웠다. 그리움이 밀려왔다. 함께 웃던 사람들, 시간들, 그것들의 이야기들, 온통 익숙하고 따뜻했던 세상. 눈물이 흘렀다. 그때부터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홀로 산을 찾았다.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첫 아이를 낳기까지 마음은 허공을 날아다녔다.
3년간 인간 세상을 경험했다. 저마다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 살아가는 이야기들에 상처가 배어 있었다. 사람들은 상처에도 웃었다. 아픔과 고통을 품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아픔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떠도는 이야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흉흉한 사연들이 많았다. 어떤 이는 죽었다고 했다. 어떤 이는 아직 매 맞고 살고 있다고. 어떤 이는 팔렸다고도 했다. 남을 부리고 사는 이도 있다고 했다. ‘누구에게’, ‘누구를’이 빠진 완벽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의미였다. 파괴된 삶. 궁금해할수록, 깊이 들어갈수록 그런 이야기는 쉬이 사라졌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주인공도, 목격자도. 그녀의 상처는 풀어낼 수 없어 더 단단해지기만 했다.
다시 산이 궁금해진 것은 스치듯 귀에 들어 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한 순간도 잊지 못한 그날의 기억이 바람을 타고 다시 날아왔다. 금방 묻힐 이야기였다.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했다.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스스로 찾아야 했다. 답은 산에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아이가 둘이었고 그녀는 가족이라는 굴레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아무도 그녀의 산행을 막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와 나선 첫날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읍내에 나가 기분 좋게 돌아오는 날이면 그녀와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조심스러운 시작이었다. 무척 놀랐다. 그날의 이야기는 둘 사이의 금기였다. 그 금기를 남편이 깬 것이다. 시작이 어려웠을 뿐 다음엔 궁금했다. 자꾸 들으니 당시의 상황을 복기할 수 있었다. 다음엔 기다렸다. 이야기의 빈 부분을 맞추고 싶었다. 바람을 타고 오는 이야기와 남편에게서 나오는 말은 모퉁이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남편의 이야기인지, 바람의 이야기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날마다 의심하고 의심의 싹을 잘라냈다.
3년이 지났으나 마음은 여전히 조급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었으나 서두르면 안 된다는, 두 마음이 싸웠다. 그리고 오늘, 한쪽 모퉁이가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남겨진 이유를 알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길이 있었다. 있다고 확신했다. 돌아오는 내내 남편은 한 마디도 없었다. 저녁상을 물렸다. 남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랑했다고 했다. 사랑하고 있다고도. 처음 본 순간부터 운명이었다고. 그 운명이 우연히 찾아들었다고. 나무하다 위험에 처한 사슴을 도왔더니 날개옷의 비밀을 알려줬다고.
그녀와의 첫 만남 이후로 그는 수도 없이 갈등했다고 했다. 때때로 비어있는 그녀의 눈을 보며 괴로웠다고도 했다. 그렇게 긴 이야기를 이어갔다. 바람을 타고 날아든 말도, 이웃 누군가의 장난기 어린 말도,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그는 자신의 실수였다고 했다. 그의 행운은 무거운 침묵이 필요했다. 침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자랑하고 싶었고 드문드문 토해냈다. 날개옷의 위치도 묻는 대로 말해 주었다. 혹시라도 당장에 떠날까 봐 두려웠다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라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그녀는 신중한 이였다. 그녀를 믿었다. 꿈에서도 말해서는 안 될 비밀을 그래서 낼 수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그녀는 묵묵히 들었다.
일주일을 그녀는 고민했다. 자신이 살아온 3년의 시간에 그 정도의 숙고는 필요했다.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이 땅에 가둔 사람을 끊임없이 저주했다. 그녀는 자신이 내린 저주의 값과 용서의 값을 같게 매기기로 했다. 지난 시간을 그녀는 그렇게 지우기로 했다. 앞으로는 ……. 새로운 문제였다. 그녀가 단단히 쌓아 올린 고통과 상실의 무게를 가늠했다. 그가 짊어질 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각자의 몫이었다.
다음날 나무꾼은 무거운 마음으로 나무를 하러 산을 올랐다. 그리고 다른 날보다 일찍 산을 내려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없었다. 툇마루에는 그녀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무수한 날들을 풀밭에 잡초 뽑듯 나의 삶을 솎아 냈습니다. 누군가가 내 하늘을 허무는 것을 그리하여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며. 이제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다정함이 나와 나의 세계를 죽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습니다.*(이성복, <그 날>)상처 위에 나의 세계를 다시 쌓을 것입니다. 시간이 나를 앞지를 때쯤 당신은 내게 없을 것입니다.’
그녀는 걸었다. 그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어디든 먼 곳으로. 서늘한 계절이었다.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혹한의 추위도 잠깐의 봄날에도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이 온 곳, 하늘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곳에는 그곳의 규율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혹할 수 있었다. 땅에 내려와 살았던 세 해는 인간 세상의 법칙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자신이 낯설어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낯선 공간에 두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굴레를 좁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충분했다. 땅의 삶을 수용했다. 그에게서 떠나기 전 그녀는 그렇게 살기로 했다.
그녀는 철저히 그를 지웠다. 그로 인해 남겨지고 겪었던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지우는 시간은, 치유할 힘도 주었다. 사람들이 고통을 풀어내는 법을 그녀는 충실히 응용했다. 그녀는 하늘에 속해 있던 선녀였다. 그를 닮은 아이들을 그녀를 닮은 아이들로 키웠다. 아빠를 따르던 아이들은 엄마를 잘 따랐다. 아빠 손을 놓아주고 뒤돌아선 아이들 옆에 그녀가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의 상실이 뾰족해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상실은 곧 채워졌다. 소유하고 구속하는 것이 아닌 풀어 주고 놓아주는 사랑을 주었다. 밥을 짓고 있으면 아이들은 나무를 날랐다. 채소를 가꾸면 마당을 쓸었다. 같이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약속하지 않아도 규칙이 없어도 아이들은 곁에서 따라 했다.
산속에 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을 오래 보았고, 그들을 오래 기다렸고, 그들을 위해 오래 참았다. 그녀는 따뜻했다. 신중한 통찰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를 나누었다. 그들은 그녀와 함께 하는 일들을 반겼다. 그들 모두는 오랜 시간 각자의 시간을 걸어와 낯선 곳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경계와 의심이 조금씩 거두어지고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를 지켰다. 상실의 고통도 버려지는 아픔도 몫은 달랐지만 모두 가지고 있었다. 서로에 기대어 삶은 먼지처럼 차곡차곡 내려앉았다.
시간의 흐름은 삶을 규정짓는다. 그녀의 시계는 흐르고 삶은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