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상가 구석의 조그만 가게인데, 가게 앞으로 가게 넓이의 4, 5배 되는 빈터에 채소를 종류별로 적당히 묶어서 전시하듯 죽 늘어놓고 판매한다. 새벽시장에서 일찍 채소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구매하기 쉬운 양만큼을 정리해 놓은 부지런함에 감탄이 일곤 했다. 새벽부터 부지런 떨었을 나이 지긋한 주인 내외의 행동들이 눈에 그려진다. 마을의 채소 시장이 일찍부터 북적거린다. 가는 길에 그 광경을 보며 잠깐 머뭇거리며 탐색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얼마나 남았는지, 무엇이 남았는지 확인만 하며 돌아오곤 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가게를 다시 만났다. 하루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요즘 한창인 김장 배추와 무는 이미 동이 났다. 아침에 꽤 많은 것을 보았는데. 우리 가족이 자주 찾는 것들이 작은 단위로 묶음 포장되어 있다. 오늘은 두 가지 고른다. 감자와 청양고추다. 현금으로 계산하고 뒤돌아서는 데 두 내외가 이어가던 말소리가 귀에 꽂힌다.
“무슨 남자가 다 삐지고 그러냐?”
“왜, 남자는 안 삐지나?”
아이들의 장난 같은 말투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다는 것을 느낀다. 두 분의 장난기에 건강한 가족을 만난 느낌이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늘 욕을 입에 달고 다녔다. 추임새로, 습관적으로 넣는 말들. 상스럽다는 느낌은 예전에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마음은 점점 더 불쾌해졌다. 아이들의 거친 말투에 나는 매일이 쓰레기통에 하수구에 처박히는 기분이었고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었다. 못 참겠다고 생각되면 아이들 옆에 가서 가만히 서서 얼굴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한 녀석이 웃으며 선생님 계신 데 그런 말 하면 되겠냐며 친구를 향해 점잖을 떨며 그 자리를 피했다.
학교를 그만두고도 길에서 아이들을 자주 마주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내 학생도, 내 아이도, 이웃 누구의 아이도 아닌, 길에서 마주치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 그냥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었고, 그 학생들의 입에서도 학교의 아이들이 하는 말과 똑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폭포수였다. 쏟아진 말들은 내 귀에 닿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의 기분은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상쾌해졌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같이 길을 가는 지인이 말했다. 저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안 좋다고. 무슨 생각으로 애들이 저런 말들을 거침없이 뱉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한 공간에서 아는 얼굴이 역시 아는 얼굴을 향해, 심지어 모두를 잘 아는 내 앞에서 던지는 그 소리들은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르는 얼굴이 모르는 얼굴을 향해, 전혀 나를 의식할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는 괜찮았다. 그냥 추임새로 들렸다. 심지어 귀엽고 깜찍할 지경이라고 대답하며 학교에서의 한때의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괜찮은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은 쓰레기통에도 하수구에도 처박히는 것 같지 않았다. 저런 말을 하는 심리가 무엇일까. 상대에게 굴욕을 주면서 배우는 문화, 굴절되고 왜곡된 권력의 표현이라고 지인은 말했다. 글을 쓰며 아름다운 우리말을 쫓았다. 순한 언어를 채집했다. 특정 언어에 무뎌진 것을 경계해야 했다.
언어는 사회적 산물이다. 그렇기에 언어를 통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소통은 관계의 윤리를 지켜야 한다. 언어의 사용은 개인의 범주다. 그러나 남을 억압하는 속된 표현은 자신도 그 범주에 가두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