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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12. 2021

비 오는 날 아침


날이 밝았는데 밖은 어둡다. 베란다 창틀에 물방울이 걸려 있다. 창을 열어보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바람도 세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사람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바람도 식물은 견딜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바람이 있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한계는 인간이 정하는 것이고 자연은 인간들의 생각보다 훨씬 잘 이겨내고 잘 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밖을 나선다. 비 오는 길은 사람이 적다. 오가는 사람 한둘, 바쁜 걸음을 보니 급한 용무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 비에 이 바람에 하릴없이 걸을 리는 없을 터이니. 나 역시 용무가 있다. 모닝커피. 집에서 커피 향 가득하게 갈아서 내려 먹던 것을, 가까운 커피숍에서 더 나은 맛을 찾았다. 사러 가기 시작한 것이 꽤 되었다. 비바람을 뚫고 가는 중이다. 태풍급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그렇다 해도 기어코 나섰을 것이다. 이미 아침의 루틴이 되어 버렸으므로.


길 곳곳이 고르지 않고 곳곳이 파여 있는 것이 비 오는 날은 확연히 드러난다. 물웅덩이를 피해 요리조리 걷는다. 이렇게 조심해도 어차피 신발은 젖을 것이고 양말을 타고 축축하게 발은 젖어올 것이다. 왜냐하면, 늘 신는 신발은 가볍고 낡았지만 편해서 비에 젖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만을 신기 때문이다. 낡은 것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 서로 길이 들었다. 이 길에 가끔 오토바이나 전동차가 지나면 깜짝 놀라 피할 곳을 찾느라 허둥댄다. 웅덩이에 바퀴가 일으킨 마찰로 빗물이 튀기 때문이다. 그들도 조심하겠지만 아무래도 빠르게 지나치니 느긋한 사람을 살피긴 어려울 것이다.


오늘은 지렁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그것들이 엄청 빠르거나 물에서 유영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느릿느릿 슬금슬금 배를 밀고 몸을 한껏 늘인다. 마음껏 몸을 적시고 숨통을 틔는 것 같다. 그것들의 여유로운 쉼이 마지막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들은 모를 것이다.


언젠가 비 오는 밤길에 지렁이 꼬리를 밟아 나머지 부분이 내 복숭아뼈 부근을 때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 소름 끼쳤던 사건 이후로 나는 그것들의 등장에 예민하다. 밤에는 불빛이 물에 반사되는 흐릿한 빛에도 시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나다닌다. 지금은 아침 시간이니 그럴 필요는 없다. 구름이 해를 가렸어도 길은 훤히 보이고 그것들도 훤히 보인다.  


아마 그것들도 훤한 아침의 밝기를 느낄 것이다. 두려움, 공포를 느낄까. 스스로 조심이란 것을 할까. 아침에 길에 나선 것에 대해 아차 싶을까. 폭신한 흙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포기할까. 생의 마지막 비의 축제를 즐길까. 이미 무언가에 의해 끝장난 것들도 있다. 나쁜 생물은 아닌데 그런 마지막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하긴, 낚시찌에 걸려 인간의 유희로 죽는 것들도 있으니 그것들의 운명을 애도할 필요까지야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땅속 생물체 전체 무게의 80%를 지렁이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지렁이’ 이름이 징그러워서 지렁이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만, 지렁이는 ‘지룡(地龍)’, 즉 땅속의 용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의학서인 동의보감에도, 중국 명나라 때 약학서인 본초강목에서 지렁이는 지룡(地龍)으로 지칭되어 있으니 하찮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흔한 지렁이지만 모두가 아는 바처럼 지구 토양의 안녕을 짊어진 파수꾼이기도 하고. 무엇이든 소화시켜서 지구의 창자라는 뜻의 ‘룸부리쿠스(Lumbricus)’라고 부른다 하니 지구를 위해 인간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생물일지도.


게다가 지렁이의 피부는 건조를 막는 특수한 기름 성분을 가지고 있어 립스틱 성분에도 들어간다는 말을 최근 듣기도 했다. 여성용 립스틱의 촉촉함을 유지하게 하는 비밀이 지렁이에 있다니, 바를 때마다 지렁이에게 미안해해야 할까. 알게 된 정보가 썩 유쾌하지는 않은데, 물비린내까지 훅 올라와 온몸에 들러붙는 느낌이다.


물방울이 정수리에 똑떨어진다. 차가운 기운에 소름이 돋는다. 우산 천장을 올려다보니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바느질이 촘촘히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전에도 보고 의식했는데, 수선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비가 그치면 바로 잊고 있다가 다시 비가 오면 무심코 우산을 들고 번번이 이런 식으로 확인을 하게 된다. 한 번 의식하니 차츰 일정한 간격의 자극이 느껴진다.


떨어진 빗물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마음이 급해질 법도 한데, 몸에 닿는 빗방울이 나쁘지 않다. 어느새 한두 방울 흐르는 것을 즐긴다. 신발은 이미 축축하다. 양말을 타고 물기가 올라온다. 이왕 젖은 것 우산을 아예 접고 분위기를 낼까 생각해보지만, 드문드문 바삐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받을 것 같아 마음을 누른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주저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오늘처럼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비를 맞아 보는 것도 그렇다. 나이가 주는 압박, 초라함은 절대 사양이다. 지나치게 가벼워 보이는 것도 사양이다. 목젖이 드러나도록 통 크게 웃는 웃음도,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속내를 표현하는 것도, 쉽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나 도움을 주는 것까지도, 화를 자제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조심스럽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코끝에서 커피 향이 어른거리며 물비린내와 섞인다. 푸른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과 꽃의 향과도 어우러진다. 되도록 천천히 걷는다. 한적한 길 위의 이 느낌을 오래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다.


어느새 집에 가까워진다. 놀이터에 나와 흡연하는 아저씨가 눈에 띈다. 담배 연기가 진하게 주변 공기를 잠식한다. 지금껏 맡았던 온갖 것들의 향이 일순간에 사라진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다시 말해, 사적 감정이 없는, 냄새의 근원을 향한 이유 없는 몸의 거부 반응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되도록 빨리 자리를 피하는 것이 마음을 의지대로 조절하는 길이다. 걸음의 속도를 두 배는 빨리한다.


집이다. 커피를 마신다. 밖에서 느낀 묘한 느낌의 여운을 곱씹는다. 행복한 주말, 느긋하게 여유를 즐긴다. 베란다 식물들도 비 오는 날을 반기는 듯 잎의 윤기가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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