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가족이 오랜만에 모였다. 공통의 관심사를 찾다 넷플릭스에 이르렀고 '오징어 게임'을 얘기했다. 난데없는 오징어에 게임 얘기가 뭔지 몰랐다. 연예오락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게임 중 하나로 알아들었고 희한한 게임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라고 했다. 그것도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라고.
그동안 공중파의 일일 드라마는 물론이고 주말 드라마도 뭘 하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살았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지내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몸의 여유도 없었다. 채널을 돌리다 나오는 드라마의 제목을 봐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이라는 제목이라니, 들려오는 정보로는 오징어 게임을 알고 있어야 할 나이지만 기억에는 없었다. 드라마의 제목치고는 너무 가벼워 보이기까지. 인기 있는 드라마라면 제목부터 뭔가 의미심장한 깊이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생각 없이 붙인 이름인 것 같았다. 안 봐도 뻔하다고 생각하고 정리하려는데 넷플릭스 시리즈 1위라고 했고(글로벌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 9월 24일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글로벌 톱 10 순위 세계 1위/2021.09.25. 전자신문) 봐 줘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은 본인은 잔인한 것 보기 싫으니 보고 요약해서 얘기해달라고 했다. 볼만하니 봐도 된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였다. 시작은 해보자고 생각했고 바로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시간은 오후 6시 30분. 9회 차를 모두 마쳤을 때 시간이 자정이 넘었을 때니 6시간 이상을 꼼짝도 하지 않고 드라마에 집중했다. 일단 흡입력이 있는 드라마는 틀림없었다.
456억의 상금의 덧에 걸려든 삶의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처럼 나도 꼼짝없이 드라마에 낚였다. 목숨을 담보하는 게임에 맥없이 이끌릴 정도로 삶의 의미를 저당 잡힌 사람들의 가차 없는 생존 난투극. 생존 게임에서 누구도 손잡고 싶지 않은 1번 참가자인 노인 일남(오영수)은, 죽음의 게임에 사람들을 말로 세우는 게임의 기획자이며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 말이 되는 희열을 맛보기도 한다.
특정 집단의 유희를 위한 살인, 납치, 폭력, 장기밀매 등 온갖 불법이 등장하고 엄격한 계급의식,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가 등장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의 심리였다. 특히 구슬 뺏기 게임에서의 여러 상황들은 인간의 마음을 해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극한에 내몰린 인간의 심리에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자본이 개입되었을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훈(이정재)은 어려운 게임이 될 줄 알고도 기꺼이 1번 참가자,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노인을 파트너로 선택한다. 고마운 마음에 일남은 기훈에게 '깐부(동네에서 구슬과 딱지를 네 거 내 거 없이 같이한다는 의미)'를 맺자며 천진난만하게 새끼손가락을 건다.
기훈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상우(박해수)는 선택을 망설이는 기훈을 두고 게임은 머리가 아니면 힘이라며 외국인 노동자인 알리(아누팜 트리파티)에게 자신과 한 편이 되어 살아남자고 말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머리 좋은 그는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누구에게도 선택을 받지 못하는, 원한다고 해서 선택할 수도 없는 새벽(정호연)은 역시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지영(이유미)과 짝이 된다. 강력한 한 팀을 위해, 끈끈한 연민이나 혹은 동질성으로 각각 한 팀이 되었지만, 게임은 한 편이 되어 살아 남는 것이 아닌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
기훈은 노인의 치매를 이용해서 구슬을 취하면서도 도덕적 딜레마에 휩싸인다. 상우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본능에 충실해서 좋은 머리를 이용해 순진한 외국인 노동자인 알리를 속인다. 살아남을 이유가 있는 새벽과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지영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서로의 이야기를 한다. 일남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세트장이 분명했을 동네의 정겨운 풍경처럼 가장 정적이며 각각의 개인의 내면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기훈은 한 번도 이기기 위한 약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 최선이 깨지는 지점이 구슬 뺏기 게임이었던 것 같다. 시작은 노인의 치매 연기 덕분이다. "내가 뭐라고 했지?" 이 단순한 말 한마디에 그는 자신을 위한 선택을 기꺼이 하게 되고 게임에서 간신히 살아남는다. 자신만의 고유한 인간성을 유지하고자 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속여야 하는 이율배반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구슬 뺏기 게임에서 기훈은 일남의 '깐부'정신으로 남은 구슬 하나를 받았고, 상우는 알리를 속여 다른 사람들 사이를 누비게 하고는 알리의 구슬을 빼돌려 살아남는다. 새벽은 상대인 지영이 게임에서 지는 선택을 함으로써 살아남는다. 게임이 아닌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기훈은 과거 강성노조 출신이었다. '강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드라마에서는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인간성을 지키는 유약해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지막 순간 456억을 기꺼이 포기하고 게임을 끝내겠다고 말하는 것도, 상우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바람에 456억이 수중에 쥐어졌을 때도, 그는 많은 사람의 피값으로 받은 돈이기에 한 푼도 쓰지 않는다. 사람의 목숨을 장난처럼 빼앗는 상황과 그 상황 속에 있던 자신을 부정하며 인간적인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인간적 가치와 시장적 가치 사이의 모순은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가치는 공동체 생활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가치에 따라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의 방향을 정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크리스티안 펠버, <모든 것이 바뀐다> 중)
인간에 대한 연민을 믿지 않는 일남과 반대인 기훈의 마지막 내기, 일남은 죽고 홀로 내기에서 이긴 기훈은 오랜 방황에서 깨어나 다시 일상을 산다. 기훈의 삶은 인간적인 가치를 지키며 시장적 가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딸에게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려고 하다 다른 길로 향하는 기훈의 모습이 경마장에서 탈탈 털리고 딸의 생일에 인형 뽑는 기계 앞에서 선물을 준비하는 것처럼 답답해지지만, 가치 있는 행동의 방향이길 기대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공격했던 진정한 이유는 돈이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왜곡하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인간적 가치 대부분을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강신주, 한겨레 2014.5.11.)
자본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임에서 '순수한 이념'과 '평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어떠한 차별도 없는 동등한 기회의 부여'라고 말하지만, 자본과 계급의 벽은 인간적 가치를 왜곡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나의 생각이다. 자본은 계급을 만들고 계급은 차별을 만드는 사회이기에 선택적 정의는 인간을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직은 인간성이 살아 있고 지키고 싶어 하는 기훈에게서처럼. 자본과 권력을 향해 정면대결을 벌일 것 같은 드라마의 결말처럼.
여러 곳에서 굵직한 화두를 던지지만 어린이들이 하는 가벼운 게임과 규칙이 단순한 규칙은 심오한 내용을 최대한 무겁지 않게 풀어내고 있어서 드라마는 충분히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