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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Dec 22. 2019

행복으로 남은 포차

국물 떡볶이와 순대



‘먹방’이 한창이다. 유튜브에서는 많이 먹는 사람, 한 종류만 먹는 사람, 도전할 만한 음식을 찾아 먹는 사람, 퓨전으로 잔뜩 시켜 이것저것 섞어 먹는 사람 등이 인기 유튜버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때를 같이해서 서민들의 주머니를 생각한다는 ‘만원의 행복’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괜히 의식주가 아닌 것 같다. 먹는 것만큼 사람에게 금방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다.


‘만원의 행복’은 직장인들이 한 끼 식사와 디저트를 해결할 수 있거나 간단한 회식 메뉴를 포함해서 선물 박스, 옷, 장난감 등을 만원에서 이만 원이 안 되는 선에서 즐길 수 있는 기쁨을 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연관 검색어로 ‘천 원의 행복’도 따라온다. 주로 분식 종류를 천 원짜리 몇 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십만 단위로 가면 이름이 바뀐다. 십만 원의 ‘기적’, ‘가치’, ‘분노’, ‘비애’, ‘창업’, ‘만찬’으로 이름의 무게가 가늠할 수 없이 무거워진다. 십만 원이라는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는 돈이 엄청난 것들을 안고 오는 중압감 또는 재앙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이 섬뜩하다. 더불어 천 원, 만원의 행복이라는 말도 그 사용이 가벼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아이들 어렸을 때, 큰아이에게 오백 원을 주면 떡볶이와 순대를 먹고 왔다고 했다. 떡볶이와 순대가 생각나면 내게 오백 원을 요구했고 동생과 손잡고 나가 만족스럽게 먹고 오는 것을 반복했다. 언젠가는 싸 들고 온 적도 있다. 중간에 마법이라도 부린 것인지, 어묵 국물까지 봉지에 야무지게 담아 가져온 떡볶이와 순대였다.


시장에 가면 시장통 끝나는 곳에 여러 대의 분식 포장마차가 있었다. 그중 한 집에서 아이들은 늘 그것을 먹고 왔다. 숫기가 없어 어디 가서 말도 못 하는 아이들이 떡볶이와 순대는 참 열심히 먹으러 다녔고, 별 탈 없이 만족스러운 함박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아이들 어린 시절도 오백 원은 값어치 없는 돈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두 남매가 나란히 손을 잡고 와서 어른들이 먹어도 매운 떡볶이와 아이들이 꺼리는 순대, 허파 등을 너무 잘 먹어 조금 더, 조금 더 주게 된 것이었고, 그걸 모르는 아이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오백 원에 순대와 떡볶이를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며 오백 원어치의 떡볶이가 된 것이었다.


피아노 학원에 둘이 손잡고 오가는 길에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던 그곳 분식집은 원래 실개천이 흐르는 곳을 콘크리트로 덮어 가게가 하나둘씩 생겨 늘어나며 시장이 서게 된 곳이었다. 집과 가까워 늘 들르던 시장이었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난 후 그곳은 원래대로 개천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이사할 때 가장 아쉬워했던 것이 오백 원 떡볶이와 순대였다.




이사 온 후 생각이 나서 다시 시장을 찾았을 때, 개천이 된 그곳은 사람들이 발 담그며 여유 있는 한때를 즐기고 있는 공원 겸 휴식 장소가 되어 있었고, 그 자리에 있는 시장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깨끗하고 널찍했지만, 옛 맛은 사라진 풍경이었다. 특히 그 분식 포장마차는 진즉 사라지고 없었다.


그 어린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떡볶이와 순대를 좋아한다. 예전에 국물을 듬뿍 넣어 주던 포장마차의 서비스대로, 국물에 떡이 풍덩 빠진 국물이 흥건한 국물 떡볶이는 지금도 가끔 포장해와서 온 가족이 즐기는 메뉴가 되었고 오백 원이 주던 행복한 기억은 매번 얘기할 때마다 가족을 즐겁게 하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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