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天問)을 보고
“홀로 서는 조선을 꿈꾸는 것뿐이오.”
한글 창제를 두고 협상을 하는 영의정에게 세종이 하는 말이다. 당신도 조선의 대신이 아니냐는 말이다. 조선이 홀로 서는 것에 절대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항변이기도 하다.
역사상 꼭 있었어야 할 임금이고 그분이 우리나라의 임금이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의 권력이 백성을 위해 자신의 밥그릇을 내어놓는다는 말인가. 대화에서 영의정은 세종대왕과는 다른, 꿈이 아닌 현실, 밥그릇을 이야기한다.
“글은 사대부의 밥입니다. 밥은 권력이구요.” 백성들에게 글을 내어준다면 어느 사대부가 가만히 있겠느냐는 말에서, 지금이나 그때나 권력을 쥔 것들은 다 똑같구나,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아이들과 나만의 한글날 기념식을 치렀다. 한글 창제와 관련된 영상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 한글로 인해 현대 사회에서의 언어로서의 한글의 위상이 얼마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권력이 되는 언어를 무수한 고뇌를 통해 만들어 세상에 기꺼이 내어놓은 세종의 그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등 세종의 한글 창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고 토론했다. 정치 논리로 한글날이 국경일에서 빠졌을 때도, 하루 놀고 못 놀고 문제가 아닌 한글의 정신이 훼손되는 것을 염려했다. 누구의 말대로 훈민정음 자획 하나 사용하는 것도 아까운 이들이 한글날을 좌지우지하다니.
장영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이유를 한글 창제와 연관 짓는다. 그러기 위해 장영실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건인 ‘안여’ 사건이 영화의 첫 시작이다. 안여 사건 당일에서 첫 화면을 열고, 안여 사건 4일 전, 다시 20년 전 세종과 장영실의 첫 만남 당시로 돌아가고, 그리고 다시 사건 이후인 현재로 돌아온다. 세종의 질병은 세종에 대해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와병의 상태를, 노쇠한 몸을 첫 장면에 보여줘서 과연 그가 천재적 애민 군주인 세종이 맞나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세종과 장영실의 첫 만남으로 돌아가면 세종의 모습이 달라진다. 마음이 놓이고 반갑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군주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함께 완수해 내는 과정이 무척 다정하다. 자격루를 만드는 장영실을 찾았을 때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든가, 다음날 장영실의 설계도를 보며 잠을 깨우는 모습이 그렇다. 궁궐의 석돌에 앉고 누워 별을 꿈꾸는 장면, 비가 와서 '간의'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세종을 위해 침전의 불을 모두 끈 후, 창호를 온통 먹으로 칠해 밤하늘을 연출하고, 내관을 시켜 밖에서 불을 들고 있게 하고 창호의 구멍을 내어 별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 영화가 별을, 꿈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꿈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의 인상적인 대사. 천민은 별을 갖지 못한다는 장영실의 말에, 주군의 별 옆의 별을 기꺼이 장영실의 별로 만들어 주는 장면은 가슴이 저릿하고 뭉클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견제에서 (혹은 내부의 권력 있는 자들의 견제에서) 꿈을 포기하려고 하는 세종을 향해 장영실은 순박한 이의 모습 그대로 격정을 품고 이야기한다.
“전하께서 꾸신 꿈을 제 이 두 손에 담은 것이 죄가 된다 말씀이옵니까?”
“그것이 바로 니 죄다.”
장영실의 폭발적인 호소력에 대응하는 세종의 쓸쓸한 자조의 말이다.
세종을 맡은 한석규는 힘 빠진 세종의 역할이나 서슬 퍼런 권력의 역할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훌륭한 배우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도포 자락에 걸려 넘어지는 최민식의 연기 역시 괜히 명품 배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영실은, 세종이 ’정음’을 담보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영의정과 타협한 것을 알게 된다. 세종의 뜻이 자신으로 인해 꺾이는 것을 막고자 스스로 저지르지 않은 역모를 고백한다. 같은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지키기 위해 세종의 거래를 정면으로 막는다. 이렇게 해서 한글은 현재 우리에게 와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장영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자판 위에서 놀 수 있다는 것.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세종이 이 땅에 다시 내려와서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를 베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신분이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같은 하늘을 보면서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현대판 신분이 되어버린 부의 차이 없이, 모두가 같은 꿈을 꾸는 세상이 가능할까. 세종처럼 같은 꿈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가능했을 수도 있는 그때의 이야기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들려오는 김광석의 노래만큼 쓸쓸하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