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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15. 2024

보이는 세상, 시력일까 마음일까

시험이 끝나면 과목마다 채점하고 점수를 공개적으로 공공연하게 공표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학생 인권침해 논란이 있어서 학생들의 성적의 순위를 공개하는 것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성적 공개도, 순위별로 자리를 배치하는 것도, 성적이 나쁘면 체벌하는 것도 일반적이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못하지는 않았다. 시험을 꽤 자주 봤던 것 같다. 공부를 안 했던 터라 주로 수업시간의 집중력과 기억에 의존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습서라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모든 과목이 총망라된 자습서에는 핵심 키워드, 시험에 꼭 나오는 문제, 꼭 기억해야 할 핵심이 조목조목 정리되어 있었다. 자습서가 책이 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책에 대한 욕심을 처음 가졌던 것 같다.


시험과 시험 사이의 쉬는 시간 10분, 그 짧은 시간에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같이 시험범위를 정리하자고 했다. 함께 친구의 자습서를 보았다. 시험 범위의 내용을 빠르게 한번 쭉 훑고 지나갔다. 이런 방식이 시험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다만, 친구의 말대로 그야말로 초단위로 시험을 대비해 본 경험이었다.


단기 기억이 효과를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공부했던 내용이 시험 문제로 나왔던 것 같다. 시험지에서 정확히 답이 선명하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성적에 관심도 없었고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결과는 좋았다. 100점을 맞은 친구는 없었고 한 문제를 놓친 내 성적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그 과목 수업시간에 나는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틀린 문제가 실험실에서 실험했던 내용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너 색맹이야?
며칠 전에 실험한 것을 틀리는 게 말이 돼?
너는 더 혼나야 돼.


한 문제의 비중은 같은데 내가 왜 더 혼나야 하는지, 월등히 잘했는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기분으로 야단을 맞았고 손바닥에 매도 맞았다. 게다가 색맹이라는 공개적 비난과 조소는 이후로 내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다.


지금처럼 안과나 안경점이 건물마다 하나씩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단지 보이고 안 보이고의 문제가 아닌 색감의 문제로 안과를 찾아야 하는 건지, 간다면 해결할 수는 있는 건지, 그냥 그대로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주변의 색이 나름 보였던 터라 색맹은 아니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나중에 색약이라는 용어도 들었지만, 어디까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선천적 색약은 태어날 때부터 시세포의 기능이 저하되어 발생하지만 후천적 색약은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 망막 및 시신경 손상, 망막 질환 등에 의해 발생한다고 한다. 당시는 정보가 없었다. 그렇게 심각한 증상이라면 만약의 상황을 생각해서 당연히 검사를 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 또한 당연히 하지 못했다.


이때의 사건으로 눈건강에 대한 자신감은 떨어졌지만 결과적으로 색과 관련된 문제는 없는 채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이후의 건강검진에서 색맹이나 색약 진단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당뇨도 없고 망막 질환도 없다. 다만 색맹일 뻔했던, 스스로 색맹 또는 색약의 기억과 그 기억을 안고 살아온 시간만 남았을 뿐이다. 시험에서 틀린 것은 나의 부주의였거나, 실험 시간에 딴짓을 했거나 아마도 실험 자체에 전혀 흥미를 갖지 못한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때의 사건 이후로 안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떻게라도 안경을 쓸 기회를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눈이 나빠져야 했다. 일부러 책도 가까이 보고 TV도 시청하고. 손 안의 스마트 세상인 현재를 떠올리면 특별히 노력이랄 것도 없겠지만 눈이 나빠진다고 만류하는 행동들을 나는 몰래 했다. 노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근시를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 그렇게 40년, 점차 세상이 뿌옇게 변했다.


세상이 흐려진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사실 요즘엔 두렵기도 하다. 우선 오래 책을 보기 어렵다. 거리의 풍경도 내가 본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없다. 안경에 의존해야 대상이 비로소 선명하다. 눈은 세상을 보는 창인데, 내 창은 상당히 불투명하다.


안경 그 자체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여름에 땀이 흐르면 안경도 흘러내린다. 초점은 흔들리고 무게는 더해진다. 두통을 덤이다. 모자나 마스크를 더하면 안경의 갑갑함은 배로 심해진다. 겨울철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었다가 실내에 들어섰을 때 뿌옇게 시야가 가려지는 우스운 모양새는 먼저 유쾌하게 웃어넘기지 않으면 급 우울해진다.


특이하게 시력을 회복했다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시력은 점점 나빠진다. 나이가 드니 노안에 난시의 문제도 있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이제는 한 치 앞도 흐릿하다. 점점 더 가까이 눈앞으로 들이밀어야 분명해진다. 항상 목을 앞으로 빼다 보니 거북목이 되었다. 목을 바로잡겠다고 벽에 등을 대고 5분 10분 서서 자세를 교정하는 연습을 매일 한다. 연습이 무색하게 다시 생활로 복귀하면 세상을 보기 위한 조건반사처럼 목은 다시 앞으로 쭉 빠진다. 영락없는 거북이다.


15년 정도 렌즈로 시력을 교정했다. 그러다 5년 전부터 안경을 다시 썼다. 어떤 것이 덜 불편한지의 선택의 기로에서 눈에 바로 닿는 렌즈의 압박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코에 가해지는 압박과 성가심 그리고 두통, 그 외의 불편을 이제는 견딜 수밖에 없게 됐다. 기술이 좋아져서 안경테도 잠자리 날개만큼 가벼워졌다지만, 안경 알도 몇 번의 압축을 통해 무게를 한층 줄일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세 번 압축한 안경알은 잠깐을 써도 콧등에 선명하게 자국을 남긴다.




선명하지 않는 세상은 우울하다. 불편하다는 말 정도로는 사실 충분하지 않다. 세상의 오묘한 변화를 선명하게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절반 정도, 아니 그 이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감각이 절반 정도 삭제된 세상이라니, 그게 내 세상이라서 더 슬프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던 그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더불어 지금까지 온전하게 세상의 전부를 담을 수 있도록 잘 관리한 사람들이 부럽다.


감각은 우리를 경이로움의 세상으로 인도한다. 감각은 자아와 세상을 연결한다. 다시 말해 감각이 존재의 이유를, 그리하여 거리낌 없이 세상에 감탄할 이유를 제공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시각은 불완전하고 나의 세상은 막연한 기억과 편견으로 겨우 형체를 잡아간다.


애슐리 워드가 쓴 <센세이셔널>에서는 시각이 완벽하지 않아 걱정스러운 나의 마음을 위로한다. 책은 '눈에서 받은 날것의 입력에 주관적 특질과 편견을 부여하는 것'이 뇌의 기능이라며 '시력을 철석같이 믿는 것은 지나친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내 나쁜 시력도 크게 걱정하거나 불안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어린 시절로부터 시각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현재의 내가 되었다. 그러나 시각에 대 부정적 생각은 정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 시각, 후각, 촉각, 청각, 그리고 미각마저도 뇌의 작용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라면, 모든 감각은 뇌의 주관적 특질과 편견에 의해 상당한 변형과 왜곡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세상을 보는 필터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시력, 시각의 세계 또한 내 마음의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보이는 대로의 세상을 인정하고 좀더 느긋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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