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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22. 2024

나만의 몰입 공간, 카페에 대하여

일주일 내내 집 근처에 카페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강의로 나가는 책 쓰기 교실에서 아이들이 제출한 원고의 정리, 메신저로 독촉, 응원, 첨삭을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난다. 다음으로 브런치에 매주 올리는 원고 쓰기도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거리를 걷다 보면 이것도 써야지, 저것도 괜찮겠다 생각하지만 막상 자리에 앉으면 신기하게도 모든 생각이 휘발되곤 한다. 빈 화면을 놓고 생각에 잠기다 보면 다시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나지 않는 생각을 붙들고 오래 있을 수는 없다. 할 일은 많고 머리는 한계가 있으니 이럴 땐 빨리 패스를 외치는 것이 합리적이다. 언젠가 문득 다시 떠오르게 될 경우 잊지 않고 메모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은 일단 넘어간다.


지난주 수요일쯤 자료의 정리를 부탁받았다. 어렵지는 않으나 시간을 요하는지라 꼭 시간만큼의 결과물을 내어 놓았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꼬박 5일을 투자해서 부탁받은 자료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은 손도 느리지 않고 머리도 녹슬지 않았다는 자기 증명 외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과 약간의 수고비로 챙기는 보수까지, 꽤 유용한 시간이었다.




나는 카페에서 일하는 이제 막 60대다. 나이가 별한 감정을 더하는 것은 아니라서 굳이 나이를 얘기하는 것이 우습기는 하. 지정석처럼 앉아서 진득하게 일하는 오전 시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잡다한 사념에 젖을 만큼의 감상은 오늘도 없다. 늘 할 일이 있고, 읽어야 할 책도 늘 준비하고 있어서 매일 알차게 애용할 뿐이다. 집에서는 자잘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여 집중하기 어려운데 이곳에서는 오롯이 목적에 부응할 수 있어서 좋다.


카페는 온갖 군상들의 집합소다. 아침 일찍 내가 나가는 시간에 맞춰 카페에서 고정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 물론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오면 나는 왔구나, 하며 내심 반기는 것도 같다. 커피를 주문하고 홀로 앉아 무념의 시간을 보내는 듯한 그 사람은 정확히 한 시간을 보내고 카페를 나선다. 무언가를 가져와서 정리하고 읽는 것이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카페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약간의 궁금증이 생긴다.


책과 펜, 노트북을 가져와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몇 있었다. 책을 펴고 필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왠지 반갑다. 손으로 쓰는 정성과 노력은 컴퓨터 자판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나도 한동안 책을 필사한다고 하며 책 몇 권을 이어서 쓴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의 노력이 나의 글쓰기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쳤으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그때의 단어와 문장과 문체가 내 글쓰기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쓰는 그이가 특별하고 대단해 보인다.


컴퓨터를 펼치고 작업을 하며 간간히 전화통화도 하며 업무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재택근무 하는 것이거나, 근무가 비교적 자유로운 나 홀로 직업군처럼 보이기도 했다. 젊은 연령대가 와서 과제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진지하게 교환하기도 한다. 소음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라서 마음껏 의견을 나누어도 누군가에게 방해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 여러 면에서 도서관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집중할 때는 백색소음으로 기능하는데, 가끔은 들리는 소리에 리듬을 타기도 한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따라 하기도 한다. 특정 부분의 인상적인 가사가 마음을 울리는 그 흥은 나에게만 통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옆에서 누군가 크게 따라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소리인가 싶어 깜짝 놀라고 만다. 상황을 파악하고 안도하는 것도 잠시,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을 찾는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르는 용기가 참 대단하다 싶다. 본격 버스킹이 아닌 카페에서 큰 소리로 노래 따라 부르기라니. 게다가 일행들도 아랑곳 않는다. 신기함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며칠을 연이어 나오다 보면 그 시간대에 같은 노래가 꼭 나올 때가 있다. 때로는 다음에 나오는 음악이 무엇일지 예측 가능하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한 달을 들어도 노랫말이 하나도 머릿속에 박히지 않는다. 알아 들을 수도 없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분명 우리말인데, 멜로디는 따라갈 수 있지만 가사는 들어오지 않는 신기한 현상. 역시 나는 옛날 사람이다.


매주 강의하러 가는 길, 짧은 시간이지만 차 안에서 꼭 라디오를 켠다. 내가 이동하는 시간대에는 70-80 노래들이 방송을 탄다. 10년 만인가 20년 만인가, 언제 들었는지도 까마득한 노래의 노랫말인데 어느새 입 밖으로 따라 부르고 있다. 후렴구만도 아니고 노래 전곡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기도 하다. 과거, 노래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깊이 각인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을의 어느 곳을 가도 건물마다 카페가 없는 곳은 없다. 카페만 죽 이어진 카페 골목도 흔하다. 자주 가는 카페의 건물에도 카페가 여덟 곳이 있다. 많다. 그 많은 카페가 모두 꽤 오랜 시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순간 자각한다. 한 블로그에서 최근 뜨는 창업 아이템으로 저가 카페 창업을 언급하는 것을 보기도 했고, 한국인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전 세계 1인당 커피 소비량의 두 배라는 보고도 있으니 카페는 과연 불패인 걸까?


그중에서 만인이 선호하는 스타벅스와 메가커피, 체인은 아닌데 편안하고 따뜻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작은 카페가 내가 번갈아 찾는 곳이다. 커피 맛을 잘 모르지만 쓴 맛으로 따지자면 스타벅스와 메가커피는 내 입맛에는 상당히 비슷하다. 그리고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두 카페의 커피맛을 이렇게 비교하면 사람들이 커피 맛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메리카노를 원할 때면 값이 싼 것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오랜 시간 지인과 조용히 대화를 나눌 때는 작은 개인 카페를 찾는다. 딸과 함께 할 때는 주로 스타벅스를 찾는다. 메뉴에 대해서는 사실 말하기가 어렵다. 딱히 그 매장에서만 마실 수 있는 선호 메뉴가 따로 없기도 해서.


총선을 전후해서 국민의 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스타벅스는 서민들이 오는 곳 아니죠"라고 말하며 서민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전까지 한 번도 스타벅스가 서민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 발언이 황당했다. 가격이 비싸고 싸고의 기준은 있었지만 그것이 서민이 가고 못가고의 기준이 될 만큼의 차이가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발언이 스타벅스의 마케팅에 득이 됐을지 실이 됐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특이한 관점 이후로 스타벅스 매장을 보는 나의 시선은 그 발언을 했던 사람에게 건네는 시선처럼 싸늘해진 것은 분명하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으로서 몇 가지 고려하는 것이 있다. 우선 테이블이 적당히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카페 체인에서 운영하는 카페의 2인 테이블은 너무 좁다. 편하게 하나 더 이어 붙일 수 있도록 테이블이 이동 가능하거나, 글을 쓰거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이 확보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나 더하면 고개를 들어도 다른 손님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테이블이 엇갈리게 배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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