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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06. 2024

여백이 주는 위로, 그리고 안도감

바쁜 가운데의 한가한 틈으로

부엌의 작은 창가에 서 있으면 하루 두 번 시끌시끌 왁자한 소리가 들려온다. 오전 8시 30분. 오후 2시 전후. 내가 사는 동 옆에 붙어 있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등, 하교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가장 크고 풍성한 시간이다. 특히 아침 풍경은 소란함마저 음악처럼 들린다. 참 신기하게도 음색도 화성도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하나도 거슬리지 않는 변주곡처럼 작은 아이들이 건네는 앞뒤 없는 수다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루를 시작하는 정신없는 풍경이지만 순간 그림 속 한 장면처럼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은 채로 온기만 전해질 때가 있다. 스쳐 지나치는 순간을 포착한 크로키처럼, 모든 움직임은 멈추고 마음 저 멀리 떠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30년이 됐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학교와 유치원은 그 자리에 있었다. 과거와 같은 여전한 풍경인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우리 집의 아침은 바쁘지 않다. 각자 조용히 나가고 따로 조용히 식사를 끝내고 하루를 시작한다. 조용한 가족의 늦은 설거지를 할 때가 등굣길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다. 넋을 놓고 아이들의 꽁무니를 쫓는다. 팔딱팔딱 뛰는 움직임을, 가식 없는 웃음을, 세상을 향한 자유로움을 발견한다.


나를 방해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조용한 집안과 소란한 밖, 부조화의 조화처럼 묘하게 어울린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세상이 나를 통해 하나가 되는 느낌이랄까. 그 소통의 균열이 깨질까 봐 숨을 죽인다. 두 세상이 제각각 나눠지고 분리되면 나는 다시 덤덤하고 무감각하고 고요에 내던져진 나이 든 몸, 재미없는 세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기에.




나의 아이들은 어땠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딸은 시끄럽지 않은 아이였다. 큰 소리를 내는 것을 엄마만큼 조심스러워했다. 나의 힘들었던 시간 중에서 은연중에 위축된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달이 되었던 것이었을까. 딸은 가족 외식으로 들른 식당에서도 늘 조용히 움직였다. 움직임조차 없었다면 병증을 의심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궁금한 것, 신기한 것, 이상한 것에 반응하는 아이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하튼 딸의 조용조용한 그 모습을 보고는 사장님들은 좋아했고 손님들은 아이가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방해받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은 아이를 동반한 부부라면 태블릿은 필부 준비물이 된 것 같다. 음식점에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은 아이의 의자 앞자리에 태블릿을 놓고 영상을 틀어주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아이의 소란에 대처하는 부모와 업주, 손님들의 태도가 긍정적이지 않는 한 부모의 입장에서는 무엇이든 아이를 조용히 시킬 수 있는 도구를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요구에 최적화된 도구가 태블릿이라는 사실이 늘 걱정스럽다. 학교에 다니며 휴대폰이나 게임에 중독돼 놓지 못하는 아이들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 생활이나 친구 관계에 적응하지 못할뿐더러 학습 자체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구나 지금은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 노펫존 등 다양한 제재와 배제가 널리 퍼져있다. 이미 사안마다 찬반양론으로 팽팽히 갈려 어느 업주가 정도의 여론의 시끄러움을 감수할 생각을 갖고 있다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방침대로 영업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배제가 공론화된 분위기는 사실 위험하다. 내 아이들은 이미 장성해서 상관은 없지만 결혼에서 자녀를 낳게 된다면 내 문제가 되어 노키즈존에 민감해지고 걱정할 순간이 올 수도 있겠다 싶다. 노시니어존이 보도될 당시에는 마음이 조금 더 흔들렸다. 추레하고 목소리 크고 나이로 사람을 누르고 가르치려 하는 부정적인 일부 노인의 특성은 나도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공론화해서 나이 든 사람을 일반화하고 배제하는 것은 어쩐지 불편하고 거슬리는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혹은 중학생 정도 되었을까. 한 아이가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에 아예 드러누워 있었다. 가방을 베고 휴대폰을 손에 쥐고 편안하게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신기했다. 일찍부터 아이는 온몸으로 세상과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는 듯했다. 화들짝 놀라 눈치 보는 아이가 무안할까 봐 얼른 집안으로 들어왔다. 오죽 마음을 기댈 곳이 없으면 계단에서 저러고 있을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다음 날도 그 아이는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아마도 그 시간이 아이에게는 달콤한 휴식의 시간인 듯했다. 처음 마주쳤을 때 태도와 달리 아이는 우리 부부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자세를 바꾸지도 않았다. 아마도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읽힌 것 같았다. 조금은 따뜻하게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우리 집의 아이들도 자신들의 세상을 살아간다. 아주 가끔이지만 사회에 대해 격하게 의견을 내며 옳지 못한 사회에 대해 흥분한 속내를 드러낼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와 정치에 대한 의견을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우리 부부와 달리 아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때가 많다. 그저 그렇지요, 한다. 침묵도 대답도 긍정은 아닌 것을 안다.


지금은 밥도 같이 먹을 때가 거의 없다. 나가고 들어오는 시간이 조금씩 흐트러지더니 직장을 잡고 난 이후로는 우리 부부의 사이클과는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한 집에 사니까) 명목상으로는 매일 보는 가족이기에 서로의 시간을 배려하고 맞추고 하는 노력에 대해서도 이제는 서로 무감해지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름의 삶이 치열하고 힘들 지도 모르고. 그 와중에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고 예뻤던 아이들이 성장을 하며 다양한 변화를 보인다. 내가 잘 몰라서, 혹은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 당황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사회는 원래 이렇게 울퉁불퉁 순환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사랑스럽고 보기도 아까울 정도로 그림 같은 아이들이지만 가까이 다가와 삶으로 뭉뚱그려지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외로움과 수고가 눈에 들어온다.


내 아이들을 키우며 느꼈던 감정이나 주변의 상황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이 사실 내 것, 네 것으로 구분할 만큼 전혀 별개의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삶이 평화롭게 느껴지는 순간 두려움에 떠는 마음은 누구나 있고,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기대를 낮추며 느껴지는 안도감을 우리는 모두 경험한다. 어쩌면 다양한 상황과 사례가 서로에게 위로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나를 따뜻하게 하고 먼 기억으로 안내해 준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품는다. 가까이 층계참의 세상과 분투하던 아이의 두려움과 직장에서 땀흘리고 있을 아이의 수고로움을 마음으로 달랜다. 이제 집을 나선다. 약속이 있는 사람처럼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며 나의 바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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