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May 29. 2024

붕어빵과 뻥튀기와 화분

거리에서 만나는 다정함

휴대폰 건강 포인트는 하루에 만 보를 목표로 설정되었다. 걷는 만큼 주는 포인트가 재미있어서 건강도 챙기고 공돈도 챙기자는 마음으로 만 보 걷기를 시작했다. 꽤 오래, 아마도 6개월쯤은 강박처럼 만 보를 채워야 잠자리에 들 정도로 철저하게 지키기도 했다.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며 열심히 사는 내가,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며 지치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요즘 걷기를 대하는 마음이 우울했다. 목표도, 목표를 이루고자 애쓰는 마음도 그냥 숨이 찼다. 마냥 기운을 내는 것이 버거웠다. 걸어야 한다는 마음은 바쁘고 결과는 보잘것없는 하루가 늘어났다. 잠자리에 들 때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만 보가 뭐라고, 하는 생각을 붙들고 며칠 갈등했다. 이럴 바에는 만 보에 대한 강박을 버리자고 생각했다. 그날의 걸음만큼 수고했다, 잘했다, 칭찬하며 여유를 갖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외출이나 약속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정해진 강의를 제외하면 일부러 약속을 잡는 사람도 아니다. 정말 가야 하는 약속이 있을 때는 주로 차를 이용해서 이동한다. 집에서 주차장까지, 다시 주차장에서 강의 장소까지 이동하면 걷는 것은 끝이다. 천 보도되지 않는다. 한 나절 에너지를 쏟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이 몰려온다. 집안 청소를 하고 먹거리를 챙기면 어느새 하루가 저문다. 천 보의 하루가 저문다. 


약속이 없는 날은 억지로라도 꽤 걷는 편이다. 걷는다는 의무감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것에 가깝다. 카페를 들러 공원을 거쳐 시청 건물에 진입, 작은 도서관에 잠깐 들르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사실 작은 도서관은 서가를 오락가락하는 재미다. 눈에 띄는 책을 발견하지 못하고 나오는 날이 더 많지만 괜찮다. 책이 주는 안정감을 즐길 뿐. 책과 통하였다는 기분만이라도 느끼고 싶다는 목표는 달성이다.


도서관이 있는 건물 밖으로 나와서 더 멀리 있는 공원을 향해 걷는다. 이름하여 안중근 공원. 공원 이름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걷기 목적지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곳을 기점으로 돌아오는 길은 코스가 달라진다. 마구 가는 것 같지만 뚜렷한 목적지가 있다. 바로 붕어빵 가게다. 아파트 상가 맞은편에 자리한 작은 포장마차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붕어빵을 굽는다.


붕어빵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채로 철판 위에 촘촘하고 나란하게 들어앉아 있다. 주변에는 아이 손님과 어른 손님이 북적북적하다. 짐작했겠지만 붕어빵 가격도 요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다. 그런데 이곳은 다르다. 천 원에 팥 소가 들을 것은 세 개, 슈크림이 들은 것은 2개다. 다른 곳에서는 속의 내용물에 따른 가격이 이곳과 반대인 곳도 있었다. 사실 어느 재료가 더 저렴한지는 나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팥이 들어간 것을 더 선호한다. 


처음엔 천 원 한 장을 내기 민망해서 준비된 작은 봉투에 가득 담길 정도로 넉넉하게 시켰더랬다. 수북하게 담은 붕어빵이 따땃하게 손과 마음을 덥혀 왔다. 하나씩 꺼내 집에 오는 내내 쉴 새 없이 꺼내 먹어도 붕어빵이 남았다.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맛있다며 먹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붕어빵은 사랑이라고. 게다가 무려 천 원에 세 개라고.


걷기의 마무리로 붕어빵은 재미가 있었다. 입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도 몸도 가벼운 것 같았다. 부드럽고 말캉한 밀가루 반죽에 한 번에 넘기기 힘들 만큼 뜨끈하고 달콤한 팥소가 어우러지는 맛, 바삭한 꼬리가 주는 식감이 좋았다. 이런 곳은 오래가야 해, 오랜만에 발견한 길거리 맛집이 번창하기를 바랐다. 일부러 찾기에는 구석진 곳이라는 약점이 있었지만,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곳이라 적어도 장사가 안 돼서 망할 일을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붕어빵 포장마차가 문을 닫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헛걸음은 괜찮았다. 내일이라도 붕어빵을 만날 수 있다면. 5일, 10일이 지나도 붕어빵 포장마차는 굳게 문을 닫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포장마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달 정도의 달콤한 만남이 끝나고 말았다. 이제는 붕어빵을 만날 수 없는 데도 매일 그곳을 지나며 아쉬움을 삼킨다.


계절이 여름을 향해 달린다. 붕어빵의 계절은 지난 것인지 파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을이 지나 다시 날씨가 서늘해지면 아마도 붕어빵 가게를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천 원에 세 개의 붕어빵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다.


건강을 챙기는 마지막 보루로 시작한 걷기가 나를 다양한 곳으로 이끈다. 무심하게 걷는 거리에서 다양한 풍경을 만난다.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도 그렇게 만난 인연이었다. 강냉이를 파는 노부부를 만난 것도 걷기를 통해서다. 할아버지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할머니는 트럭의 조수석에 그림같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노환이 있는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데리고 나오시는 것 같았다. 장사 중간에 틈틈이 할머니를 챙기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았다. 부부가 서로를 챙기고 여생을 기대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편해 보였다. 


요즘은 길거리 화원에 눈길이 간다. 트럭 가득 오종종한 꽃화분과 다양한 식물을 싣고 와서 길가에 길게 늘어놓는다. 봄꽃과 식물이 사람들의 눈을 확 끌어당긴다. 벌써 흥정을 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에 드는 화분을 열심히 고르는 것을 보면 식물의 성장에서 사람들은 생의 의지와 강한 생명력을 느끼는 것 같다. 하나씩 들고 가는 손길이 어쩐지 봄을 닮았다고 느꼈다.


나이가 드니 가지런하고 고급진 것보다 정돈되지 않은 듯, 어수선한 듯한 수수한 것들에 눈길이 간다. 백화점이나 마트보다는 이런 길거리의 풍경이 나의 취향을 대체로 만족시킨다. 붕어빵과 뻥튀기와 화분 등, 낯설게 하기의 진수를 보는 듯 신선하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묘하게 다정하고 온기도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될까. 오늘의 햇살은 기어코 길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강렬하고 뜨겁다. 오늘도 경쾌한 걷기는 틀린 것 같다. 시든 잎처럼 축 처진채로 흐물흐물 걷게 되겠지만 이미 만 보의 욕심을 버렸으니 느리게 걸어도 이제는 괜찮다. 여름의 묘미는 흘리는 땀에 있는 것이고 몸은 이제 막 더위에 반응하기 시작했을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