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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01. 2024

가난한 노년은 사회 문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20층 상가건물 입구를 청소하는 중년의 여성을 봤다. 작은 체격이었지만 높고 커다란 입구의 유리문을 힘을 주어 닦는 것이 눈에 띄었다. 높은 빌딩의 외벽을 닦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분명 아니겠지만 일의 강도에 비해 작은 체격이 어쩐지 버거워 보였다. 

우리 동에도 건물 청소를 해주시는 분이 계시다. 적어도 70은 훨씬 넘어 보이는 연세에 걷는 것이 심하게 불편한 노년의 여성이다. 25층의 건물을 혼자서 담당한다고 생각했을 때도 그게 가능한 일일까 싶었는데, 어느 날 건너 건너 동에서 입구를 닦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한 분이 두 개의 동을 청소하는 것 같았다. 대략 20여 동으로 조성된 단지니 열 분 정도의 인력이 단지 천체를 청소하는 셈이었다. 

주차 시스템이 바뀌어 관리실에 주차 스티커를 다시 받기 위해 들른 날, 퇴근하는 모습을 또 우연히 마주했다. 오후 3시, 그분들의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었다. 9시에서 3시, 점심시간을 제하고 5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이 비로소 끝나는 것 같았다. 일하는 여성, 그것도 나와 같은 중년 이후, 혹은 노년의 일하는 여성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결코 남의 사정이 아니었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70년대와 2024년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은 가난에 관한 이야기다. 1970년대 달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가난은 2024년에도 전혀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더 슬픈 것은 1970년과 달리 2024년은 돈이 흘러넘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돈을 벌어도 가난하고 노년까지 돈을 벌기 위해 힘겨운 노동에 매달려야 하는 것일까.

소설을 잠깐 소개하면, 이야기는 엄마 친구의 소개로 미싱일을 하고 있는 '나'가 나온다. 나의 가족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동반 자살을 선택한다. 그날,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동생이 모두 떠난 후에도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결국 가난을 살아내는 것은 '나'의 소명이 된다.  

그런 나에게 상훈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아버지에게 떠밀려 고생이라는 것, 돈 귀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가난 체험에 나선 부잣집 아들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나는 그와 동거를 하며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 나의 신념과 노력을 상훈은 한순간에 쓸모없는 것으로 만든다. 

나는 자신에게 닥친 가난을 용감하고 떳떳하게 지켜왔지만, 상훈에게 가난은 유희며 다채로운 삶을 위한, 부자들 사이에서 한때 유행하는 장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의 소명은 부자들의 탐욕과 과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시 앞에서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 

2024년의 현실은 어떤가. 주어진 삶을 버릴 수 없으니 견뎌내야 하는 것은 1970년대와 다르지 않다. 주변을 돌아보면 힘들고 가난한 현실이 눈에 보이는데,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는다. 어제 먹었던 자장면의 가격이 며칠 지나면 또 달라져 있는 것이 이제는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당연히 불만을 얘기할 수도 없다. 

세상에 값싸고 질 좋은 것은 없다. 시장보다 더 싸게 판다는 채소가게는 이제 골목마다 생겼다. 겉잎은 모두 시들고 속은 물러 먹을 수 없는 채소를 정말 싼 값에 판다. 가져가 봐야 먹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해도 장바구니에 담는 손길이 있다. 

찌그러지고 상처 난 것은 기본, 갈라져서 단물이 줄줄 흐르는 과일도 판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과일값이 금값이 된 현실에서 어떻게든 그것들 사이에서 멀쩡한 것을 고르려는 주부들의 노력이 애달프다. 가성비라는 명목으로 조금 더 싼 곳을 기웃거리는 내 모습도 구차하고 초라해 보인다.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숙제
                     

▲  노인일자리를 찾는 홈페이지.ⓒ 노인일자리여기


가난한 노년은 시대의 흐름일까. 당연한 것을 나만 문제로 생각하는 것일까. 소설에서처럼 가난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며 소명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최근 매스컴에 보도되는 바에 의하면, 가난한 노년이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적어도 인지는 하는 것 같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지난 21일 '노년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 특별위원회(이하 특위) 정책 제안을 최종 발표했다. 특위는 '건강하게 배우고, 함께 일하는 노년'이라는 중점 방향 아래 4개 분야 8개 정책 제안을 제시했다. 노년의 오랜 기간 축적한 노하우를 활용, 노년 빈곤을 예방하기 위해 '주된 일자리' 계속 고용 추진을 제시했다고 발표했다. 


통합위원장은 "100세 시대를 가정할 때 은퇴 이후 30여 년의 긴 노년을 사회적 역할 없이 살 수 없다"라고 말하며 "이번 특위의 정책 제안이 일터와 배움터, 삶터에서 나이가 장벽이 되지 않는 사회를 구현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노년 빈곤과 노년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를 나란히 함께 언급하기에는 어쩐지 괴리가 커 보인다. 건강한 배움과 사회를 구현하는 밑거름 역시 가난의 본질에 와닿지 않는 공허한 구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언급 자체만으로 어떤 것은 힘을 발휘하기도 하니까 잊히고 지워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내친김에 노인일자리를 찾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어르신들이 건강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일자리와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며,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첫 화면에 뜬다. 


지역을 입력하고 검색하니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일자리가 뜬다. 눈에 띄는 일자리도 보인다. 전기나 용접, 웹툰 편집, 기계설비 관련자, 바리스타 등 자격증이 있으며 하루 8시간 종일 근무가 가능하고 급여도 최저시급에 준하지만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보수가 제공된다. 다만 노인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다. 


나머지 일자리의 대부분은 '시니어편의점사업', '스쿨존지킴이', '키오스크&스마트폰 동년배 지도 활동', '경로당 식사도우미' 등 10일~20일 정도의 단기 근로에 월 30시간 이내의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이정도의 보수로 생활이 안정될 수 있을까 싶은데, 이런 일자리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청자격이 주민등록상 만 65세 이상 지역 거주자라고 하지만, 신청 제외자 기준이 복잡하고 촘촘했다.


풍요로운 사회가 도래했다고 하는데도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한 예로, 우리나라 중산층 10명 중 8명은 자신을 빈곤층이라 여긴다고 한다. 이제 중산층은 더 이상 안정된 삶을 뜻하지 않는다. - 김민권, <새로운 가난이 온다> 프롤로그 중


열심히 살았는데 부자는커녕 달랑 집 한 채만 남은 것이 우리나라 노후의 현실이다. 소득기준 대비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세계 경제 순위 10위인 부자 대한민국에서 노인은 가난하고 노인자살률도 심각하다. 100세 시대 제2의 인생이 노후를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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