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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08. 2021

복지는 '비용'이 아닌 '투자'입니다

경기도,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에 대해

부천에 있는 노숙인 시설에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 냉장고’를 설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당 1일 1회 당일 물량 소진 시까지 떡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일자리가 사라지고 노숙자 같은 사회적 무기력층이 양산되는 시점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이런 사회적 안전망이 무척 반갑게 생각되었다.


이것은 경기도가 '코로나 장발장'을 위해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를 만든 것과 관련이 있다. "먹을 게 없어서 훔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재명 지사)이고 가난과 배고픔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대책이라고 했다. ‘먹거리 공간 조성’은 우선 경기도 3곳의 푸드마켓 내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를 운영하는 등의 사업 가운데 하나다.


노숙인 시설의 냉장고나 푸드마켓의 드림 코너는 식품과 생활용품을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기부받아 제공하는 것으로, 먹거리나 생필품이 필요한 도민이 푸드마켓 사업장을 방문하면 즉석빵, 음료수, 마스크, 위생용품 등 사업장 내 기부 물품 5종을 1회 우선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한다.


장기화된 코로나 여파는 경제 위기를 불러오고 중산층을 무너뜨린다는 소식은 통계 지표를 반영해 뉴스에서 알려주고 있다. 지금처럼 경기가 악화될 때는 생필품, 빵, 계란 등을 훔치는 범죄 사례들도 많아진다고 한다. 먹을 것으로 인해 범죄에 빠지거나 고통을 받는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라고 본다. 그런 이유로 경기도의 '코로나 장발장' 정책은 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적극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의 상징인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쳐 5년을 선고받았다. 가난한 노동자인 그가 배고픔으로 쓰러져가는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것이 5년을 감옥에 가둬야 되는 범죄인지 19세기 초반인 당시를 비춰봐도 이해할 수 없다. 장발장은 감옥에서 4차례의 탈옥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19년의 징역형을 살았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는 영국의 사회복지 제도가 나온다. 수급비가 없으면 하루를 버티기 힘든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는 두 아이의 엄마다. 시간이 늦어 당장 수급을 받을 수 없는 케이티를 다니엘(데이브 존스)은 식료품 지원소에 데려간다. 너무 배가 고팠던 케이티는 구석에서 통조림을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식료품 지원이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결국 케이티는 마트에서 생리대를 훔친다. 마트 주인은 그녀의 사정을 알고 눈감아 주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그녀는 결국 매춘의 길로 빠지고 만다.


주인공 다니엘은 심장병을 앓고 있다. 질병 수당을 신청하려고 하지만 절차는 까다롭고 그들이 궁금한 것은 질병과는 무관하다. 질병 수당 신청은 탈락하고, 수입이 끊긴 그는 실업 수당을 신청하려고 하지만 이 절차는 인터넷 신청이라는 큰 관문을 넘어야 한다. 다른 이의 도움으로 어렵게 신청했지만, 실업 수당을 받으려면 구직활동을 해야 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그는 구직활동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탈락한다.  


이쯤 되면, 선진국이거나 아니거나 가난은 지구 상의 모든 국가의 영원한 숙제인 듯하다. 가난의 해결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굶어 죽거나 범죄에 빠지는 일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죽기 직전 실업 수당 심사에서 말하려고 적어 놓은 다니엘의 글이 마음을 울린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요즘 많이 회자되는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에서는 이런 말도 나온다. "왜 부자를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 브라질 대통령이었던 룰라의 말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 브라질의 극빈층 아이들에게 학교를 다니게 했고, 매달 30달러를 제공했다.


영화에서는 이 정책으로 '2천만 명의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났고 대학에 다니는 아프리카계 국민의 숫자는 세 배로 뛰었으며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수치 이외에도 나라의 돈으로 학업을 마친 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영화의 시간과는 다르지만, 2021년의 대한민국은 가족의 생계를 위한 단순 절도는 없는지, 딱한 가정은 없는지 묻고 싶다. '코로나 장발장'은 정책은 지난 11월 이 지사가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늘어나는 코로나 장발장’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정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비슷한 일이 아직 있다는 반증이다.


'코로나 장발장' 정책의 악용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 “이곳을 이용해야 할 정도면 사실은 지원대상”이라고 이 지사는 말한다. “약간 악용이 되더라도 여기까지 오시는 분들이면 그냥 일단 다 지급하고, 또다시 올 경우 확인해도 된다”라고 덧붙였다. “형식적으로는 대상이 아닌데 실제로는 지원해 줘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 발굴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며 “예산이 부족할 수도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에서 다 책임질 테니까 오시면 그냥 다 드리라”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세세히 살펴도 사각지대는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야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세 모녀 자살 사건'이나 '방배동 모자'의 이야기가 그렇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시행하는 복지정책도 마찬가지다. 복지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의 정책이 국민을 수치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돈을 소모적인 비용으로 생각하는 한 변화는 이끌어 낼 수 없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은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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