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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l 08. 2024

'600만 자영업'의 성패는 서민의 삶과 뗄 수 없는데

이인애,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를 읽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서점 운영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나도 그랬다. 주변의 서점을 돌아보기도 했고 실제로 서점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속마음을 비치며 본격적으로 상담한 적도 있었다. 직장 생활이 아닌 내 일을 해서 먹고살아야겠다고 여러 번 생각하기도 했다. 여러 업종를 알아보다 나 같은 초보자의 그래도 쉽게 덤빌 수 있을 것 같은 카페가 또 눈에 들어왔다.

오래 둘러봤고 더 오래 생각했다. 마침내 미련을 한 구석에 감추고 내 길이 아니라고 포기했다. 거의 창업에 근접할 뻔했던 두 번째 유혹을 앞두고 눈에 들어온 것이 '숍인숍(shop in shop)' 매장이었다. 그것도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카페 안 서점 혹은 서점 안 카페인 매장도 있었다. 설렘과 부러움으로 두 매장이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년 전 동네에 호두과자 전문점이 들어왔다. 선물용으로 잘 나가는 호두과자에 치즈와 버터를 가미한 제품이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 이미 맛을 본 적이 있었기에 나름 핫 아이템이라고 반겼었다.

가끔 구매하러 들렀고 늘 그랬던 것처럼 지역 상권에 관심을 놓지 않고 있을 때, 느닷없이 매장 앞에 양말 가판대가 크게 차려지는 것을 목격했다. 마치 양말 가게인양 가게의 전면을 전부 막아버리는 양말 가판대의 등장. 부부가 함께 운영하던 가게는 아내는 호두과자 판매를, 남편은 양말을 판매하는 것으로 역할이 나뉘었다.

늘 봐온 숍인숍 매장이었지만 반갑지 않았다. 길거리에 늘어놓고 묶음으로 파는 양말 가판대의 등장은 실망스러웠다. 그것도 매장 입구를 전부 가리는 양말 장사는 말 그대로 망해가는 징조처럼 보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 며칠 전 그 가게는 양말을 정리하고 찐 옥수수 판매를 개시했다. 입구에 큰 솥단지가 걸렸고 바닥에는 옥수수 껍질이 가득했다. 옥수수가 든 포대자루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1+1이 2가 아닌 0.5 아니면 0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크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이인애(지은이)ⓒ 문학동네


이인애 작가의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는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자영업자의 이야기다. 소설은 우리 모두가 함께 겪었던 3년간의 코로나 시기에 영업 타격을 적확하게 맞으며 스터디 카페를 열었던 소상공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이 발표될 때마다 마음이 바짝 타들어가는 코로나 시대 한국 자영업자의 현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주인공 대한은 대기업 과장이었다. 어느 날 대한이 맡은 해외 바이어가 연락두절되며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안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수습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대한은 그때까지 막연히 생각만 해본 자영업을 시작하기로, 그러니까 진짜 '사장님'이 되어보기로 결심한다. 


자부심도 있고 일도 곧잘 하지만 회의가 길어지거나 사고가 터질 때마다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간 신입이 했던 말이 하필 대한의 머리에 떠오른다. "여기서 버티고 버텨 잘 풀리면 과장님 되는 거잖아요. 뼈를 갈면 팀장님? 전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아요. 어쨌든 저한테도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요." 이 말은 창업을 앞둔 대한에게 그나마 힘이 된 것 같다. 타의로 직장을 그만두게 됐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하는 자영업이었지만 말이다. 


대한이 고심해 고른 업종은 스터디 카페다. 그리고 하필이면 코로나가 창궐하는 '코시국'이었다. 2020년 1월, 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코로나는 2023년 5월 5일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코로나19의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PHEIC)의 해제가 발표됐지만, 현재까지도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여전히 악명이 이어지고 있다.


대환에게도 코로나는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영업자 대한은 스터디 카페 사장에서 수면방 사장으로, 다시 배달원으로, 이른바 'N잡러'(복수를 뜻하는 'N', 직업을 의미하는 '잡(Job)', 사람에게 붙는 접미사 '~러(-er)가 합쳐진 신조어)의 고달픈 길을 간다.


코로나 상황에서 다가오는 어렵고 험난한 외로움과 고통의 시간을 대한은 오롯이 견뎌낸다. 소설은 그야말로 코로나 시대 한국 자영업자의 피 땀 눈물이 담긴 생존의 현장을 그린다.


자영업자가 된 이후 대한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약물치료까지 필요한 우울증을 겪는다. 의사는 대한에게 약을 먹지 않고 나아질 수 있는 처방을 내린다.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하라는 것. 대한의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의사가 내린 처방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너무나 보통의 자영업자 인터뷰는 기막힌 사연으로 가득하다. 횟집과 양장점, 미장원과 백반집, 카페와 치킨집 등 사장님들의 이야기는 각각의 영업 노하우보다는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긴 시간 묵묵히 견디고 버텨낸 인생 선배의 따뜻하면서도 치열한 인생철학 강의다. 


고난의 행군을 함께하는 사람들, 너 나 할 것 없이 사는 게 팍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는 동질감을 통해 삶은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니 혼자라는 생각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대한은 '남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얻어서는 안 된다고 배웠지만', 그럼에도 '불행 포르노'는 대한에게 큰 위로가 된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두통이 심해졌다. 저녁에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서는 사업이 잘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태연한 척 연기하는 스스로가 비참해 침대에 누워서도 끅끅대며 울었다. 머리를 조이고 있던 나사 하나가 풀려버린 느낌이었다. 감정 조절 장치가 완전히 망가졌는지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어 무력감이 밀려들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84쪽)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세상은 화려하고 소비는 넘쳐나는데 우리 모두는 왜 이렇게 힘겨운 걸까. 3년간의 코로나가 끝나니 요즘은 고물가 고금리의 장기화, 불경기와 외식비 상승, 인건비 부담이 자영업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진입장벽이 낮은 생계형 창업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상당수가 큰 손실을 보고 폐업하는 수순을 밟는다. 


그런 와중에 정부가 '600만 자영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향한 구조개혁을 추진한다고 한다. 핵심은 '경쟁력이 낮거나 이미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안정적인 임금근로자로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안'과 사업 유지를 원하는 자영업자는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인건비 직접 지원 대신 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키오스크 도입을 돕는 식'이라고 발표했단다(연합뉴스 2024. 6. 16).


보도를 접하고 자영업자의 문제 해결이 정부의 구조개혁 대책만큼 간단한 것이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영업은 정부에서 인식하는 것처럼 따로 뚝 떼어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영업의 성패는 서민들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 서민들의 삶이 어려우니 자영업도 어려운 것이다. '먹고사는 일은 태초부터 쉽지 않다'는 그 명제를 폭넓게 고민하는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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