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길

약속 장소까지 왕복 5킬로미터

by 바람

약속 장소가 있는 부천대 근처 카페까지 2.3킬로미터를 걷는다. 이미 아침의 쨍한 추위는 햇살과 함께 누그러졌다. 횡단보도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간 여유가 있음에도 뛴다. 딸과 자주 가던 커피전문점을 지나친다. 오후에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다.


횡단보도를 두어 개 더 건너면 작은 공원이 나온다. 오늘 가는 곳과 비슷한 방향의 목적지에 갈 때면 항상 여기를 통과한다. 작지만 시야가 트인 공원을 마주하고 한적한 풍경을 지나치며라도 느끼고 싶어서다.


공원을 지나면 부천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건물을 지난다. 엄청난 높이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건물보다는 앞의 천주교 성당이 눈에 더 들어온다. 성당 전면에 높은 첨탑이 솟아 있어 스카이라인을 새로 만들어 놓은 건물보다 더 멋지고 위용이 있어 보인다.


유럽에 여행을 가면 발길 닿는 곳에 모두 성당이 있었다. 역사의 현장이며 권력의 암투가 이루어진 현장을 문이 열려 있으면 어느 곳이든 들어갔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름난 성당은 예매를 통해 꼭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본다. 그런데 이곳은 그냥 지나친다. 사람들의 발길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보러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도 의문이고. 한국에서는 명동성당을 제외하고는 성당 출입 경험이 없다.


가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도서관과 보건소가 나온다. 도서관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관이기도 하다. 언젠가 점자도, 수화도 배워보겠다고 생각만 한 채로 시간이 갔다. 도서관 문화 관련 프로그램에서 이런 교육도 진행하면 어떨까 싶었지만, 나서서 뭔가를 말하는 사람이 못 된다.

얼마 전 부천시 알리미를 통해 보건소에서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독감 무료 예방 접종을 한다는 안내를 본 기억이 있다. 대상 범위에 든다는 것이 좋게 다가오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약간 서글펐다. 서글픔 때문은 아니었지만 올해는 병원을 통해서도 아직 독감 예방 주사를 맞지 않고 지나고 있다. 작년보다 날씨가 매섭지는 않다.


큰길로 나왔다. 자주 이용하는 낯익은 버스길이다. 평소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길이라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좁은 길로 다녀도 아늑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낯섦이 더 있었던 것 같다.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좁은 찻길로 들어섰다. 일방통행 도로라서 앞에서 달려오는 차들을 헤치고 걷는다.


몇 번 더 길을 구불구불, 도보 설정을 안 해서 자동차 길로 안내하는 걸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돌아 돌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빨콩 카페다. 커피 값이 저렴해서 오래 앉아있기 민망해 달달한 빵을 함께 주문한다. 이른 약속은 이른 시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있다. 아무도 없는 커피숍을 우리만을 위한 모임 장소로 활용한다. 수줍은 사람들끼리의 글쓰기 모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명 주소 표지판이 건물마다 전면에 나란히 부착되어 있다. 도로를 따라 목적지를 찾았던 유럽에서의 길 찾기가 생각난다. 비좁은 돌길 모퉁이 담벼락에 양쪽 방향의 도로명이 낯선 글씨로 새겨져 있던, 문자를 해독해야만 찾아갈 수 있는 퍼즐처럼 온갖 비밀이 숨어 있는 듯한 그 거리에서 길 찾기를 난감해했었다. 이방인의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이곳 역시 주인인 느낌은 아니다. 내나라지만 주인은 아닌.


고개를 들어 걷는 길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행지에서 걷다가 고개를 들어 길을, 건물들을 보며 중세의 도시를 보는 듯했던 그때를 제외하면, 내가 사는 동네의 길을 샅샅이 살피며 걷고, 길에서 멈춰 하늘을 올려 보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생경하다. 몽당 도서관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 여기서부터는 아는 길이다. 발걸음도 팔의 휘젓음도 자유롭다. 긴장감이 사라지고 어느새 여유가 생긴다. 온 길과 다른 길로 질러가기 때문에 훨씬 빠르기도 하다.


늘 가는 주유소다. 세차까지 종종 하는 곳. 줄이 꼬리를 물고 기다리던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한산하다. 월요일 한낯이니 주말에 이미 월요일의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차로 출퇴근하던 때의 내가 그랬듯이.


평일 오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의 외출, 혼자 걷는 5킬로미터 길에서 생각을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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