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도봉산 산책길에서

by 바람


설 아침, 예배와 세배를 마치고 도봉산을 향해 나섰다. 어머님 사시는 곳이 도봉산 입구여서 산책 겸 집을 나섰다. 도봉산으로의 아침 산책이라니, 이 근처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남편 어릴 때 살던 곳이어서 구석구석 옛날의 향기를 소환하며 길을 걷는다.


좀 오래된 아파트 벽, 작은 아파트의 담을 온통 사랑의 일생으로 새겨 놓은 것을 보는 순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훼손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되어 감시카메라도 설치해 놓고 촬영하고 있다는 문구도 안내한다. 사랑을 훼손하는 사람도 있을까 싶다가, 적어도 사랑을 훼손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기로 했다.



어머님이 사시는 도봉동까지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약 한 시간 거리. 그곳에서 새해 벽두에 만나는 사랑이라니. 상투적일 수 있는 문구들이 이렇게 새겨지니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연히 만난 사랑이 아주 보통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이 드신 분들이 가장 많고, 가족 단위로 우리와 비슷하게 오는 이들이 제법 보인다. 서울 번화가에서 한 시간 내외의 거리에 이렇게 수려한 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해외에서 역사적인 건물을 만나는 것만큼 특별한 감흥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유적들 앞에서 놀라움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던 순간과 비슷하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내 안의 가치를 작게 평가하기 때문에.


사랑을 얘기하는 벽화 앞의 나무에 바라는 것을 적어 걸어놓은 팻말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10명쯤 되는 가족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안녕을 바라는 정성스러운 문구에 행복한 그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람들이 지나며 보고 읽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도 좋아 보인다. 길을 지나치는 사람은 지나는 순간 잊힐 이름이지만 쓴 사람에게는 정성껏 쓰는 순간부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테니.



주변의 눈치도 많이 보고 항상 사람들의 시선을 염려하는 사람이라서, 누군지 모르는 그 사람의 행동이 부럽기까지 하다. 소중한 것은 소중하다고 말하고, 귀한 것은 귀하다고 인정해주고, 사랑을 사랑으로 외치는 사람처럼, 가까이에 있는 것에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특별한 재능임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백운대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야트막한 곳까지 걷다 내려왔다. 야생동물을 잡기 위해 설치한 덫도 보고,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먹거리를 팔기 위해 일찍부터 문을 열은 노점상도 보고,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으로 아침 산책을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사랑에 노래한 문구를 만나고 나니 최영미 시인의 <행복론>처럼 살고싶어졌다.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슬러 훔치고, 내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하는 한 해가 되기를. 매일의 “시시한 해”를 잘 보내다 보면, 십 년 세월도 그렇게 보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믿음으로 ‘경자년’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조용히 해 보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다.
심장이 콩닥콩닥
서투르지만 순수했던 우리,
그 순간조차 아름답다.
어느 한순간 갑자기 찾아온 사랑은
눈부신 날도
흐린 날도
때로는 어두운 날도 있지만
함께 이겨내고 하나가 되는 것
사랑!
사랑이 사랑을 만들고
새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변할까?
모습이 변해도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은 시간보다 강하고 사랑은 늙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기적이다.
당신은 사랑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지금, 말해주세요, 사랑한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