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내막은 모르지만 누구나 다 아는 사건. 1979년 10월 26일.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를 오가던 버스가 혜화동을 지났었다. 어렴풋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대통령이 죽었다는 얘기가 있었고, 탱크들이 시내 곳곳에 서 있었고, 무장한 군인들이 요소요소를 지키고 있었고, 도로마다 불심검문이 있었던 풍경들. 무겁게 내려앉은 도심을 오갈 때마다 무수한 생각들이 마음을 차갑게 했었다.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가던 때의 이야기는 지금도 멀미증상을 겪는 것처럼 몽롱하고 흐릿하다. 등‧하교 시간에 맞춰 타는 버스는 늘 북적였고 버스의 심한 흔들림은 멀미와 함께 당시의 기억을 뿌옇게 만들었다. 당시 상황은 어떤 일이든 졸음이 오는 듯한 안갯속에 쌓인 느낌이고, 그 사건이 일어났던 때의 일 역시 연무에 덮인 것처럼 절반은 가려진 채로 드문드문 떠오른다.
이전에 같은 사건을 다룬 영화 <효자동 이발사>를 보았을 때, 그때도 이 사건을 어디까지 깊이 다루는지를 관심을 갖고 보았다. 영화에서는 간첩단 사건으로 연루된 인물들과 그 사건의 터무니없음을 보여주었는데, 영화의 무게가 무겁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내용은 무거운데 다루는 것은 가볍게 다루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곳에서도 같은 역할의 인물들이 나왔었는데 감독이 의도하는 방향 탓인지 권력 주변의 인물들에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효자동 이발사>의 마지막도 장례식 장면이었고,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길에 나와 장례 행렬을 향해 애도하는 모습들,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설정이 싫었는데, 나의 기억에 의하면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길에 나와 애도하고 가슴 아파하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말들을 했었다.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그런 일을 만든 인물에 대해 혹독한 말들을 뱉어내기도 했었다고 기억한다.
혜화를 거쳐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가며 길의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무엇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려운 마음에 교복을 다시 한번 단정히 했고, 군인들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무시무시한 탱크 행렬에 전쟁이 일어날 듯한 위기감을 느꼈고, 이러다 전쟁이 터지면 이산가족이 되어 가족들을 못 만나는 것은 아닌지 매일을 불안해했다. 그런 위기의 현장의 중심을 통과하는 것을 무서워했었다.
당시 역사에 대한 인식도, 국가관도, 통치의 방향도, 민주주의도 몰랐었지만 공포는 분명하게 느꼈다. 5시의 국기 강하식을 매일 버스에서 마주했고, 밖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버스 안에서도 정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했었다. 서울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에 서서 가슴에 손을 올리는 모습을 보며, 친구와 조잘대던 말도 끊었고 시선도 바로 하려고 노력하며 주위를 의식했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일인데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고 강요된 의식을 반발 없이 수용하고 지켰었다.
<남산의 부장들>은 1시간 10분의 상영시간 내내 무거운 영화의 흐름이 이어진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시절의 무게를 그대로 살려서 영화는 보여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다. 묵직한 영화를 볼 때의 힘 빠지는 느낌도 없다. 배우들의 연기가 그 무게를 잘 감당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네 명의 중심인물들이 고르게 연기의 균형을 보여준다.
이병헌의 연기 때문인지, 캐릭터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김규평이라는 인물은 ‘국가’라는 것을, 국가의 위상이나 위치를 생각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주먹구구식의 한 사람만의 왕국에서 적어도 ‘국가’로서의 권위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듯한, 그런 ‘국가’의 수반을 곁에서 끝까지 지지하고자 하는 의리도 있었다고 영화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 인물에 의한 총격, 진심으로 따르던 그 믿음이 배신당하는 순간의 분노는 더 차갑고 깊다는 것을 느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다루기 쉬운 사람만을 선택하거나, 자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줄 모를 때에도 역사의 흐름은 교묘하게 방향을 틀기도 하고 그대로 두기도 하고 더 깊은 수렁으로 가기도 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박정희의 총격에 의한 사망, 김재규의 사형, 새로운 군사정권의 등장. 이전의 정권을 계승한 또 다른 독재 권력의 등장. 역사의 방향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현재의 흐름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를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계엄령, 부마항쟁, 이백만삼백만의 목숨을 말 한마디로 해치우는 오만함 등 그땐 그랬지,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