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좋은 만남

by 바람

학교 다닐 때 좋은 기억으로 만난 선생님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열정적으로 약속을 잡고 달려드는 추진력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그 약속은 즉각 이루어졌고 만나는 날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것도 뭉그적거리지 않았고 약속된 장소로 가는 것도 복잡하지 않고 순조롭게 잘 도착했다. 오래 이어가고 싶은 인연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만나면 다른 생각 없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지난한 사건을 같이 겪은 사이였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다른 학교에서 전보발령을 받아 오는 선생님과 떠나는 선생님과의 업무 교대가 이루어진다. 업무도 매년 같은 업무를 맡는 것이 아니라 일부 특화된 전문 업무를 제외하면 돌아가면서 보직을 맡게 된다. 오늘 만나는 선생님도 그렇게 새로 오셔서 같은 부서에 배치된 선생님이었다. 누구도 맡기 싫어하는 업무를 주로 다른 곳에서 오시는 선생님들께 떠넘기는 것이 관행처럼 생각하고 있었고 오시는 분들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업무를 맡았다.


혁신학교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도 여러 곳이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었고, 근무하던 학교도 혁신학교였다. 그 학교의 혁신부에서의 근무였다. 교육현장을 혁신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혁신이란 말은 너무 거창했다. 그런 이유로 혁신학교라는 이름도 우습고 혁신부서도 우스웠지만 교육 정책이었고 토를 달 입장은 아니었다. 관련된 업무를 해 내면 되는 것이었다. 같은 부서에 일이 년 있다 보면 업무의 범위라는 것이 부장들의 입김에 의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새로 보직을 받은 부장이 업무를 떨쳐 낼 짬밥이 안 되었기에 학교에서 요구하는 업무와 다른 부서에서 기피하는 애매한 업무들이 몽땅 혁신부의 업무로 들어왔다. 그 업무를 한 명의 부장교사와 그 부서에 배치된 두 명의 교사가 나눠야 하는 것이었다. 부장은 총괄업무와 예산 사용 관련, 보고 관련 업무를 맡으면 나머지는 두 명의 교사가 업무의 경중을 따져 나누면 되는 것이었고 그 선생님과 나는 업무를 사이좋게 나누었다. 물론 한 해 더 있었던 내가 부담스러운 업무를 맡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못할 일은 없다. 얼마나 능숙하게 하는지와 얼마나 흔들리면서 하는지, 오류가 없는지와 오류가 많은지로 나뉠 뿐이다. 흔들리면서 하는 일이건, 오류가 많은 일이건 익숙해지면 흔들림도 잦아들게 되고 오류도 수정하면 그만이다. 거기에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따르면 여러 문제들이 덜거덕거리지만 잘 해결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자신의 일이 바쁘고 윗사람으로부터 독촉이 있는 경우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모여 내 사정은 덮어두고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업무를 처음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을 조율할 때, 일의 맥을 잡고 누군가 중심을 잡는 역할이 필요하고 그것이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다. 중간 관리자도 모를 경우는 서로 배려하며 논의를 통해 그 맥을 짚어나가야 한다. 긴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서로 바쁘다 보니 얘기할 시간은 부족하고 의논이 안 된 채로 서두르다 보면 일은 꼬여버리고 서로 자신의 입장을 얘기해야 할 지점이 생긴다. 속상하고 억울하고 짜증 나고 힘들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견된 충돌이 있었다. 업무를 전혀 모르는 앞자리의 선생님과 역시 모르는 업무를 처음 맡은 부장 교사와의 충돌. 학교의 모든 교사들이 알 만큼 사건이 커졌고 둘의 상처도 컸다. 한 학기 내내 삐걱거렸고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어느 한쪽의 편에 설 수가 없었다. 어느 쪽으로 기울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입장의 균형을 잡는 것이 나의 과제였고 힘이 들었다. 부서가 삐걱거리니 중간 입장이 되는 나를 여기저기서 호출했다. 매일 불려 갔고, 상황을 물었고, 왜 조율을 못하는지 책임을 물었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였다.


나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사람의 말은 거짓이었다.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인 나도 입장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모르는데 누가 그 입장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두 사람의 총성 없는 총격전에 나는 중간에서 무수한 상처를 입었다. 그러고는 2학기에 자리가 바뀌었다. 앞의 선생님은 다른 부서로 가셨고 그 자리에 다른 분이 오셨다. 상황이 그러니 새로 오신 분이나 부장 교사는 서로 조심할 수밖에 없었고 일 년은 그렇게 어찌어찌 무마가 되었다.




이듬해에, 한 학기 업무를 함께했던 선생님은 오신지 일 년 만에 교과 티오가 없어져서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가는 사연도 무척 속상했을 것이었지만, 그래도 가는 것이 더 낫다고 그 선생님은 말했다. 고상하고 교양 있고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풀어내는 듯 보이는 점잖은 집단의 민낯을 보는 순간이었다. 학교가 보수적이라는 생각은 늘 했다. 그 보수는 교양의 다른 말이 아니었다. 묻고 덮는 것에 능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도 삭이고, 자신도 속을 만큼 감정을 숨기고 사람들과 융화하는 척 부드러운 척하는 것이 보수의 다른 이름이었다.


단 육 개월을 같이 한 선생님과의 관계가 그 후로 삼 년째 이어지고 있다. 따뜻한 선생님이었고 무엇보다 선이 확실했다. 마음을 나누는 것을 서로 조심했고, 마음을 조금씩 열어갔다. 힘든 것은 묻지 않았고 몰라야 할 것은 모른 채로 지금까지 왔다. 서로 얘기하고 싶으면 들어주고 들은 얘기는 길게 뒷말을 하지 않았다. 인간관계의 정확한 선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습적으로 훅 내 영역 속으로 들어오는 그런 것은 불편하다. 서로를 당황하지 않게 하는 만남, 그런 것이 좋았고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래도 일 년 만의 만남이었다. 어쩌다 만났는데 어제처럼 편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화 관람은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만남이 오랜만이기도 했고 그동안 서로 지내온 얘기를 하며 밥 한 끼 나누자고 만난 것이었다. 빨리 헤어지기는 아쉬웠고, 오후의 시간이 둘 다 여유가 있었다. 때마침 만난 곳이 영화관도 있는 복합 몰, 모두 다 아는 사건이고 결말이 뻔해서 봐야 하는지 남편과는 고민했던 영화였다. 남편과는 보지 않을 것 같았고 둘의 마음이 맞아 계획 없이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책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 이야기도 나누었다. 각자 묶여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고 앞으로의 계획도 얘기했다. 어찌 보면 건조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만남이 좋다. 무엇보다 가볍다. 저녁이었으면 술 한 잔도 했겠지만, 낮에 만나는 만남이라 식사와 커피면 족하다. 나란히 앉아 영화도 보았으니 오늘의 만남의 여운이 오래갈 것 같았다. 모처럼 경험하는 가볍게 좋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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