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월요일이다. 근처의 도서관이 쉬는 날. 평소 같으면 카페나 월요일이 쉬는 날이 아닌 좀 멀리 있는 도서관으로 가지만 오늘은 일찍 움직여지지 않았다. 쉬고 싶은 것은 아닌데 움직여지지 않는 마음을 뭐라고 해야 하나. 누가 떠미는 것도 아닌데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가 구속하는 것도 아닌데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 가면 그만인데, 참 열심히 지난 10개월을 도서관으로 출근하듯 다녔다. 생활의 리듬을 사수하기 위한 나만의 삶의 방편이었다.
일상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만난 지인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으며 나의 ‘노는’(직장이 없으면 사람들은 논다고 생각한다. 나는 집에서 놀지 않는다.) 생활을 궁금해했다. 자신은 방학을 하고 이삼일만 지나도 하루가 무료해지고 무기력해진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대답을 하자면 나도 그랬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 방학하고 이삼일은 늘어져 있어도 됐고, 그 늘어짐이 너무 좋았고. 그러다가 앞으로 남은 시간, 할 일이 없는 일상 속에서도 매 끼니마다 먹어야 하고, 날마다 때 되면 자야 하는 일상들이 지겨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환경을 바꿔보려고, 생활의 리듬을 찾으려고, 억지로 움직이는 일상을 만들어 보려고, 여행을 계획하고 어디든 떠나려고 기를 쓰고 계획을 잡았었다.
직장을 그만둘 때 지인들은 그만큼 일했으면 쉬어도 된다는 말들로 인사를 했다. 딸도 같은 말을 했다. 몇 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시는 분과 출퇴근하는 시간을 같이한 적이 있었다. 묻지도 않은 퇴직 후의 계획을 운전하는 사람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 차원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일 년은 아무 생각 없이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생각이라고 하셨다. 그러고 다음부터는 매년 만들어진 여러 그룹의 모임이 있으니 한 달에 네다섯 번은 만날 약속이 정해질 것이고, 결혼한 아들이 아기 낳으면 손주 보러 아들의 집을 오가고 하면 시간을 적당히(?)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말씀하셨다. 적당히, 무료하지 않은 일상이라 생각했다.
30년 이상 일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분보다 절반 정도의 시간을 일했고, 그 분보다 좀 더 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상황이 다르다. 결혼한 아들도 없으니 이 집 저 집 오갈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사실 아들을 결혼시키고 손주를 보아도 그 핑계로 아들 집을 오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이 있으나 정기적인 모임, 그것도 한 달에 몇 번 계획할 정도의 친목도모의 모임 그룹도 없다. 무엇보다 나는 삶의 의미 없이 '적당히' 손을 놓고 살아가고 싶지가 않다.
잡다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날, 내내 집에 있기는 싫어 집을 나섰다. 서점을 찾았다. 최근 나온 책들을 둘러본다. 삶의 위로, 살아가는 의미, 자존을 위한 책들이 많이 있다. 서점에 앉아 브런치를 열어 내가 쓴 글들을 훑어본다. 그동안 나를 위로한다고 썼는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들도 많았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려 썼는데 명확히 짚이는 무엇은 아니었고, 나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싶었는데 내 바닥만 드러내는 것 같은 글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살살 다독이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물론 그 글은 가장 먼저 글쓴이 자신을 위로하겠지?
글쓰기에 대한 나의 욕심은 순하지 않다. 글을 완벽히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안 써도 무방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욕심만 크다. 그래서 더 어긋난다는 생각을 한다. 힘을 얻어야 하는데 힘이 빠진다. “매일 작업하지 않고 피아노나 노래를 배울 수 있습니까. 어쩌다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톨스토이의 이 말이 없어도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이제 겨우 석 달 남짓 썼을 뿐이고, 모차르트를 연주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내가 힘이 빠지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다. 글이 아닌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 매일 조금씩 써 내려가는 행위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살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내 글의 정체성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모른다. 그게 쓰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인지, 모두들 이렇게 쓰는 것인지를... 마치 정답 강박을 가진 사람처럼 정답을 찾고 있다. 누군가 경쟁사회에서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말했다. '욕망을 다루는 도인이 되거나, 욕망을 달성하거나.' 둘 다 어렵지만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욕망을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내 욕망의 지향점을 모르겠고 방법도 모르겠다. 글쓰기를 욕망으로 대치한 적도 없었다. 행복해지고는 싶다. 행복한 글쓰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노력하면 되나? 어떻게?
어찌어찌 책상에 책을 읽다가, 노트북을 열고 쓰다가 하며 네 시간을 앉아있다. 네 시간을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루 여덟 시간은 괜찮을까. 학생들은 학교에서 8시간을 앉아 공부한다. 직장인 근무시간도 하루 8시간이다. 8시간은 노력이 아닌 듯하다. 그보다 더, 한 10시간쯤 앉아 있으면 될까. 글쓰기 사 개월 차, 큰 산을 마주했다. 행복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노력이 필요하다면 10시간도?(정말 그래야 한다면 걱정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