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끈 잘라버리기

by 바람

눈이 포슬포슬 내린다. 공중에서 유영하는 것 같다. 역으로 솟구치기도 한다. 한없이 가벼운 눈의 놀림이다. 눈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쌀쌀한 날씨, 서점으로 방향을 잡는다. 눈 오는 날은 역시 서점이지, 혼자서 생각한다.


낭만이 나를 죽일 거예요 / 아프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나를 흔든 그 한 마디 / 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 / 나다움을 지킬 권리


요즘 제목에 꽂혀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제목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오리지널스>에서도 제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번 지었어도 21번째의 제목을 생각하라고. 글쓰기 공부할 때도 제목이 중요하다, 첫 문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올라오는 작가분들의 글과 그들의 브런치 북 제목을 보며 중요성을 다시 느꼈고, 글을 올릴 때마다 제목을 고민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책 제목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 글을 쓸 때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용이 없이 제목만 멋들어진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내용은 기본이고, 아무리 잘 쓴 내용도 누군가가 선택하지 않으면 소용없기에 제목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현재는, 내용도 흔들리고 제목도 흔들리고 있고, 생각이 앞뒤가 없이 떠다니는 것들을 지금 서점에서 꺼내보고 있다.


눈에 띄는 책 제목들이 마음을 움직인다. 들춰보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읽고 싶은 종류의 책들은 아니지만 한두 페이지를 넘기며 훑어보았으니 저 책들의 제목 짓기는 성공한 것 같다. 서점에서 늘 향하는 곳은 국내소설 코너다. 그곳에서 새로 나온 것이 무엇인지 둘러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왔는지도 보고, 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저자를 만나기도 한다.


읽고 싶던 책을 고르려는 순간,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상)이 눈에 들어온다. 미련한 습관이다. 학교 현장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학생들이 읽는 책, 학습활동에 나오는 책을 점검하던 버릇이 튀어나왔다. 고약하다.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미련 떨기가 자유를 구속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그것을 펴서 읽으며 미련을 떨었다. 공선옥의 <한데서 울다>를 서점 한 구석에서 읽었고 심지어 소설 말미에 나와있는 학습활동, 토론할 것들을 나 혼자 떠올려 보기도 했다. 학교에서 13년은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한 시간 같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천천히 꾸준히 가자고 생각했는데, 조급해진다. 책도 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게 언제일까 시간을 손으로 꼽는다. <한데서 울다>의 주인공 정희는 자신이 못 견뎌하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녀의 노력은 가족들이 기꺼이 수용하는 형식이든, 그녀의 모습이 안타까워 어쩔 수 없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든, 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룬다.


눈에 이끌려서 나왔는데,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나'를 향해 "조금 더 긴 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유는 미쳐야 한다.", "모든 걸 걸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말이 듣고 싶은 것일까. 종종 찾아드는 불편함의 정체는, 조금 더 긴 끈을 가지고서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그렇기 때문에 가끔, 문득, 때로 절실한 것은 아닐지. 묶여 있는 생각의 범위 내에서만 이리저리 기웃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설 길이 없게 확, 긴 끈을 과감하게 잘라야 할까,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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