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하루를

by 바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된, 나의 20대 시절의 꿈이었다. 그런데 시작이 어려웠다. 글을 시작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어떤 상황을 글로 꼭 담고 싶은데, 그것이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풀어져 나오지를 않았다. 시작하다 말고 하다 말고를 반복했다. 글 쪼가리만 넘쳤고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둔 파일이 쌓여 갔다. 제목도 내용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1, 2, 3, …… 등으로 이어지는 파일들이었다.


시작이 어려웠던 글쓰기는 어려운 채로 삼십 년을 지나왔고, 여전히 포기가 안 돼서 블로그에 간간히 끄적거렸던 부스러기들이 내 글로 남아 있었다. 지금은 차례로 비공개로 돌리고 브런치 서랍에 새로 정리해서 담고 있다. 애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담은 글쓰기는 이제 나와 떼어 놓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하루도 멈출 수 없고 글을 생각하면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낸다.


글을 올리며 일희일비하는 순간이 많다. 브런치 조회수가 천, 이천, 오천, 만, 가슴이 벅차오른다. 충분히 만족하지만 더 오르기를 다시 응원한다. 응원을 하면 더 오를 것처럼 힘내라고 숫자를 쳐다본다. 다음 알람이 울리는 코스까지. 그렇지만 너무 멀다. 하루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루만 글을 쓸 것도 아니니 그러지 말아야지 나를 진정시키지만, 그게 쉽지 않다. 마음을 다독이며 수양의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수양은 고사하고 오히려 조급증이 인다. 자꾸 욕심을 갖는다. 평정심이 어렵다.


글을 올릴 때 느끼는 두려움도 있다. 서평은 읽고 쓸 때는 느낀 감상, 책이 제시하는 한정된 범위가 있어 내용이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 그래도 제한적이라고 생각하고 써내려 간다. 그러나 일상의 글은 어디로 뻗어갈지 범위가 없다. 주제를 작게 잡고도 그것이 맞는지 방향은 올바른지 점검한다. 그러고도 올릴 때 염려한다. 행여 내 생각이 잘 못 짚은 것은 아닐지. 허튼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걱정을 무릎 쓰고 나는 글을 쓴다.



슈가맨을 통해 부활한 양준일은 과거의 자신에게 얘기한다. “너의 20대의 꿈 그게 모든 게 아니다. 내려놓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라고. 그 사람의 무욕, 평정심이 부럽기 이전에 충격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오랜만에 방송에 나서서 어제처럼 편하게 얘기하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움직일 수 있다니. 누군가는 그의 평정심을 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에게서 나오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긍정적 마음이라고 평가했다.

브런치를 하며 내게도 긍정적 변화는 많다.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 일주일에 한두 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서평까지 담기 위해 글을 꼼꼼하게 읽고 메모도 하며 읽는다. 브런치에 일주일에 다섯 혹은 여섯 개의 글을 올린 것이 두 달째다. 매일 쓰고 정리를 해야 올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 하루에 글 쓰는 시간을 꼭 마련한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글감을 떠올리거나 좋은 글귀를 모으고 정리한다. 그렇게 무엇이든 쓰는 시간을 갖는다.


단어의 사용에도 신경 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편안한 말들을 신중하게 떠올린다. 너무 사소해서 귀에 들어오지 않던 말도 새롭게 담아 둔다. 상투적으로 쓰던 말도 사전을 검색하고 다시 확인한다. 단어의 쓰임과 용례를 살핀다. 단락도 생각한다. 하나의 생각의 확장 범위를 조정하려고 노력한다. 방향이 산만하지 않도록 돌이키고 바로잡는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니엘은 말한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어느새 내가 하는 브런치는 나의 자존심이 되어가고 있다. 잘되지 않으면 기운이 떨어진다. 무기력해지고 사는 의미가 슬며시 사라진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를 정리하고 단상을 포착하고 깊이 생각하고 일관되게 사고를 확장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이고 삶의 보람일 수 있는데, 그것이 끝이 아닌 것이 되고 만다.


다니엘은 일상을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이었다. 주변을 마음을 다해 돌보는 사람이었다. 그의 자존심은 최선을 다해 사는 그의 삶의 버팀이었다. 다니엘처럼 살기 위해, 오늘만 살 것처럼 마음이 온통 빠져들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경계한다. 조회수에 초연하려고 애쓴다. 어제처럼, 일상처럼 아주 사소한 보통의 하루를 보내려고 마음을 먹는다. 글을 오래 쓰고 싶다. 마음을 담고 싶고, 누군가에게도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나름의 효용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더 노력해서 나의 책도 만나고 싶다. 그렇게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브런치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다양한 상황에서 노력하는 사람들, 마음을 다해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모두들 삶을 소중하게 담는 모습을 본다. 하루의 일상을 최선을 다하고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들, 그들이 사는 방법을 배운다. 브런치가 나에게 선물한 것들이다. 매일 선물을 받는다. 그리고 작은 답장의 예를 표현하기 위해 오늘도 보통의 하루를 글로 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