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것은 상식적인 것이다

by 바람
“다 그렇게 힘들게 키웠는데, 저절로 큰 줄 알지?”
“어디서 그런 상투적인 말을…….”


딸의 친한 친구는 벌써 결혼을 해서 아이를 하나 낳았다. 이제 10개월, 때문에 그 친구는 직장을 휴직 중인 상태다. 딸은 그 친구의 연애와 결혼과 신혼과 출산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덕분에 나도 그 친구의 소식이 드문드문 궁금해서 묻기도 한다.


싹싹하고 말도 예쁘게 하고 주변을 돌보고 챙기는 것을 잘하는 친구여서 일찍 그 친구를 알고 있었고, 그 성격 때문인지 딸도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딸과 이야기할 때면 가끔 그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아무개(남편)는 여전한지, 아이는 잘 크는지.


딸은 그 친구의 집에 아이가 태어나고 세 번이나 방문했다. 잦은 방문이라고 생각했다. 집까지 가서 친구를 만나려고 하는 열의를 대단하게 생각했고, 집까지 친구를 불러 허물없이 하루를 보내는 그 친구도 대단했고 어찌 보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나도 친구 집에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 친구도 우리 집에 드나들었다. 그렇지만 딸처럼 자주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내 아이 키우느라, 사느라, 여러 가지가 바빠서, 그 집 아이 두 살 때, 다시 만나면 열 살 때, 또다시 만나면 고등학생 때. 우리 집을 찾아온 친구도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 막 지났을 때, 중학교 다닐 때,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이렇게 말하면 친구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힘들게 아이를 떼어 놓고 밖에서 만나기도 했다. 더 드문드문 이었지만. 하여튼 딸의 친구와의 만남과 친구 집으로의 방문은 좀 각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만남이 나의 예전의 만남과 비교하니 부럽기도 했다. 어느 영화 대사의 패러디처럼 '딸아, 니들은 다 그렇게 만나는구나’ 생각했다.


친구 집에 다녀오면 딸은 친구의 남편을 향해 폭언을 날린다.

“아이를 키우는 게 대단한 것 같아. 아무개(친구 남편)가 정말 나쁜 놈이야, 늦게 들어와서 잠깐 놀아주고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하잖아. 밥상도 차려 놓으면 그제야 나와서 받아먹고. 내가 말할 것은 아니지만 혼자만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더라고.”

부부간의 사정이야 부부만이 아는 것을 우리 딸은 아직 잘 모를 것이다.


또 가끔은 이렇게도 말한다.

“엄마는 어떻게 키웠어?, 그 쪼그만 것이 잠시도 가만있지 않더라고. 30분이나 안고 있었나.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걔는 그런 애를 하루 종일 안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싶더라구.”

‘너는 새벽까지 잠을 안 잤단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는다.


몇 번을 다녀오더니 이런 말도 한다.

“아유, 쪼그만 것이 그새 또 컸더라고, 처음엔 조심스러워서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모르겠더니 자꾸 보니 너무 예쁜 거야. 꼬물꼬물 거리는 것이 인형 같기도 하고.”

그 말을 들으면 속으로는 안심한다. 애를 싫어하고 짐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구나 싶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항상 같다.

“엄마는 어떻게 키웠어? 둘이나. 하나도 저렇게 힘든데.”

그 말을 할 때마다 심드렁하게 말하곤 했다.

“그냥 키우는 거지. 다 키우게 돼 있어.”

그런데 오늘은 다르게 말이 나왔다.

“그렇게 힘들게 키웠는데, 저절로 큰 줄 알지?”

딸의 대답이 돌아온다.

“어디서 그런 상투적인 말을 듣고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은 보통 사람 일반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상투적인 것이 어쩌면 가장 상식적인 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딸은 상황을 환기시키려고 장난처럼 말했겠지만, 가끔은 그런 말이 진심으로 나올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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