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칠기삼(運七氣三)이여 안녕

by 바람


엽서를 펴니 “운칠기삼! 파이팅!” 응원의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금요일 오후, 앞자리에 앉은 선생님은 내게 엽서와 초콜릿을 건넸다. 공부를 너무 안 해서 무안하고 받아도 되나 하는 심정으로 받아 들었는데, 자신도 운이 좋아 합격할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 순간 정말 내게도 남은 ‘운빨’이 모두 다가와 부디 합격할 수 있다면, 하는 허황된 생각을 잠시 했다.


임용 시험 날이 다가왔다. 어떻게 하냐고 물어 시험만 봐 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지나친 관심은 피곤했다. 말 그대로 준비 없이 봐 보는 시험이었다. 지난해 시험에 탈락하고 손을 놓고 있었고 다시 원서 접수가 시작되니 마음이 숭숭해서 시험이라도 보아 보자고 한 것이었다. 학교의 업무에 어떤 지장도 없었지만 한 마디씩 묻는 통에 같은 교무실 식구들에게 빈 말을 할 수 없어 시험만 본다고 했던 터였다. 그런데 다정한 선생님이 잊지 않고 건넨 응원이었다.


그날로부터도 시간이 한참 지났다. 난 ‘운빨’이 없었고 예상대로 탈락했다. 이런 말조차도 의미가 없었다. 큰 기대 없이 문제의 경향만 놓치지 않겠다고 봤던 시험이었다. 그리고 이후로 매년 조금씩 시험에서 멀어졌다. 그럼에도 10년이 넘은 시간인, 지난해 임용시험까지도 접수 일부터 발표 일까지 날짜가 머리에 콕 박혔다. 그리고 1차 발표와 2차 발표를 마치 시험을 본 사람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맞이했다. 인간의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저리 치던 시험의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그 현장에서 13년을 살아왔고, 여전히 그 시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로 지금까지도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시험 날이 가까워 오면 아직도 흥분하고 떨리고 긴장하는 것을 보면, 학교 현장을 떠나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시점에서도, 그 영향력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운칠기삼(運七氣三), 시험을 보는 사람들에게 파이팅의 메시지로 하는 말이다. 습관적으로 들었고 습관적으로 나도 누군가에게 했던 말인데 오늘 우연히 만난 이 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운이 좋았어요.” 살 떨리는 노력을 통해 이룬 성취의 환희를 간신히 누르고 말하는, 합격한 사람의 겸손한 언어다. 노력하지 않은 행운은 복권이면 족하다. 그것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하고 매일의 운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는 공부의 절대량을 믿는다. 질도 중요하지만 양을 우선한다. 양이 확보되면 질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합격은 양에 비례한다고. 희망의 싹을 자르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냉정하게 바라봐야 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현실이 헛된 희망보다 낫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고 있다.


이렇게 공부해서 현장에 들어간 사람들의 현실은 녹록하지만은 않다. 막상 학교 현장을 떠나고 나니 다양한 장르의 책도 눈에 들어오고 교육의 방향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수업종과 동시에 기계적으로 들어가 기계적으로, 나름 재미있는 기계로 수업하고 나왔던 과거가, 지나치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해당 교과의 깊이뿐만 아니라 내가 지닌 학문의 깊이도 너무 얕았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고 있다.




삶이란 나는 남고 내게 의미 있는 관계자들은 떠나는 과정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떠난 의미와 관계자들을 향한 미련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시간은 그들과 나의 사이를 더 멀리 갈라놓을 뿐일 텐데도 아직 나는 새로운 의미의 관계자는 익숙지 않고, 이전의 것들을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소년은 리처드 파커가 아무 인사도 없이 떠나자 엉엉 운다. 자신을 돌아보고 아는 체를 할 거라는 기대는 인간의 사고방식이고 자연은, 동물은 자연의 법칙대로 떠난다. 오랜만에 들어본 운칠기삼이 나를 과거로 안내하고 떠난 인연을 아쉬워하게 만든다. 이제는 자연의 순리대로 삶을 맡겨야 할 나이다. 사는 대로 생각하며 현재의 인연을 만들고 즐겨야 할 시간이다. 다시 시작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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