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청소

위층의 유리창 바깥쪽 물청소

by 바람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이불을 턴다. 지난 하루의 묵은 먼지를 툭! 탁! 턴다. 우리 집은 3층. 베란다 난간에 이불을 걸치고 적당한 길이의 나무막대로 마구 두드린다. 이불 공기층에 몸을 사리고 있던 먼지들이 흩날린다.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이불이 신선한 공기를 다시 품을 때까지 마음껏 두드린다.


그 먼지가 어디로 갈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공기 중을 떠돌다 어딘가에 안착하겠지, 흙먼지와 합쳐져 누군가의 비질에 의해 쓰레받기에 담아지겠지 생각했다. 이불을 털고 난 후의 상쾌함과 나의 수고에 마음이 뿌듯했다. 마주 보이는 아파트 위층에서도 나처럼 하는 이가 보였다. 너무나 당연한 주부의 일상이라 생각했다.

주말, 늦도록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눈을 따갑게 할 때까지, 그때 햇살과 함께 부유하는 먼지도 따라 들어왔다. 딸랑딸랑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희끄무레하고 두툼한 것이 묵직하게 펄적이며 보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동시에 한 무더기의 먼지가 굵은 비처럼 햇살과 바람을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위층에서 이불을 터는 것이었다.


화가 났다. 금방 끝나겠지 싶어 베란다의 창문을 닫았다. 잠시 기다렸다. 한 개, 두 개, 세 개, 드디어 끝난 것 같았다. 부유하던 먼지가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어딘가로 사라질 때까지 충분하게 시간이 지나고도 한참을 더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 문을 열었다.


어느 날 목격한 이 일 이후로 베란다에서는 이불을 터는 행동을 주춤거리게 되었고 그 후 1층까지 가지고 내려가 아파트 한쪽 구석에서 이불을 털었다. 매번 가지고 내려오기가 버거웠고 대신 돌돌이 테이프를 훨씬 더 많이 썼고, 청소기를 더 열심히 돌렸다. 그리고 동네 빨래방을 찾아 열풍 살균 건조까지 더 자주 하게 되었다.


한여름, 폭염을 식혀 줄 단비가 내렸다. 습기가 실내를 꽉 채웠다. 쏟아지는 비와 바람이 반가웠다. 비가 들이쳐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베란다에 깔린 마루에 빈 박스를 펴서 깔고 그 위에 마른 수건을 깔았다. 어지간히 들이치는 비 정도는 닦아내도 좋을 만큼 몰아치는 바람이 간절했다.


바람과 빗방울을 즐기는 사이 들이치는 빗방울에서 몽글몽글 거품이 일었다. 쏴—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빗방울이 세차게 튀었고, 거품이 무지갯빛 방울에 담겨 이리저리 날렸다. 위층에서 베란다 유리창 청소 중이었다.


깨끗하게 시야를 확보하고 사는 것, 먼지 털고 사는 것, 모두 좋다. 최소한 아래층에 말이라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거의 매일 털어대는 이불의 먼지들은 매일 우리 집 창으로 들어와 온 집안에 안착했고, 비가 올 때마다 들이치는 비누 거품도 시커먼 유리의 때와 함께 베란다 문틈에 차곡차곡 쌓였다. 베란다에 깔아 놓은 마루에 검은 얼룩이 튀는 것은 덤이었다.


층간 소음이 아닌 층간 청소 전쟁이었다. 사실 이사하고 베란다 유리창 바깥 면을 따로 청소한 적은 없다. 그런데 부지런하고 깔끔한 그 집은 매일 아침 이불을 털었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열흘에 한번, 비 오는 날은 반드시 유리창 바깥을 물청소했다.


비가 올 때마다 내 집의 청결을 위해 아래층에 비누 거품을 기꺼이 기증하는 그 집을 향해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최소한 미리 말을 하고 청소를 해달라고. 그러나 한 번도 미리 통보하고 청소한 적이 없다. 집에 있으면 알아서 문 닫고 먼지와 물의 폭격을 피했지만 아무도 없을 때는 퇴근 후에 온 집안에 가라앉은 먼지와 물청소 후에 너저분해진 베란다의 결과물을 마주할 뿐이었다.


봄부터 시작해서 가을까지, 우린 그렇게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속상했다가 화났다가 위층으로 가서 얘기했다가를 반복하고 살았다. 문을 항상 닫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겨울이 아닌, 특히 날이 더운 여름철에 때마다 베란다 창문을 닫아 놓을 수는 없었다.


봄날 같은 겨울의 따뜻한 오후다. 종일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따라 방향을 바꾸어 몸을 누이고 있다가, 곧 봄이 오면 다시 마주할 상황이 지레 걱정스러워 머리가 어수선하다. 지는 햇살이 이렇게 좋은데 갈등 상황을 떠올리니 좋은 생각이 사라지고, 엉킨 생각들이 뭉텅이로 들어와 허우적대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왜 작아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