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작아지는가

키오스크 앞에 서서

by 바람

아침에 늘 들르는 커피숍이 있다. 매장에 들어서 무인결제시스템(키오스크, 이하 무인기기)에 주문을 하고 기다리면 금방 주문한 커피가 나온다. 요즘 주문 시스템이 모두 이렇게 바뀌었다. 처음에는 대형 패스트푸드점을 중심으로 시작된 무인기기가 요즘은 중소 매장으로도 확산되고 있고,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잠시 혼란한 마음을 수습하며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몇 달쯤 전에 대형 햄버거 매장에 갔다. 그곳 역시 무인기기가 입구에 준비되어 있었다. 따로 매장 직원이 주문을 받지는 않았다. 앞사람이 헤매고 있어 줄이 많이 밀리면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주지만 그 전에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카테고리 별로 주문하도록 되어 있고 세트 메뉴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단품 메뉴를 찾으려면 한참을 이리저리 조작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날 원하는 메뉴의 주문은 하지 못했다. 오래 서 있다 보니 쳐다보는 눈길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내가 원하는 것과 대충 맞는 것을 누르고 카드를 결제하게 되었다.


나름 한창인 학생들과 어깨를 겨루며 직장생활을 했던 부심이 있는데, 이런 식의 수모(라고 생각했다)는 스스로가 용납하기 어려웠고, 그 주문에 대해 한동안 입을 닫았다. 마치 원하던 메뉴를 주문한 것처럼. 그러나 마음속에서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그 해답으로 내세운 것이 나이였다.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도 이제 스스로 나이 들었음을 인정해야 하나 보다, 생각했다.


커피숍은 매일 들르는 매장이고 늘 같은 음료를 주문하기 때문에 주문 절차는 순조롭다. 간단하게 몇 번의 터치로 결재까지는 무난하다. 이제는 카드가 말썽이다. 정확하게 카드를 넣지 않으면 결재 타임이 길어지고 결국, 연결이 끊겼다는 메시지가 나와 한 번 더 반복하게 만든다. 한번 그런 상황을 맞으면 더 조심해서 카드를 넣고 주춤하는 사이 카드를 읽지를 못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다시 진행하게 만든다. 사람이 많이 찾는 매장이어서 이런 상황은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얼굴이 벌겋게 되고 묻지도 않은 혼잣말을 하게 된다. “이게 왜 안 되지?”


며칠 전, 그런 상황을 맞은 사람을 보게 되었다. 슬그머니 마음이 놓이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모두들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나 역시 둘셋 뒤에 줄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마음도 내가 그 앞에 서 있을 때와 같았던 것 같다. 몇 번의 시도로도 안 되니 혼잣말을 하시고, 그래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기기에서 비껴서 매장 직원이 자신을 볼 때까지 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뒤로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빠르게 주문을 마쳤고, 결국 매장 직원은 모든 손님들의 주문을 해결해준 뒤 그분의 주문을 받게 되었다.


사회가 무서운 속도로 바뀌고 있다. 100세 시대에 50대와 60대를 노인의 부류에 넣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휴대폰을 터치할 때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글자가 입력이 되어 여러 번 수정해야 할 만큼 손이 무디어지고 있다. 어디 손뿐일까. 발도 자세도 젊은 시절의 나를 자꾸 돌아보고 추억하게 만든다. 새로운 기기가 보일 때마다 젊은 세대와 비교하게 되거나, 그들과의 호흡이 버겁다는 신호가 무겁게 다가온다.


속도가 버겁다고 애들처럼 징징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극복하기 어려운 간극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없는 삶의 지혜가 있으니 퉁 치자고 해야 할까. 그럴 수도 없다. 나이 먹은 꼰대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럼 어떻게? 사실 해결 방법은 없다. 시대에 맞춰 살아가기 위한 조금 이상의 노력과, 나이 든 삶의 모습이 자신들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하는 조금의 양보와 배려 그런 것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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