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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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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Nov 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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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돌아가시고
사진 속 아버지와 만났다.
짙은 눈썹 가부좌 튼 다리
오래도록 눈 감고 기다렸는데,
떠나시고 십 년 만에 어머니에게 손짓하고
마주 보며 손 내미셨다.
모습이 하도 다정해서,
내게 눈길 한 번을 돌리지 않으셨지만,
그렇게라도 뵈어 반가웠다.
소리 내어 불렀는데
두 팔이 허공만 휘젓다 잠에서 깨곤 했다.
만석꾼이 되라고
돌림자를 바꿔 족보와 다르게 불렸는데
언제가 만자 석자고 언제는 석자 만자인지
가정환경조사서 쓸 때마다 물어야 했다.
둘째 동생은 욕심이 많고
요령껏 챙기는 건 셋째고
딸만 여섯인 다섯째는 마음 쓰이는 곳이 많았는데
현실은 바람과 어긋나서
한 번도 만석꾼으로 살아보지 못한,
당신이 낳은 자식과 똑같은
일곱 남매의 맏아들이었다.
전라도 쇠락한 양반의,
내리 넷을 딸만 낳아 절망했던 어느 아버지의 셋째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한 달을 못 넘기고 일본으로 떠났다.
돈 벌러 떠났는데,
남편 없이 시조모 시부모와 시누이 시동생들을
가마솥 가득 지어 매끼를 거두던 아내는
도망치고 싶었는데,
갈 곳이 없어서 망설였는데,
그러다 친정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각오로 돌아가려 했는데……
밤낮 없는 고된 노동을 끝내고 귀향했다.
서산 만(灣)에
큰 염전을 만든다고
시류도 읽었고 추진하는 힘도 있었지만.
서산 굴 장사 마을에 들면
동네를 돌아 나갈 때까지
그를 동무삼아 한 자락씩 이야기보따리 풀어내셨다.
얼큰하게 취해 양손 가득 들고 온 굴,
양재기에 굴 듬뿍 오이 홍고추 채 썰어 넣은
단번에 들이키는 굴회 한 사발의 맛.
아, 맛있다.
나는 그것의 흙냄새와 바다비린내 싫었다
동네 아저씨들 모여 젓가락 장단 한판 벌어지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임이 넘던 이별 고개를
막걸리와 함께 털어 넣으셨다.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는 사연을
옆에서 따라 부르기도 불렀는데,
구성진 가락에 칭찬도 들었는데,
예고를 가라고 선언처럼 말씀하셨다.
들려오는 소문만으로 무섭던 그곳이 싫어
다른 곳에 원서 넣고 시험 보고 하는 것을
모르는 체 눈 감으셨다.
직장에서 돌아올 때면
아버지는 대웅전의 부처님 같은 자세였다.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도톰한 이부자리에 한쪽에 주전자와 컵.
불룩한 배를 비틀며
화를 꾹 누르는 듯한 병과의 사투는
늘어진 테이프의 불경 소리처럼 높아졌다 낮아졌는데
그 고통을 살피지 못했다.
굳게 입을 닫으시고
한 곳을 오래 응시하는 두 눈이
꾸짖음 같아 방에 오래 머물지도 못했다.
세상이 바뀌고
징용 피해자 보상이 있다고 하여
여기저기 이곳저곳 연락하고 방문하고
날마다 분주하셨다.
나랏일 하는 것들을 시작으로
사과도 명예회복도 다 필요 없으니
노동 값이나 내 놓으라며 화를 삭이셨지만,
비행장 터는 버젓이 남았는데 징용 명부는 이름 석 자 없었고
남들 다 가는 국립묘지에도 못 가셨다.
4년간의 모진 고생이었으나 살아 돌아온 것만도 천행이었다고
당신 떠난 날 모두가 위로했다. 찬바람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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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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