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한 유럽 자유여행의 추억(2)
딸과의 여행에서, 다툼 이후로 우리는 그날 일정을 망칠 수밖에 없었다. 아울렛만 간신히 다녀왔고 그곳에 가서도 맘껏 기분도 내지 못했다. 기차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어렵게 어렵게 쇼핑몰에 갔지만, 물건들을 집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 옷을 입어보지도, 백을 어깨에 둘러보지도 않았고, 나란히 붙어 걷지도 않았다. 이른 시간이었고 사람들은 드문드문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우리를 더 불편하게 했다. 한 시간 가량을 둘러보다 맥없이 그냥 돌아왔다. 피렌체에 온 이유 중에 쇼핑이 있었는데, 시작부터 우리는 중요한 여행의 이유 하나를 상실한 것이었다.
여전히 서먹한 채로 둘은, 하나가 먼저 걸으면 하나가 따라오는 식으로 복잡한 거리를 벗어났고 한적한 곳을 찾았다. 쇼핑몰에서 돌아오며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은 다 간다는 가죽 시장도 베키오 다리에서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만남을 생각하는 것(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이었지만)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영화적 연출도 모두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말았다.
“화는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자신의 아기다.” 화가 날 때는 무조건 화를 억눌러서도 안되고, 화를 준 상태에서 금방 돌려주어서도 안 되고, 화를 회피하면서 즐거움을 찾아서도 안 되고, 주먹으로 샌드백을 치면서 엉뚱한 곳으로 화를 쏟아부어서도 안 되고, 일단 화가 나면 맞이해주어야 한다. - 틱 낫 한
틱 낫 한의 조언을 진작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화를 맞이했다. 그리고 잘 풀어냈던 것 같다. 둘 다 분명히 화가 나 있었는데 어느새 화가 자연스럽게 가라앉아 있었다. 대신 어색함이 찾아들었다.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무작정 걷다 보니 아르노 강가였다. 지도도 필요 없었고 길을 잃을까 걱정하지도 않았다. 마냥 시간을 죽일 수 있으면 족했다. 강가에 인적이 드문 공원이 있었고 들어가서 벤치에 앉았다. 몸이 지치기 이전에 마음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쉼은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이었다. 목적을 갖고 온 것도 아니고 쉼을 위해 일부러 선택한 것도 아니었지만, 우연히 다다른 공원은 우리에게 필요한 쉼에 적합한 곳이었다.
너무 말이 없는 것 같으면 "힘들어?" 또는 "배 안 고파?" 따위를 한 마디씩 건네서 소리가 들리는 범위 내에 있는지를 확인했고 들려오는 답은 “괜찮아”와 “아니”였다. 짧은 단문의 어색함과 둘이 자리한 공간의 어색함을 몸으로 느끼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데 시야에 멋진 그림이 들어왔다. 패션 화보에서나 만날 법한 슬림한 모델 포스의 신사였다. 베이지색 면바지에 흰 셔츠, 무척 무더운 날씨였는데 헐렁한 흰색 리넨 셔츠의 긴소매를 무심하게 걷어 올린 모습, 흰색 로퍼와 잘 어울리는 옷차림이었다. 회색의 머리카락도 이국에서의 느낌을 확 살게 해 주었다. 그의 옆에 사람만큼 큰 개의 목줄을 붙잡고 편안하게 산책 중이었다.
별말이 없던 딸과 달리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눈짓으로 그 사람을 가리켰고, 그의 차림은 딸에게도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푸른 나무들이 여유 있게 둘러싼 공간에 흰 셔츠 차림의 남자와 브라운 털을 가진 개의 조화. 멋진 그 사람의 산책처럼 여행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디를 가서 특별한 것을 보지 않아도, 특별히 영화에 등장하는 그곳을 못 봐도, 맘껏 쇼핑하지 않아도 있는 곳에서 망중한을 느끼는 것. 무더위였음에도 시원한 느낌은 우리가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잠깐 동안 하게 해 준 눈호강이었다.
'뒷담화'도 했던 것 같다. 뭘 하는 사람일까. 평일 낮시간, 어떤 일을 해야 저렇게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것일까. "아빠(남편)도 저런 차림을 하면 잘 어울릴까?" "아들(동생)에게는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낮에 있었던 불편한 일들을 잊게 되었다.
피렌체에서 우리는 내내 뚜벅이었다. 어디든 걸어서 목적지를 찾았고, 명소를 만났고, 힘들면 아무 곳이나 걸터앉아 쉬었다. 모든 여행객들은 다 그렇게 쉬다 걷다를 하고 있었다. 공원에서 다시 숙소로 긴 거리를 걸어 돌아오는 길에서 길바닥 어디든 쉼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곳을 여행하며 터득했고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다.
강가의 멋진 신사는 사실 뒷모습만 본 것이었다. 가까이 얼굴을 마주했으면 여전히 서먹했을 수도, 답답함을 못 이겨 다른 기분 전환의 방법을 생각했을지도, 혹은 멋진 그림을 감상한 듯한 잠깐의 감상이 파괴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멋진 뒷모습의 그 신사분은 우리 사이의 어색함을 풀어 주었고 새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의 여행은 강에서 돌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다음의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고, 심지어 돌아가는 길에 어디를 들러 가자는 말도 하며 다시 웃고 있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여전히 흐뭇한 미소와 노신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따른다.
딸에게 화가 나는 순간은 여행 이전에도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많았다. 왜 엄마는 딸들과 그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지를 아무런 근거도 이론도 댈 수는 없지만, 잘 싸우고 잘 풀어진다는 사실만은 그날의 나름의 큰 다툼과 화해를 통해 분명히 확인했다. 딸이 어렸을 때의 화는 일방적인 방식의 화였던 것 같다. 딸이 화가 나면 내가 풀어주거나 내가 화가 나면 딸은 잠잠하고 눈치를 살피거나. 딸이 성인이 되니 화의 방식은 쌍방향이었고 서로 귀를 닫았고 자주 날카로웠다. 풀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했다. 그러나 모든 싸움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되었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풀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의 마찰은 내가 느끼는 고통과 화의 원인과 딸이 느끼는 그것이 다르지 않았던 것에서 시작된 것 같다. 둘 다 지쳐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 바짝 긴장을 해야 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비슷한 무게의 긴장을 동반하고 있었다. 일찍 서로의 피로를 이해하고 달래 주었다면 서로에게 연민의 마음이 생겼을 것이고 서로를 토닥이며 좀 더 느긋하게 일정을 조율하는 지혜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딸을 이해하고 딸도 나를 이해했다면, 우리는 강가의 멋진 신사를 만날 수는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