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디어아키>

구영길 사람들

by 서용원

손길이 닿은 물건을 좋아한다. 어머니의 자기 접시나 아버지의 만년필 같은 것들. 가죽도 예외가 아니다. 쓰면 쓸수록 흔적이 묻어,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거기에 만든 이의 손길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 공들여 만든 이의 정성과 사용하는 사람의 고마움이 담겨 있는 가죽은, 그래서 가장 따뜻하다.

editor 서용원 photo 손영배


가죽 공방 디어아키의 권윤정 대표는 이를 세련됨이라 불렀다. 그에게 가죽은 마음을 전하는 방법 중 가장 세련된 방식이었다. 애써 티 내지 않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지는 손때처럼. 마치 구영3길 어디쯤 숨어 있는 그의 공간처럼.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간 그곳에서 우리는, 가죽을 사이에 두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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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찾는 데 한참 걸렸어요.

에구. 맞아요. 처음 오시는 분들은 다들 헤매세요. (웃음) 여기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골목도 아니고 조금 파묻힐 수 있는 곳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곳에 자리 잡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 첫 매장은 수송동에 냈어요. 한 일 년쯤 있었나? 그러다가 상황이랑 여건이 맞지 않아서 다른 장소를 찾게 된 거죠. 제가 새것보다는 낡은 느낌을 좋아해서 이 동네에서 언젠가 공방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가게 알아보면서 돌아다니는데 마침 이 자리가 나서 계약했어요. 월명동이 관광지라면 여기(영화동)는 주거지잖아요. 저희도 반신반의하긴 했는데, 공방이라는 거 자체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것보다는 알음알음 알려지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였어요. (웃음)


군산에서는 계속 살아오신 거예요?

아니에요. 군산은 남편 따라온 거고, 온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그전에는 계속 서울에서 살았고요.


아, 서울에서 오셨구나. 그러면 이 주변 동네가 더욱 색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그렇죠. 여기서 이제 일 년 정도 지냈는데 20년, 30년 넘게 지내신 어르신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그러나 보니까 동네에 새것이 없어요. 옛날 느낌 많이 나고 거리도 오래됐고. 거기에 제가 어느 정도 참신한 걸 불어넣을 수 있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해요. 또 동네가 느려서 저도 그거에 맞춰 빠르지 않게 지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서울 살 때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움직여야 맞게 사는 줄 알았거든요. 이곳에서 삶의 여유를 되찾은 거죠.


맞아요. 저도 느낀 거지만 동네가 참 여유로워요.

그리고 어르신들이 무심하게 챙겨주신다고 해야 하나. (웃음) 제가 안 보이면 '어제 왜 안 나왔어?' 하고 가시고, 작은 거라도 툭 던지듯 주고 가시고. 그런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점점 동네가 좋아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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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이름이 디어아키예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특별한 의미는 아니고요. (웃음) 일본어로 '아키'가 가을이라는 뜻이에요. 제가 가을에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예전부터 많이 쓰기도 했었고 익숙한 단어라서 가져왔어요. 서울에서 공방 운영할 때부터 불리기 쉬운 이름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서 저랑 연관 있는 이름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은 이름이에요. '디어'는 영어로 '친애하는', '친근한' 뭐 이런 뜻이니까 많은 분들한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함께 붙였습니다.


서울에서도 공방을 운영했다고 하셨는데, 역시 가죽 공방이었겠죠?

그럼요. 제가 의상디자인과를 나왔는데 옷보다는 가방이나 소품 만드는 걸 더 좋아했어요. 그래서 홍대 플리 마켓 같은 데 나가서 만든 거 팔고 하기도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방 디자인 일을 하게 됐고, 업계 분들께 배우기도 하면서 계속 가죽을 만졌던 것 같아요.


맨 처음 인테리어에도 공을 많이 들이셨을 것 같아요.

저보단 제 남편이? (웃음) 여기가 이전에 한 3년 동안 아무도 안 살았대요. 그래서 처음에 왔을 때 정말 헉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그래도 낡은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공사를 시작했죠. 바닥이랑 전기랑 벽에 페인트칠하는 거 등등 직접 하고 나니까 가게 분위기와도 너무 잘 맞고, 무엇보다 제가 쓰기 편해요. 지금 앞에 있는 책상으로 예를 들면 이것도 남편이랑 같이 만들었거든요. 저희는 작업하는 책상이 정말 중요해서 크기나 높이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해요. 그런데 직접 만들어서 필요한 만큼 저한테 딱 맞출 수 있으니까 더 쓰기 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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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를 꾸밀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음, 보이는 곳과 작업 공간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분리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가벽 같은 걸 세워서 완전히 분리해 놓을까 했는데 그러면 공간도 너무 좁아 보이고, 공방의 분위기까지 가려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쇼윈도로 봤을 때 시선을 끌 수 있는 제품과 들어오셔서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을 앞에 두고 책상과 가죽 더미로 자연스럽게 작업 공간이 이어지도록 꾸몄어요. 조명도 제품에 백색 등은 안 어울리거든요. 그래서 주황 등을 달았고. 작업할 때는 집중해서 조그만 것도 봐야 하니까 백색 등으로 달고 하면서 신경을 썼죠. 작업 책상 뒤로는 재봉틀이 보이고, 큰 원단이랑 위험한 기계 같은 것들은 따로 안 보이는 공간에 두어서 아기자기한 공방의 느낌은 어느 정도 살린 것 같아요.


가죽 공방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그렇게 들으니까 거창한 하루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아요. (웃음) 아침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제가 나오면 청소부터 시작해서 개인 작업을 하면서 오전을 보내요. 작업 들어온 물건이나 앞에 진열하고 싶은 물건들을 만들죠. 오후부터는 클래스 신청하신 분들 작업 도와드리고 마무리하는 정도. 그래서 주로 월요일은 클래스를 받지 않는 편이에요. 개인 작업에 집중할 시간도 필요하거든요.


클래스 신청하는 분들이 많은 편인가요?

알음알음 알고 오신 분들이 계셔서 짬짬이 하고 있어요. 가죽이 처음 접하는 분들한테는 조금 복잡할 수 있어서 한 분이나 두세 분과 주로 진행해요. 제가 알려드려야 할 게 생각보다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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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복잡하길래요?

음, 말로 하면 간단해요. 자르고 꿰매면 끝이니까요. (웃음) 그런데 가죽은 접히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처음 해보시는 분들은 스케치와 실제 필요한 면적의 차이를 이해하셔야 해요. 완제품에 맞춰서 종이 패턴을 먼저 떠야 하는데 측정이 잘못돼서 나중에 원하는 모양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최대한 도와드리고 있는데, 원하는 완성품을 정확하게 묘사한 스케치가 사실 가장 중요하죠. 패턴이 완성되면 가죽에 대고 정확하게 자르고 모양을 맞춰서 꿰매면 되는데 가죽은 천보다 바느질이 어려워요. 재봉틀도 돌리고 해야 해서 이 부분도 많이 도와드리고 있어요. 그래도 다들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배우셔서 카드지갑에서 시작했던 분이 손가방 스케치 들고 오시고 그래요. (웃음)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실제로 나오니까, 그 재미에 빠지신 거죠. 그런 분들이랑 머리 맞대고 이야기하면서 디자인 도와드리고 하면 저도 재미있고 참 즐거워요.


말만 들으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없을 것 같아요. (웃음)

제 개인 작업은 더 해요. 하하. 카드 지갑 같은 건 마음잡고 만들면 하루면 되는데, 서류 가방은 일주일씩 걸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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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경력이 한 10년 정도 되었을까요?

14년, 15년쯤이요.


그런데도 일주일씩 걸리는 거 보면, 가죽은 장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가방을 만들 때 같은 모양이라도 정성을 많이 쏟을수록 예쁘고 더 고급스러워지거든요. 장인이라는 말이 붙는 것도 그만큼 그분들의 기술과 공이 들어가기 때문인 거죠. 저는 장인 소리 들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요. (웃음)


가죽은 또 종류도 다양하잖아요. 쓰임도 제각각이고요. 만드는 사람마다 선호하는 가죽이 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먼저 어떤 가죽을 쓰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아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알아내야 하죠. 아주 작은 흠집도 용납하지 않는 분이 있고 막 더러워지는 거 좋아하는 분도 있어요. 색깔, 재질, 무늬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기호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완제품의 용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흠집 잘 나고, 때 잘 타는 빈티지한 가죽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새것을 선호하지 않는 취향이 가죽에도 반영된 거겠죠? (웃음)


대표님도 취향이 아주 확고하시군요. (웃음)

하하. 가죽은 유행에 따라 쓰고 버리지 않잖아요. 긴 시간 곁에 두고 때를 묻히는 제품이죠. 시간이 흐를수록 사용자의 흔적이 쌓이는 게 가죽의 매력 같아요. 거기에 만드는 사람의 정성까지 들어가니까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며 선물하기 좋은 거죠. 내 정성, 내 마음이 그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랄까요. 그래서 직접 만드시는 분들 대부분이 정말 소중한 사람한테 선물하고자 하세요. 부모님이나 오래된 친구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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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용 또는 개인적으로 만드시는 제품에도 그런 취향이 반영되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희 제품에는 빈티지 느낌이 묻어나 있어요. 물론 깔끔해야 하는 제품은 그렇진 않죠. (웃음) 제 손길이 들어가는 거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같은 이유로 저희 가게에는 천과 결합한 가죽 제품도 많아요. 대표적으로 앞치마가 있는데. 가죽을 약간 덧댄다든가 해서 가죽의 매력과 천이 가진 매력을 더하는 거죠. 제가 의상디자인과를 나와서 천을 더욱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 같아요. 장점이자 디어아키만의 매력이 되는 거겠죠?


좋습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곧 출산을 앞두고 계시잖아요.

네. 출산이 임박해서 당분간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다가 몸이 회복되면 저만의 생각이 들어간 제품을 판매하는 쪽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클래스를 줄여야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있으니 제가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거든요. 하지만 이것만은 꼭 지키고 싶어요. 소통이 있는 따뜻한 공방으로 남는 거. 저는 여기서 공방 열고 주변분들, 찾아 주시는 분들한테 감사한 일이 정말 많았어요.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과 대화하면서 사람과 관계하는 법을 배웠고 동네 미술관에서 전시도 할 수 있었죠. 덕분에 지금 인터뷰도 하고 있잖아요. (웃음) 제 공방을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는 게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해서 앞으로도 이 역할은 유지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가죽 공방이라고 어려워 마시고, 편하게 들러주시면 좋겠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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