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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 Mar 12. 2019

#4. 같이 살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충분히 아내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짧게 사귄 것도 아닌데 연애 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는 몰랐다. 영화 취향이 이렇게 다른지. 그때는 따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냥 새로 영화가 개봉하면 보러 갔으니까. 영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널 보기 위해서 만났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나는 SF, 너는 멜로.

  그때는 몰랐다. 음식 취향이 이렇게 다른지. 길거리 분식집, 패밀리 레스토랑, 고깃집, 횟집. 따지지 않고 다 갔다. 뭘 먹기 위해 만난 게 아니라 널 보기 위해 만나서 음식을 먹으러 간 것뿐.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나는 짜장면, 너는 짬뽕.

  사실 그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먹는 음식은 그저 상대방에 맞춰주면 되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하면, 그래 같이 보면 되었다. 그러나 결혼한 지금은 매우 상황이 다르다. 나의 밥상이 완전히, 나의 삶이 모조리 달라져야 하니까.

  결혼 전에는 쉽게 알기 어렵다. 운이 좋게도 잘 맞는 것이 많다면 매우 해피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의 초딩 입맛과 아내의 할머니 입맛은 완전한 상극이었고, 영화관에 가면 이제 각자 보고 싶은걸 보러 가고 있다.

  뿐만이랴, 우리 집과 처갓집은 너무나도 다르다. 완전한 기독교 집안인 우리 집은 부모님이 평생 술 한잔 드시지 않았으나, 워낙 음주가무를 즐기는 처갓집은 모이기만 하면 취할 때까지 달린다.

결혼 후 우리 부모님과 함께 한 첫 일박 여행 때의 일이다. 그리 멀지 않은 교외에서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들어와 저녁을 먹었다. 밤 8시경이 되자 우리 부모님이 불을 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말했다.

잘 자라, 아가야


  처갓집은 밤 8시부터 여행의 시작이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때에, 술도 없고 대화도 없이 유치원생보다 빠른 취침이라니. 아내는 당황했다.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굉장히 많으나, 일단 가장 흔한 일은 어머니가 우리 집에 방문할 때 아내가 냉장고에서 술을 치우는 일이다. 술을 몽땅 싸가지고 차 트렁크에 숨겨 놓는다. 마치 고딩들처럼, 뭐 아직 그렇게 지내고 있다.

결혼 후 나와 많이 다른 아내를 만나 나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아마 아내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서로가 서로를 위해 달라지고 닮아가는 중이다. 아니 그러지 않으면 서로가 괴롭다. 그냥 자연스레 우리 부부는 닮아가고 있다. 나는 초딩 입맛에서 어른 입맛으로. 아내는 SF가 들어간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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