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여행은 훨씬 흔한 것이 되었다. 여행은 익숙한 것을 벗어나며 다시 집에서 가까웠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많은 사람이 휴가철이나 긴 연휴 때 여행을 떠올린다. 여행은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이른 봄날, 혼자 제주도 올레길을 걸은 일이 있다. 조금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오름 위에 서니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보인다. 예상치 못한 탁 트인 풍경에 소리없는 감탄이 나온다. 푸른 바다와 넓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나무 밑에 앉아 그 여운을 만끽한다. 사람도 대여섯 명 정도로 한적한 길, 재촉하는 이 없이 여유롭고 햇볕이 따스하다. 예측하지 못하는 ‘감탄’을 만나러 여행에 왔지만, 그 순간을 미리 알진 못했다. 어떤 곳은 예상대로 멋졌고 다른 곳은 그렇지 않았다.
여행은 내가 그곳에 ‘던져진다.’라는 것과 같다. 올레길은 인적이 드물다 보니 앞뒤를 관찰하며 인기척에 민감해진다. 걷는 동안에 주변에 레이더망을 발동한다. 곧게 이어진 길을 걷다가도 ‘이 길을 맞게 가는 건가?’ 지도를 계속 확인했다. 좀처럼 확신하기 어려워하고, 여러 번 확인하는 나를 ‘관찰’한다. 여행에선 역설적으로 여행지보다는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내일은 뭐 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혼자 들어가면 음식점 사장이 안 좋아하겠다며 눈치를 살핀다. 자극의 범람 속에서 반응하는 나를 본다.
첫 해외여행으로 필리핀에 갔을 때 놀란 점이 있다. 길거리를 혼자 다니면 소지품을 뺏길 수 있다는 것, 부화하기 전의 알을 삶아 먹는 것. 내게는 당연했던 안전, 평범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럴 수 있지’라는 수용의 감각과 기꺼이 무엇이 다른지 알고 싶은 ‘호기심’의 자세를 장착한다. 놓고 보면 한국 사람이라도 살아온 배경이나 문화가 다르다. 평소에도 여행을 갈 때처럼 이해와 관심의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리핀 세부는 스쿠버다이빙으로도 꽤 유명하다. 한국에서라면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아서 다이빙을 안 했을 것이다. 가격도 한국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저렴했고 수영도 못했지만, 왠지 도전하고 싶었다. 온몸에 물이 잠겨있는 게 갑갑하고 때로 질식할 듯한 무서움도 있었지만, 이틀간의 교육 끝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 않았을 것도 낯선 곳에 가면 더 쉽게 할 수 있다. 가능성과 잠재력, 이게 여행의 묘미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베트남이다. 쌀국수, 팟타이를 먹을 때 원래 고향 음식처럼 입맛에 잘 맞았다. 한국에서는 얇디얇은 지갑이지만 여기서는 먹고 싶은 것을 실컷 고르고 마사지를 받아도 감당이 되었다. 망고주스를 먹고 바깥 경치를 누리며 ‘부자가 된 감각’이 생경했다. ‘내가 가진 것으로도 만끽할 수 있는 게 많구나. 나도 이렇게 누리며 살고 싶었구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도 들었다.
여행은 ‘다름이 빛나는 일’이라고 알려준다. 내가 사는 곳과 똑같다면 여행 갈 이유가 없다. 국내 여행을 가도 광양에 가면 제첩칼국수, 부산에선 돼지국밥 등 지역 특색 음식을 찾아 먹는다. 그러나 일상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가치관, 정치 성향이면 불편해한다. 이상하게도 여행에서는 달라야 좋아한다. 그게 여행에 필요조건이다. 어쩌면 우리는 여행을 통해 '달라야 산다'는 본능을 스스로 일깨우는 건 아닐까.
다양한 이유로 여행길에 오른다. 새로운 경험을 하러, 그 안에서 나를 만나고 누리지 못한 것도 누려본다. 그 무엇이 되었든 그럴싸해 보이는 여행보다는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여정을 떠나길 바란다.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감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