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게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난 식사를 마치자마자 손을 바삐 움직인다. 내가 설거지를 안 하면 당신이 할 테니까. 고추장 멸치볶음을 만들고 미역국을 끓인다. 어깨 아픈 당신을 위해서 내가 만드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나는 사랑이 봉사일까 내게 묻는다.
어린 시절 매일 아침 나를 위한 야채주스가 있었다. 이제는 소고기뭇국과 매콤한 무생채무침으로 당신에게 저녁을 내놓는다. 입맛이 투박한 그녀는 내게 요리사라며 치켜세우는 게 난 감사할 따름이다. 난 그간 받았던 것을 내가 줄 수 있다는 것이 색다르면서도 뿌듯하다.
‘비닐봉지는 좀 쌓아두지 말고 버렸으면 해.’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끝없이 부탁한다. 그러나 당신의 습관은 시간이 지난다고 좀저럼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저러는 걸까?’ 못마땅한 순간, 꾸중하기보단 침묵을 선택하는 횟수는 늘었다. 아무리 말해도 당신이 변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걸 안다. 묵묵히 비닐봉지를 색상별로 정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생존전략이다.
가끔 그렇게 꾹 삼키더라도 시차를 두고 뭔가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핸드타월은 그만 좀 챙겨오면 좋겠어.’ 검정과 투명의 비닐봉지가 뒤엉켜 있다. 찌그러진 모양을 보며, 문득 당신의 마음도 저럴까 생각한다. 당신은 정리를 지독히도 못 한다. 내가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분류를 해서 깔끔하게 한들 한 달이 가질 못한다. 어느 순간부턴 내버려 둔다. 그냥 그렇게 생겼구나.
우연히 어느 가수가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 당신 생각이 먼저 났다. 매일 같이 밥 먹으며 무료할 때 음악 듣는 걸 가장 즐기는, 녹슨 피아노 건반 같은 걸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 표를 끊는다. 밝게 미소짓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마치 공연장에 들어선 것처럼 들뜬다.
당신은 ‘누가 일을 안 한다고 요즘 너무 힘들다.’고 푸념을 들어놓는다. 쳇바퀴 도는 불평에 이제는 잔소리할 생각도 않고 그저 듣는다. ‘에고, 고생했네.’라고 말하며 입을 꾹 닫는다. 우리는 결국 서로가 짊어질 짐을 잠시 옆에 놓은 사이일 뿐이다. 너무 몰입해서 듣지는 않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니.
당신이 평온하고 이따금 웃으면 좋겠다. 가족 말고도 친구나 즐기는 취미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역에서 하는 합창단 공고, 구청에서 하는 수채화 반을 찾아본다. ‘이거 해보는 거 어때?’ 물었더니 ‘피곤해서, 멀어서, 귀찮아서 너나 해.’라는 말. 가슴에 작은 생채기를 남긴다. 예상했던 거절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저릿하다.
속으로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의 삶이니 내가 어쩌겠어요. 당신은 그렇게 살아왔고 우리는 다르니까요.’
내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오지 않았듯 나는 나이고,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은 내게 중요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당신.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겠지만, 당신이기에 그 삶을 인정한다. 다만 한 발 물러서서.
그것이 내가 택한 사랑의 거리다. 이게 내가 지독히도 당신을 존중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