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나무 Mar 22. 2023

2023 목련을 보다

봄이다.

아침에  딸아이 스쿨버스를 보려고 창문 밖을 보니  목련꽃 봉우리터지지 않은 팝콘처럼 앙상한 가지에 매달렸다.

새벽에 내린 이슬비에 젖은 상캉중로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피지 않은 목련 봉우리가  매달린 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내 인생에  꽃의 시작은 목련이다.

나름 신여성이던 어머니는 목련을 참 좋아하셨다.

나는 목련 꽃을 잘 모르면서 목련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사춘기  시절, 봄볕 가득한 여고 교정을 들썩이던 4월의 노래 속 목련을 사랑했다.

마음속에 폭탄이 터질 것 같아 괜스레 불안하던 이십 대에  허무를  먼저 알아버린 자신의 삶을 목련에 빗댄 어느 시인의 시를 가슴에 품고 나도 목련을 습관적으로 사랑한다고 믿었다.


봄볕 따스하고 봄바람 매섭던 남쪽의 항구에서 국어교사를 했다.

오 년을 같은 학년 국어를 가르쳤다.

오 년 동안 삼월 셋째 주에는 분분한 낙화를 낭송했다.


현실의 나는 이십 대를 넘어 삼삽대에 안착하고 있었다.

매년 분분한 낙화를 낭송하다 창밖을 보면 목련 봉우리가 나뭇가지에 앉고, 봉우리가 피고, 목련 꽃잎이 칼날 같은 봄볕에 베여 분분히 휘날렸다. 분분한 낙화를 낭송하며, 날리는 꽃잎을 보며, 나의 은 꽃답게 죽고 있었다.


그 뒤 한동안 나는 목련을 보면 이상하게 울렁거렸다.

청춘은 이미 없는데도 내 청춘이 죽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나 목련은 아쉬었다.

이른 봄 나뭇잎의 보호도 없이 아직은 꽃샘추위 속에서 갑작스런 봄비를 타고 봄바람을 타고 와숙하기 전에 지는 것이 목련의 숙명이라 믿었다. 그래서 언제나 아쉬었다. 며칠 더 보고 싶은 갈망이 마음 속 목련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


어느핸가 가뭄 심한 어느 봄 지리산 아래에서 봄비에 떨어지지도 봄바람에 날리지도 못하고 견딘 덕에 바빡 말라 꽃잎들이 타들어가며 시들어 나뭇가지에 가득한 목련 나무들이 즐비한 모습을 보고 나는 차마 눈을 감고 싶었다.  고난을 견딘 목련꽃은 초췌함으로 남아있었다. 괜한 것을 보았다. 나는 지지 않고 타들어가며 살아 남은 목련꽃의 잔상이 두려웠다.


애잔했다.

언제나 다 피지 못하고 지는 목련꽃이 애잔했는데,  그날  모든 풍상 견디고 타들어 가는 목련꽃도 애잔했다.

그리고 그리고 용감했다. 아름다움을 잃고도 꿋꿋하게 버티던 그 목련꽃이 용감하고  아름다웠다.  내 삶이  아름답지 않아도 용감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늦둥이 엄마 아이 친구 만들어주기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