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교육
아이 학교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
어쩌다 외국에 나와서 사는데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 엉겁결에 나도 아이 입시 문제에 걸려들었다. 똥장군 지고 장에 간다는 속담처럼 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 친구엄마들의 장단에 맞추어 입시생 엄마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아이가 아이비 학교에 다니는데도 파이널 시험에 대해서 이년 반 만에 겨우 깨달은 내가 뭘 알겠는가만은 오늘도 엄마들 모임에 나갔다가 학교 내신에 파이널 시험, 거기에 토플까지 이야기가 나오자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SAT도 해야 한단다. 미국 대학을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내 어설픈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AP 시험도 준비하면 좋다는 땡땡이 엄마 말에 나는 순간 욱했다. 아니 그 어렵다는 아이비 내신에 파이널에 토플에 SAT에 뭐 AP 시험이라고...... 결국 나는 내 성격을 못 이겨서 애를 잡는 거 아니냐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모임에서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실제로 아팠다) 중도 탈락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은 내가 대학 원서를 쓰러 가던 삼십몇 년 전의 그 하얀 눈 쌓인 거리보다 더 무겁고 힘든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늦둥이 엄마라 항상 따라가기 바쁜데 요즘은 더욱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이에게 무한 경쟁의 길을 가게 할 것인지...... 한국에서 하던 고민을 외국에서도 그대로 할 줄은 몰랐다. 아니 여기에선 더 힘들다.
아이 입시에 적극 뛰어들기도, 손을 놓기도 힘든 상황에서 언제나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후배는 삼 년 특례로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 경험으로 나에게 어두운 들판의 동방박사에게 길을 가르쳐 주던 별과 같은 존재이다.
이런저런 푸념을 하니 문득 후배가 말했다.
-언니 뭘 고민해요. 일단 좀 시켜보고 하면 하는 거고 아님 또 다른 길을 생각하면 되는 것인지. 지금부터 뭘 고민해요. 아직 입시 시작도 안 했는데.... 그리고 언니는 원래 그쪽 라인이 아니지 않아요?-
아! 그렇다.
나는 원래가 공부는 할 수 있는 사람 혹은 하고 싶은 사람만 해야 된다는 믿음으로 살아온 오십 인생 아니던가
거기다 아이는 아직 아무 생각 없는 즐거운 사춘기 소녀인데 나 혼자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늦둥이 엄마의 자격지심인가 싶었다. 괜히 늦었다는 생각에 혼자 고민하고 아등바등 거리는 거 말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언제나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흘러가고, 내가 죽을 둥 살 둥 힘쓴다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자식 일에 또 모든 생각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전화를 끊으며 후배가 말했다.
-언니 언젠가 언니가 내게 했던 말 생각나요. 내가 죽어라 하면서 힘들어하는데 언니가 그랬잖아요. 너무 애쓰지 마라. 너무 노력하지 마라. 그냥 할 수 있을 만큼만 해라. 그때 언니가 얼마나 쿨 해 보였는데... 그때만 해도 성실과 노력이 세상의 잣대였을 때 어린 나한테 아직 젊은 언니가 했던 말이었는데 내가 언니한테 들은 수많은 말 중 그전에도 그 후에도 최고의 말이었어. -
전화를 끊고 좀 울컥했지만 숨이 쉬어졌다.
애쓰지 마라는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가끔 너무 힘들어 하는 지인들에게 이 말을 하고는 했었다.
나는 나에게 말했다.
너무 애쓰지 마라. 니가 할 수 있을 만큼 해라.
그래야 너도 행복하고 행복한 엄마를 보고 아이도 행복한 거다.
그래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하면 되는 거다. 내가 아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서 아이에게 해 줄 수도 없고 그러는 것이 꼭 옳지도 않다. 살다 보면 아는 것도 다시 되새김할 필요가 있다. 너무 애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