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얻은 딸이 건강하기나 했으면, 나중에 지 밥벌이나 했으면, 사람들하고 좀 잘 지냈으면, 그저 무탈하게 자라기만 바라던 늙은 엄마에게 맹모는 언감생심이었다. 맹모가 될 능력도 자신감도 없었던 나에게 이번 여름 맹모의 길이 열렸다.
중국에서 남편의 주재가 끝나고 자카르타로 떠나는 (참 징글징글 돌아다닌다) 중간 틈에 일 이주일 정도 한국에 들러서 이런저런 일을 볼 계획을 세우고 있던 나에게 딸의 한마디는 나의 계획을 흔들어 놓았다.
급하게 뛰어들어오느라 현광 안쪽으로 튕겨 들어온 딸아이의 운동화 한 짝을 들어서 신발장 안으로 옮기는 내 뒤로 아이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 엄마 도땡이, 예땡이, 해땡이, 지땡이, 서땡이, 승땡이, 주땡이, 성땡이 전부 다 오는 25일 비행기로 한국에 간대 너무 좋겠다. 수학여행 가는 거 같겠다. 코로나로 수학여행도 제대로 못 갔는데....-
나열한 아이들은 우리 딸과 같은 국제 학교에 다니는 한국 아이들이다.
- 왜? 그날 비행기표 할인한대?-
모든 아이들이 그날 한국으로 간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했지만 별생각 없이 묻는 나에게 이제 다 늦게 사춘기 라인을 타는 딸(열일곱인데 이제야 사춘기 증세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다른 아이들은 다 학원에 가기 위해 그날 가는데 자신은 엄마가 자신의 사교육에 관심이 없으니 뭐 그런 것을 알겠냐며 방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닫으려는 딸아이에게 물었다.
- 너도 학원 가고 싶어?-
- 응-
나는 당황했다. '아니'라는 답이 나올 거라고 답정너 해 놓고 있는데 '응'이라는 단어는 생소하면서도 가슴을 쿵하게 했다. 최대한 차분하게 원하는 답을 유도해 볼까(항상 실패하지만 나름의 잔머리를 굴린다) 하면서
- 너 방학에 한국에 가서 공부할 거야? 이야기 들어 보면 아침부터 밤까지 빡세게 한다는데 너 할 수 있겠어-
말을 하면서 너무 답을 정해 놓은 것 같아서 조금 찔렸지만 그래도 소신 있게 미끼를 던졌다고 만족하는데 딸아이가 약간은 볼멘 듯 말을 했다.
-해땡이가 그러는데 지금부터 공부해야 한대. 그래서 해땡이 도땡이 다 한국에 학원 등록했대-
언제나 인생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좌표를 다시 찍어야 하는 때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기대감이 스멀거렸다.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다니... 저런 말 할 때 좀 시켜야 하나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뒤늦게 몇몇 딸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정보를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한국에 있는 특례 학원들이 해외 국제학교 여름 방학에 맞추어 개강을 하기에 그때 가야 제대로 된 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 나와는 친밀하며 솔직한 성격의 윤땡이 엄마의 한마디가 폐부를 찔렀다.
-언니 언니는 무슨 자신감이야? 이번에 12학년 중 사교육 안 한 애들 성적 안 들어봤어. 채땡이는 그냥 학교 공부만 시킨다는 건 언니의 근자감이야. 이제 채땡이 9월에 고등학교 들어가는데 아이비 과정이 얼마나 힘든데 그냥 두면 안 되지. 그리고 채땅이가 부럽다고 했다면서...-
-걔가 부럽다는 건 다 같이 한 비행기 타고 한국 들어가니 재미있겠다는 거.......겠지..., 공부도 하던...애...들이 하는 거...-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억지로 공부시키거나 과한 사교육은 필요 없다는 나의 논리가 안 먹힌다고 생각 들었다. 아니 안 먹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뭐라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거의 사교육 없이 키웠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안 한 것은 아닌 것이 올해 들어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의 수학 인터넷 강의와 한 달에 두 번쯤 두 시간 친구 따라 토플을 듣기는 했다)
어쨌거나 노는 것이 제일 중요한 아이와 그런 아이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나였지만 윤땡이 엄마의 논리적인 학습관 앞에서 점점 내가 아이 학습에 있어 좀 무심한 엄마가 아닌가 싶고, 이제 고등학생이 되니 좀 시켜야 하나 싶기도 하고 , 학원에 가고 싶다는 아니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아이의 말이 달콤했다. 나는 갑자기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올라 언제나처럼 무계획적이지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방면 노하우가 뛰어난 유땡이 어마의 조언을 받아들여 한국에 있는 학원에 토플을 알아보았더니 세상에나 세상에나..... 유명한 학원은 이미 다 수강이 끝났고, 시간이 안 맞고 아니면 너무 과하게 교육하는 학원 밖에 없었다. 나만 아니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았다.
전화 몇 통을 하고 나자 나는 갑자기 조바심에 마음이 급해졌다. 나의 딸은 이미 한국에서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뒤처져 있고 앞으로도 그 간격을 좁히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나 때문에 아이를 뒤쳐지게 할 수 없다는 이상하게 과열된 의식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한국의 많은 엄마들처럼 맹모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맹모가 되어, 산에서 장례흉내를 내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흉내를 내는 맹자를 최고의 학자를 만들었던 맹모처럼 우리 딸을 제대로 된 공부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리하여 저녁에 들어온 남편에게 나도 7월 중순에 한국에 나가겠노라고 선언했다. 사실 남편은 이번 여름 이곳에서 주재가 끝나고 9월쯤 다른 나라로 지역을 옮겨갈 계획이어서 나는 짐을 그곳으로 부치고 남편보다 일주일쯤 한국에 나가서 준비를 해서 남편과 함께 옮길 계획이었다. 그러나 내 딸이 내 실수로 다른 아이들에게 밀릴게 할 수 없다는 굳은 결심 이외의 다른 생각은 들어오지 않았다.
계획보다 앞서 이사준비를 하고 준비물을 챙기고 짐을 부칠 준비를 끝내고, 나는 이곳에 올 때처럼 너무 바쁜 나머지 약간 정신이 나간 것처럼 급하게 준비를 하고, 친구들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간 것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딸의 말에 무한한 신뢰를 갖고, 별생각 없이 입만 많이 야물어진 사춘기 딸 손을 잡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거의 이 주만의 쾌거였다. 나도 맹모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시대 수많은 한국의 맹모들 대열에 당당하게 합류하겠다고 결심했다. 수많은 맹모들이 치밀하고 열정적으로 자식의 교육에 앞장서는 것에 비해 나는 다소 감정적으로 그 대열에 삽류하겠다고 나선 것이 차이점이랄 수 있겠으나
2023년 여름 나는 엉겁결에 맹모의 길을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