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나무 Sep 13. 2023

어설픈 맹모(孟母)의 슬픈 깨달음

나도 딸의 교육에 앞장설 수 있다는 굳은 희망을 가지고, 강남에 어디에 붙은 지도 모르면서 사춘기 기색이 완연한 딸아이의 손을 잡고, 말로만 들은 한티역에서 택시를 내린 육십을 바라보는 엄마는 머지않아 슬픈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가 맹자가 아니면 맹모는 될 수가 없다. 거기에  의욕만으로  맹모가  될 수는  더더욱  없다.  경제력,  정보력, 추진력은 기본이고  자식의 교육적 성공에 대한 믿음과 희생정신,  등이 탑재  돼 있어야 한다,


내가 사교육의 일번지에 도착한  날은  비가 왔다. 비도 그냥  내리는  비가  아니라  억수 장대비가   앞을 가리게  내리고 있었다.   어쩌다 피어난 열정에 휘말린 육십을 바라보는 엄마와  친구들이 모두 강남으로 공부하러 갔기에 친구들이 많을 거라는 부푼 꿈을  가진 사춘기 딸은 약간의   동상이몽을 가지고   설레었다.


그러나 그 설렘은 몰아치는 폭풍우에 흔들렸고 곧이어 맞닥뜨린  사교육 일번지의 현실에 땅속으로 스며든 폭우가 흔적 없이 사라지듯   흩어지고 있었다.



한 번도 사교육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적 없던 우리는 머지않아  좌절감으로  참담함을 느꼈다.  그럭저럭  괜찮을 거라고 믿었던  아이의 실력은  매서운 검증 아래 실력이라 부를 수 없다는 식으로 폄하되었다.  거기에 아이의 실력에 맞추어   과하지 않게 여유를 가지고  공부시키고   싶다는 나의   생각은 세태를 모르는 것이며,  더 나아가 아이의 장래에 악영향을 준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잘 나가는 선생님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져서   학원  문을 나서면서   몸을 펴지 않으면  바닥에 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 평생에 한 번도 들인 적이 없는 사교육비와 늙어 가는 나에게는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가면서도 나는 

어찌어찌, 겨우 겨우,  심봉사 외나무다리 건너듯이  학원 세 곳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수학 영어 미술)

그러나 처음의 원대한 꿈은 사라지고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고객님 당황하셨어요?라고 묻는 듯한 사교육의 현장에서 당황하는 것 말고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나는 나대로 딸은 딸 대로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친구들 한꺼 번에 한국 가는 것이 놀러 가는 것 같아 부러운 마음에 한마디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렀고, 나는 평생의 신념을 망각하고 늦둥이 딸이 학업에 재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어미의 슬픈 욕망에 대한 대가를 충분하게 치렀다.



더 이상 뜨거울 곳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이 더운 2023년 8월 중순, 한국에서의 에서의 한 달을 끝내던 날


이번 여름 나의 고난 역사를 잘 아는  후배는 지쳐서 늘어질 대로 늘어진 몸과 마음을 다스리지도 못하고 다시 적도의 땅으로 떠나는 나에게 물었다.


- 그래서? 결과는 어쨌어? 돈과 시간을 들인 만큼 효과는 있었어? -

늦둥이 딸아이의 사교육을 위해 삼십 년 나의 신념을(공부는 잘하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고, 억지로 사교육에 돈과 시간을 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버선 목 뒤집듯 뒤집어 버린 나는 변명도 의미 없다 싶어졌다.


- 아니 맹자가 있어야 맹모가 있지. 한 여름의 꿈이지. 그래도 한 번은 해 봤으니 뭐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한거지. 현실 직시가 좀 슬프지만 울 딸 하고 어젯밤에 두 손 꼭 잡고 말했어. 이제 고등학교 입학하면 학교 공부 열심히 하고 졸업하고 나오기로.... -


후배가 비웃는 표정을 지었는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는지는 서로가 민망해서 얼굴을 보지 않아 모르겠다. 그리고 적도 날씨를 이야기했다.


ㅡ뜨거운 여름만큼 뜨거웠던 늦둥이 엄마의 뜨거운 욕망은 여름이 가면 사라지는 열기처럼 진실과 깨달음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작가의 이전글 독서를 위한 책 고르기 - 중고교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