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 되었다.

by 가을나무

예순이 되었다.

특별하지도 않았고, 준비도 없었으며,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예순 살이 되었다.

언제나 그랬다.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까지 가져온 나이들은 언제나 그렇게 어느 가을 깨끗하게 쓸어 놓은 뜰안으로 물기 마른 낙엽하나 툭 떨어지듯 그렇게 왔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나이 예순 살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몇 년 전 나는 명예퇴직을 하며 생각했다. 몇 년 쉬다가 예순이 되면 귀 순한 할머니가 되어 여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내가 생각했던 귀 순한 할머니가 되지 못했다. 할머니라고 드러눕기에 나는 내가 생각하던 온 몸의 진기가 빠져가는 늙은 육체의 할머니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젊고 생생한 육체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늙음을 바라보지만 막 늙어버리지는 않은 다서 어정쩡한 예순 살이 되었다.


불혹(不惑: 40 -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에는 미세한 바람에도 바람보다 흔들려대는 마음에 당혹했고, 지천명(知天命: 50- 하늘의 명을 이해한다는 나이)이라는데 세상은 더욱 알 수 없는 암흑 같았던 것처럼 나는 이순耳順: 60 귀가 순해진다는 나이) 이 되었는데도 귀가 순해져 평화로워지기는 고사하고 뒤끝 작렬하는 할머니 꼰대로 나는 예순 살이 되었다.


지나가는 시간을 거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순응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마음으로 예순 살이 되어 새해 첫날 눈을 뜨며 생각했다. 이제 60이네... 근데 그래서 나는 쉰아홉이었던 하루 전과 어떠한 달라진 점도, 달라진 마음도 없건만 내 나이를 자각하며 깨어났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내 나이를 자각하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돌립운동하는 남편으로 고생고생하다가 외아들을 고등학교 교사로 키워낸 내 할머니는 대청마루에 큰상을 받고 온 집안사람들의 축하주를 받으며 환갑잔치를 치렀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보내고 삼 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냈던 내 어머니는 2000년대에 맞게 환갑잔치는 필요 없다를 외치시며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요즘 내 친구들은 환갑이나 회갑이라는 말 자체를 매우 싫어한다. 잔치는 고사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것도 앞에 환갑이라는 것을 붙여하기를 싫어한다.


나 또한 아직은 어린 딸아이 하나를 둔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환갑을 기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내가 나의 늙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나는 가끔 내가 자연스레 늙어가고 있음에 안심을 느끼기도 한다. 무탈스럽게 내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싫지 않다. 요즘처럼 젊음을 갖는 것이 능력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늙어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면 사람들은 의아하게 되묻기도 하지만 무탈하게 늙어가는 것이 주는 안심이 마음의 평화를 준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내가 60의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두거나 하기도 싫다. 왠지 나이가 나를 지배해서 내 삶이라기보다 세상이 정하는 나이의 기준으로 살기는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예순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별다른 의미 없이 내 삶의 어느 궤도를 잘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의 인생은 의미를 두고 살자면 한 없이 의미가 넘치지만 삶이 그냥이라고 생각하면 또 그냥 살아지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세월을 타고 예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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